경기도發 '표준시장단가', 건설 품질·안전 역행 우려
경기도發 '표준시장단가', 건설 품질·안전 역행 우려
  • 김주영 기자
  • 승인 2018.10.0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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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文정부 '일자리 창출' '갑질 근절' 정면 배치···건설 여건 무시한 독단적 행보

[이슈 분석] 경기도 표준시장단가 추진, 무엇이 문제인가

건설업계 “(원가)1천원짜리 물건 900원 구매···‘발주기관’ 단가 후려치기”
이재명 지사 “누군가 부당 이득 환수해 예산 절감” 강행 내비쳐 ‘갈등’ 심화

▲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경기도 발주공사에 '표준시장단가' 적용을 추진, 건설업계가 건설 품질 및 안전 확보에 역행을 우려하며 강력 반대에 나섰다. 사진은 건설업계가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 집결해 적정 공사비 지급을 호소하는 결의대회 모습.

공사비 적정화를 호소하던 건설업계가 돌연 이재명 경기도지사발 ‘공사비 삭감’이라는 벽에 부딪쳤다. 불행 중 다행은 그나마 행정안전부가 ‘표준품셈’과 ‘표준시장단가’의 차이를 인지하고 있다는 것.

행안부는 정확한 단가 산정을 통해 경기도발 ‘행정 건의’를 면밀히 검토하겠다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내비췄다. 본보는 건설산업의 특징을 파악하지 못한 이번 ‘근시안적’ 건의의 문제점을 살펴봤다. 

■ 경기도 “표준시장단가 적용시 예산절감 가능"
경기도가 추정가격 100억원 미만 공공건설공사에 '표준시장단가'를 적용하겠다는 내용의 제도개선을 행안부에 공식 건의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셈법만 바꾸면 1,000원 주고 사던 물건을 900원에 살 수 있는데 안 할 이유가 없다"며 "누군가의 부당한 이익은 누군가의 손해로 귀결된다. 100억 미만 공공건설공사에도 표준시장단가가 적용될 수 있도록 앞장서겠다"고 제도 개선을 주장했다. 100억원 미만 공공건설공사에 표준시장단가가 아닌 '표준품셈'을 적용하는 현행 행안부 예규를 개선한다면 예산 절감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이어 최근 2년간 경기도에서 발주한 계약금액 10억원 이상의 공공건설공사 32건을 분석, 표준시장단가를 적용해 공사예정가를 다시 계산한 결과도 발표했다. 그 결과, 표준품셈보다 평균 4.5%까지 예산 절감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 문제1 -규모의 경제 ‘무시’
경기도의 움직임에 건설업계는 즉각 반발했다. 건설시장 특성과 상황을 반영하지 않은 탁상행정으로 건설업계의 존폐가 갈릴 것이 분명하다는 판단에서다. 공사 규모에 따른 생산성의 차이도 고려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경기도가 주장하는 표준시장단가는 과거 수행된 100억원 이상 공사의 계약단가, 입찰단가, 시공단가에서 축적된 공정별 최종 단가를 토대로 물가상승률 등을 고려해 산출하는 방식이다. 표준품셈은 공종별 재료비, 인건비, 기계 경비 등 부문별 원가분석방식을 적용해 공사비용을 표준화한 방식으로, 범용적 자료다.

이 경우 대체로 정해진 단가를 기준으로 산출하는 표준품셈보다 시장 상황을 반영한 표준시장가격이 표준품셈보다 낮게 산정되는 경향을 보인다. 이른바 ‘규모의 경제’ 때문이다.

어떤 시장이든 발주 혹은 주문 규모가 커지면 단가가 낮아진다. 장비, 자재, 인력 활용 등을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건설현장도 마찬가지다. 100억원 이상 공사에서 실제 집행된 단가를 중소형 공사현장에 적용하겠다는 판단 자체가 틀린 것이다.

