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분양가 상한제의 한계
[사설] 분양가 상한제의 한계
  • 국토일보
  • 승인 2009.10.28 09: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민간택지에 대한 분양가 상한제의 연내 폐지가 물 건너간 것으로 봐도 무방할 듯싶다.

한나라당은 당초 지난 4월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폐지를 당론으로 정했으나 야당의 반대에 부딪혀 법안이 관련소위에 계류되는 사태를 빚자 최근 분양가 상한제 폐지는 예정대로 추진하되 시행시기를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키로 함으로써 사실상 연내 폐지에 대한 기대를 어렵게 만들고 말았다.

더구나 정부 측에서는 시행시기 조정안에 반대하는 입장이어서 실기(失機)할 가능성을 한층 짙게 한다.

이런 미온적 대응은 결국 여당조차 분양가 상한제 폐지가 몰고 올지도 모를 집값 상승의 불안에 아직도 떨고 있다는 뜻으로도 통할 수 있다.

그만큼 분양가 상한제 폐지의 당위성과 실효성을 둘러싸고 홍역을 앓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 바람에 주택건설 업계에서는 분양가 상한제가 부동산 규제의 대표적인 화석처럼 남겨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을 정도다.

이런 반작용은 연초 민간 단지의 상한제 폐지 논의가 시작되면서 분양을 미뤄왔던 업체들이 연내 폐지가 사실상 물 건너가자 분양을 서두르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서울과 수도권에서 분양 계획이 잡힌 민간 상한제 단지 1만2000여 가구 가운데 9000여 가구가 연내 나올 예정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일은 상한제 적용 단지의 분양가가 기대보다 가격을 낮추는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주택 수요자나 정책당국의 입장에선 주변시세보다 분양가가 확 내려갈 것으로 기대했으나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주변 시세와 비슷한 수준으로 드러난 것이다.

상한제 단지의 경우 택지비(땅값)에 정부가 정한 표준형 건축비를 적용해 분양가를 책정토록 되어 있어 택지조성원가로 땅값을 매기는 공공택지와는 달리 주변 집값(땅값)이 오르면 분양가도 오를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를 드러낸 셈이다. 결국 공공택지에 비해 상한제 효과가 크지 않은 것은 땅값이 비싸게 매겨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분양가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땅값은 그대로 둔 채 건축비만 제한하는 것이므로 상한제 효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집값 안정 효과는 기대난망인 채 외려 민간의 주태공급 물량만 위축시키는 부작용만 우려하게 만든 격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전체 주택 분양 물량이 크게 줄어들 것으로 우려되는 것이 이런 부작용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금융위기와 이로 인한 경기침체 등 외부 요인의 영향도 있지만 , 무엇보다 일정 범위 내로 묶인 분양가로는 민간 건설업체들의 사업성 확보가 힘들다는 것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특히 이른바 ‘반값 아파트’로 불리는 보금자리주택 공급이 본격화될 경우 경쟁력이 악화되고 있는 민간업체의 입지가 더욱 좁아질 것은 명약관화해 상한제 규제의 파장은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우려된다.

주택 가격 안정을 위한 분양가 상한제 시행이 효과에는 한계를 드러낸 채 공급 부족을 촉발해 도리어 가격불안만 증폭시키는 애물단지로 전락할 형국인 셈이다.

최근 주택산업연구원이 분양가 상한제 폐지에 의한 고급물량 확대가 오히려 주택 가격 안정 효과를 높이는 지름길이라고 제시한 사실은 그래서 귀담아 들어야 할 것으로 여겨질 정도다.

사실 분양가 상한제는 가장 강력한 시장규제다. 선진국에서는 가격규제가 가져올 부작용을 감안해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시장에 개입하는 것으로 우리는 안다. 이는 ‘적정한 가격’을 특정 경제주체가 매긴다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귀한 경험에 따른 것이다. 그래서 분양가도 인위적인 규제가 아닌 시장의 선택에 맡기는 게 바람직하다는 교훈을 함축하게 된다.

하기야 상한제를 폐지하면 일시적으로 분양가나 주변 집값의 단기적 상승이 초래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거

래 심리의 변화나 그간 눌려 잇던 분양원가의 반영이 외관상 그렇게 비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일시적 결과만 가지고 전전긍긍할 필요는 없다. 헝클어지고 뒤틀린 시장질서가 제대로 자리 잡기 위한 과정에서는 ‘명현(瞑眩) 반응’이 나타나기 마련인 것도 엄연한 사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