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유의 세상만사]<60>알파고와 그로미코
[안동유의 세상만사]<60>알파고와 그로미코
  • 국토일보
  • 승인 2016.03.21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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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유 팀장 / 기계설비건설공제조합 정보지원팀

 
안동유의 세상만사

자유기고가이자 시인인 안동유씨(기계설비건설공제조합 정보지원팀장)의 칼럼을 게재합니다. 안 팀장은 KBS ‘우리말 겨루기’ 126회 우승, ‘생방송 퀴즈가 좋다’ 우승 등 퀴즈 달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MBC 100분 토론에서는 시민논객으로 참여하는 등 지속적인 방송 출연을 통해 또다른 소통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에 本報는 건설산업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안동유 팀장의 ‘안동유의 세상만사’를 통해 작가 특유의 감성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소통의 장을 마련했습니다.


알파고와 그로미코

구소련 시절 유명한 사람들이 소련에도 많았다. 미국과 함께 세계를 양분했으니 당연한 이야기다. 레닌, 스탈린은 물론이고 브레즈네프와 고로바초프까지 유명한 인물이 지도적 위치에 있었고 이들의 거동은 중요한 정치적 해석을 낳을 수밖에 없었다.

모든 일과 역사가 그렇지만 눈에 보이는 주역 외에 보이지 않는 조연이 더 빛나는 활약을 하거나 막후의 조정자 역할을 할 때가 더 많다.

중국의 집사 저우언라이가 대표적인 예다. 빛나는 마오저둥의 활약 뒤엔 저우언라이의 보이지 않는 밑받침이 있어서 그 활약이 가능하고 빛났다는 게 역사학자들의 정평이다.

마오의 대표적인 오류인 문화대혁명의 광기가 그 정도에서 끝난 것도 저우의 그림자 같은 보필이 있어서 가능했다고 본다.

소련도 역사적 주역 외에 많은 조연을 배출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안드레이 그로미코였다. 오랜 기간 소련 외상으로 재임하면서 세계 외교와 국제정치를 좌지우지했던 인물이다.

결코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도 없었고 오르지도 않았던 그가 오랜 동안 권좌의 주위에 머물며 킹메이커 역할을 한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초강대국 미국을 상대로 결코 밀리지 않는 실리외교를 견지하며 소련의 이익에 부합한 외교정책을 잘 펼쳤기 때문에 그랬다고 본다.

그런 그의 집무실 옆엔 큰 방이 있었다고 한다. 아무것도 없는 빈 방에 벽 전체가 세계지도로 도배되어 있고 그 앞에 의자가 하나 놓여 있었다고 한다.

이념을 떠나서 생각해 보면 세계를 경영하는 데 어찌 어려움이 없고 고민이 없을 수 있겠는가?

그로미코가 정책을 고민하다가 잘 안 풀리면 그 방에 들어가서 의자에 앉아 하염없이 세계지도를 물끄러미 보고 있다가 한참 후 나와서 일을 풀어나갔다고 한다.

비록 과거의 적성국가였지만 그로미코는 성공적인 외교관이었고 비교적 세계 외교를 잘 이끈 인물로 평가 받는다. 그런 저력은 그 빈 방의 지도와 관조였다고 보인다.

요즘 온통 방송과 신문지상을 덮는 이슈는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 이야기다. 좀 더 이야기를 진행하면 인공지능에 대한 공포와 인간의 설자리에 대한 이야기가 주류다. 터미네이터 같은 몇몇 공상과학 영화가 선입감을 심어 주어 공포심을 확산 시키는 듯하다.

5국 중 1국만 이세돌이 이겼지만 사람들은 숨통이 트이는 듯하다. 기계에 대한 인류의 희망을 본 것이다.

그 1국을 보면서 알파고로 대변되는 인공지능의 한계를 봤다. 1초에 10만 수를 보는 알파고를 이세돌은 결코 따라잡을 수 없는 불리한 게임이라고들 한다.

프로 기사는 100 수 까지만 본다는 것이다. 하지만 해설하는 프로 기사(그 역시 9단이었다)의 고백은 기껏 5~6 수까지라는 것이다. 보는 관점의 차이겠지만 어떻든 인공지능에 훨씬 못 미친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다.

물밑에서 끊임없이 발을 저어 물위의 우아한 자태를 유지하는 백조처럼 알파고는 가만히 있는 듯 보이지만 속으론 끊임없는 연산을 하고 있다. 심지어 다른 컴퓨터의 도움을 받아가며….

그렇게 짧은 시간에 많은 연산을 하는 것이 인공지능의 장점이지만 그게 알파고의 한계다. 기계는 한계인 10만 수를 넘으면 판단을 하지 못한다.

사람은 백만 수든 천만 수든 검증(연산)하지 않고도 직관적으로 답을 찾아낸다.

이세돌이 그걸 해낸 거다. 흔히 신의 한 수라고 평가하는 것이 그런 수다. 도저히 상상도 안되고 검증도 안 되는 데 그런 일을 해낸다. 그게 인간이다.

사람들이 기계에 대한 공포를 느끼는 것은 이해하지만 결코 기계가 사람을 따라올 수 없는 것이 그런 것이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고 본다.

그로미코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답을 지도를 보며 찾아내지만 알파고는 아무리 지도를 들여다 봐도 답을 못 찾는다. 그것이 인공지능을 갖춘 로봇을 외교관으로 임명하지 못하는 주요한 이유다.

이제 기계 따위에서 벗어나 이세돌의 말처럼 낭만적인 바둑을 두자. 우리 삶에서도.
봄이 왔잖은가? 꽃이 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