더욱이 현행 100억원 미만 공사에 표준품셈을 적용하는 것은 중소기업을 보호하자는 취지에서 시행됐다. 즉, 이를 제거한다면 중소기업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가 붕괴돼 국내 중소건설업체의 줄도산마저 우려된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경기도의 예산 절감 효과 주장은 건설산업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지극히 근시안적 판단“이라며 ”안 그래도 공공공사에서 적자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경영상황이 지금보다 악화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성토했다. 

■ 문제2 - 예산 절감 효과 ‘전무’
경기도가 주장하는 표준시장단가 적용으로 절감되는 예산은 사실 건설업체의 손실로 인해 발생하는 반대급부다. ‘(원가) 1,000원까지 물건을 900원에 구매하겠다’는 발상은 경기도의 이익을 위해 건설업계의 손해를 떠넘겠다는 ‘횡포’다. 현재도 공공부문에서 이윤 창출이 불가능에 가까운 만큼 ‘손실 확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경기도가 제시한 3개 건설현장에 대해 대한건설협회가 실제 공사비 소요분석에 나선 결과, 실제 집행비용은 100%를 상회한 것으로 나타났다. 건설업체가 적자를 감수하고 시공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평택 진위역-오산시계 도로공사와 오산소방서 신축공사의 경우 실제 지출된 공사비는 낙찰금액대비 103%로 3%의 적자가 발생했다. 심지어 본사 관리비 및 이윤도 발생하지 않았다. 삼팔교 재가설공사는 공사비 일부가 증액됐다. 

‘생애주기비용(LCC)’ 측면에서 볼 때, 경기도의 움직임은 미래세대에 부담을 가중시킬 우려가 매우 크다는 지적도 염두에 둘 대목이다. 저가 시공으로 완전한 품질을 기대하기 어렵고, 초기 비용보다 최대 5배 이상의 유지보수비용이 추가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대한건설협회 관계자는 ”종합건설사가 수주한 공공공사의 약 97%가 100억원 미만 공사이고, 전문업계는 99%에 해당한다“라며 ”중소규모 공공공사에 표준시장단가를 적용하면, 예정가격이 내려가고, 낙찰가마저 하락할 경우 사실상 고사할 수 밖에 없다“고 호소했다. 

■ 문제3 - 성남 사례 ‘부적절’
경기도는 지난 8월 7일 이재명 지사가 성남시장으로 재임할 당시 표준시장단가를 적용한 공사에 품질 문제가 없었으며, 해당 사업에 많은 업체가 입찰에 참여했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건설업계는 대표적 수주산업인 건설업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수주 절벽으로 일거리가 부족해진 상황에서 과당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현실을 엉뚱하게 해석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수주하지 않는다면 인력 감축, 폐업 등을 할 수 밖에 없다“며 ”손실이 예상되더라도 더 큰 손해를 피하기 위해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참가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단순히 성남시의 표준시장단가 적용 사업의 입찰자 수를 정당하다고 판단하는 것 자체도 부적절하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원가분석 능력이 부족한 중소 건설업체의 경우, 낙찰 이후 계약을 포기하는 사례가 종종 발생하는 것이 이를 뒷받침해준다.

상생 발전, 혁신성장을 기치로 내세운 문재인 정부의 국정 철학과 역행한다는 점도 논란거리다. ‘갑질’ 근절을 위해 공공기관마다 상생협의체 등을 운영하는 데 반해 경기도는 입찰업체를 대상으로 ‘단가 후려치기’에 나서는 모양새다. 정부가 선제적으로 ‘낮은 단가’만을 고집하면서 ‘공정거래 문화’ 확산을 논한다는 것은 모순이라는 지적이다. 

대한건설협회 관계자는 ”대기업의 대표적인 갑질행태가 사회적 물의를 빚고 있는데, 경기도 역시 이와 다를 바 없다“며 ”낮은 단가만 요구하고, 수주업체의 희생만을 요구한다면, 경기도도 건설업체를 볼모로 ‘갑질’을 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 문제4 - 일자리 감소 불가피
건설업계는 경기도의 이러한 움직임이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창출 기조와 역행하는 꼴이라고 비난했다. 실제로 SOC 예산 축소로 올해 고용지표는 급격히 악화된 사실에 비춰볼 때 그 문제가 심각해질 가능성이 크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100억원 미만 공공공사에 대해 표준시장단가를 적용할 경우 전체 노무비 감소분만 2,300억~5,9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자치단체 발주공사에서 1,500억~3,800억원의 노무비가 줄어들 것으로 예측됐다.

