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잣대(Duplicity Standard)
이중잣대(Duplicity Standard)
  • 국토일보
  • 승인 2009.07.20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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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환의 세상만사] (주)삼미 대표이사 / 공학박사 / APEC 공인컨설턴트 / 기계기술사

 프로크루스테스는 고대 그리스의 전설적인 강도이다.

'잡아 늘이는 자'라는 이름을 가진 이 괴상한 도둑은 엘레시우스와 아테네의 중간 길가에 살면서 나그네를 자기 집으로 끌고 와서는 특수한 침대에 눕히고, 나그네의 몸길이가 침대보다 짧을 때에는 잡아 늘이고, 길 때는 머리나 다리를 잘라버리는 잔인한 방법으로 사람을 죽였다고 한다.

후에 그는 영웅 테세우스에게 같은 방법으로 죽임을 당했는데 여기서 ‘프로크루스테스 침대’라고 하면 어느 절대적인 규격이나 기준을 만들어 놓고 그 안에 구겨 넣으려고 하는 획일적인 처리방법을 의미하게 되었다.

마르크스는 그의 논문에서 헤겔의 관념론을 비꼬아 ‘프로크루스테스 침대’라고 말했다.
즉, 헤겔은 관념이란 초월적 기준을 세워놓고 현실을 멋대로 늘렸다 줄였다 하지만, 자기의 유물론적 방법은 그와 반대로 현실에서 출발하여 진리에 도달한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꽤 오래전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어떤 드라마에서도 궁예는 남의 마음을 꿰뚫어 볼 수 있는 ‘관심법’을 터득하였다 하여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신하나 모반이 의심스러운 신하를 제거하는 수단으로 써먹어 ‘관심법’ 이라는 말이 장안에 회자된 적이 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프로크루스테스, 헤겔 그리고 궁예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은 마음속에 이중 잣대의 기준을 세우고 살아가는 것 같다.

그러나 절대 권력자에게는 이중 잣대란 것이 없다. 권력자 자신이 신이자 법이기 때문이다. 절대 권력자 아래의 인간세상은 발전하면서 계급사회를 이루고 다양한 직업이 생겨나면서 각 개인의 사회적 신분, 지위에 따라 이중 잣대는 살아가는 방편일 수밖에 없게 됐다. 

그러나 각 개인의 이중 잣대적인 기준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각 개인들이 모여서 형성한 집합체인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면서 이중 잣대의 기준은 제한을 받기 때문이다.

사회는 이중 잣대 기준을 제한하는 방법으로 법과 규율을 만들어 놓았다. 법과 규율 덕분에 프로크루스테스나 궁예 같은 절대 권력자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기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법과 규율이 이중 잣대 판단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 UN, EU, NATO와 같은 국제기구가 있고 지역별 국제협력체가 있어 국가 간의 질서를 유지하고 있으나 이것이 깨진다면 사회혼란 야기, 국가의 전복 또는 전쟁으로까지 발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이중 잣대(Duplicity standard)를 제거하여 단일화 시키는 노력에 더욱 분발할 필요가 있다. 요즈음 회자되고 있는 검찰총장이나 국세청장의 국회 자질검토에서 당리당략에 따른 평가는 이중 잣대가 얼마나 위험한가에 대해 확실히 보여주었다.

이웃나라 중국에서는 소수민족 차별이라는 이중 잣대 때문에 곤혹을 치르고 있다. 모든 일에 있어 똑같은 잣대를 사용한다면 인류는 혼란에서 평화로 한 단계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효율적인 실행 방법을 찾는 것이 급선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