이로 인해 일자리는 4,700~1만2,000개가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연관산업으로 확대하면 줄어드는 일자리 추정치는 1만950~2만8,359명으로 늘어난다. 

건산연 관계자는 “건설산업은 고용 유발을 비롯해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높은 산업”이라며 “한계 상황을 유도하는 무리한 공사비 감액 정책의 확대는 지역경제에 악영향만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무엇보다 건설업의 특성상 종사자의 70.8%가 취약계층임을 감안할 때 일자리 감소 여파가 국민 생활 경제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 문제 5 - 적정 공사비 확보 ‘뒷전’
중앙정부는 건설업계가 호소해 온 ‘불합리한 입낙찰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움직이고 있다. 지난 6월 경제장관 회의에서 ‘건설산업 혁신방안’을 발표하고, 발주제도 개편과 함께 적정 공사비 지급을 위한 공사 원사 산정체계를 개선하기 위한 개정 방안을 마련키로 했다.

그런데 돌연 경기도에서 8월 ‘표준시장단가’를 꺼내들며 이 같은 정부 움직임에 찬물을 끼얹었다. 정부끼리 손발이 맞지 않는 움직임에 민간업계만 좌불안석이다. 

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공공공사 낙찰률은 74%에 그쳐 저가 낙찰이 심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로 인해 최근 10년간 건설사 영업이익률은 1/10으로 줄었다. 심지어 공공공사만 수행하는 건설사는 2016년 손해율이 25%에 달했다. 최근 10년간 공공토목공사를 수주하는 종합건설사 1,500개 업체가 폐업하기도 했다. 적정공사비가 확보되지 않고 낙찰률이 지속 하락한 여파다. 

■ 문제 6 - 입낙찰 규정 ‘무용지물‘ 
경기도의 계획대로라면, 300억원 미만 공공공사에 적용되는 적격심사 낙찰률이 법정 하한율(85.5%)을 하회하는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즉, 경기도가 현행 입찰제도를 이해하지 못한 상황에서 무리하게 정책을 제안, 추진하고 있다는 의미다. 

만약 예정가격 50억원인 공사를 발주할 때 표준품셈을 적용하면 낙찰 하한율에 따라 최종 낙찰금액은 42억7500만원이 된다. 그런데 50억원 중 20%인 10억원에 대해 표준시장단가를 적용하면, 표준품셈대비 18% 낮다는 점을 감안할 때 최종 낙찰금액은 41억2100만원이 된다. 낙찰률이 82.42%로 낮아져 법으로 정한 낙찰 하한율보다 3.08% 아래에 머물게 된다. 
현행 입찰제도의 법적 기준을 자치단체가 지키지 못하는 만드는 꼴이 벌어지게 된다. 

■ 건설업 특성 고려··상생 방안 마련해야
대한건설협회 관계자는 “중소건설업체의 보호·육성을 통해 지역경제 활성화를 도모해야 할 경기도가 오히려 표준시장단가 적용 확대를 추진해 지역 중소건설업체를 사지로 내몰고 있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경기도가 도내에 우선적으로 표준시장단가를 적용하기 위해 조례를 개정하더라도, 즉각 실행될 가능성은 낮다. 행안부 예규라는 상위 법령과의 충돌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경기도는 행안부를 방문, ‘지방자치단체 입찰 및 계약 집행기준 개정’을 건의하는 움직임을 병행하고 있다.

행안부 역시 경기도의 움직임에 신중하게 대처하고 있다. 조례 개정은 가능하지만, 실제 적용은 불가능하다고 못 박았다. 또 표준품셈과 표준시장단가의 취지와 원가 산정 체계가 다른 만큼 성급한 적용보다는 면밀한 검토가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을 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