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건축시장 이제는 뒤를 돌아볼 때다
[기고] 건축시장 이제는 뒤를 돌아볼 때다
  • 국토일보
  • 승인 2016.01.18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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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석 애드건축 대표이사

   
 이종석 애드건축 대표이사.

2016년은 지혜와 재주가 많다는 붉은 원숭이의 해라고 하니 올해는 뭔가 많은 지혜를 모아서 창조적인 건설시장이 열리는 한해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그러나 새해부터 수도권 아파트 미분양 불량이 증가하고 있다는 소식은 건축시장에 대한 불안감을 가지게 한다.

지난 2년간 침체기에 있던 건축시장이 그나마 활기를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주택시장의 신규분양이 다소 낮아진 은행문턱 덕분에 많은 물량을 소화했기 때문이라고 풀이된다.

다들 올해부터가 문제라고 입을 모으는 이유는 과잉공급과 대출규제로 인해 부동산에 몰려있던 자금이 빠져나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 국민의 기본생활과 직결된 주택시장이 정부정책과 시장경제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면 서민생활의 불안감은 지속될 수 밖에 없다.

다시 말해 주택시장은 규제라는 도구를 가지고 조였다 풀었다 하는 정부주도의 정책에 따라 여전히 롤러코스터를 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건축시장은 정부정책에 따라 규제가 풀리는 시점에 국내 건설사들이 신규시장에서 양(量)위주의 사업을 벌이고, 과잉공급이 일어나면 정부의 규제정책이 발동하게 되는 악순환 고리에 놓여 있다. 이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고, 한때 정권의 기반을 흔들 정도로 심각한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지구상에서 매우 드문 초고속 경제성장을 이룬 국가로 마크됐다. 6.25의 폐허 속에서 온 국민이 허리띠 졸라매고 앞만 보고 달려오는 동안 어느새 세계 최빈국에서 GDP기준 11위권에 안착했고, 정보통신기술을 비롯한 첨단 산업분야는 선두의 자리를 지키게 됐다.

농업국에서 산업화를 지향하는 동안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절반정도가 몰리는 기현상을 우리국민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말았다. 그 결과 모든 주거시설의 반을 아파트 건설로 채우는 이른바 ‘아파트 공화국’이 우리나라의 상징이 됐다.

■ 미래건축을 꿈꾸자

이제 8부 능선을 지나는 현 시점에서 한번 되돌아보고 무엇인가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그중 우리나라의 건축수준을 한번 들여다보기로 하자.

요즈음에는 최신버전이 아니면 관심이 없을 정도로 유행과 최신 트랜드에 민감한 시대를 살고 있다. 또한그 사이클도 자꾸만 짧아지는 게 마음을 조급하게 만든다.

우리가 매일 손에 넣고 다니는 휴대폰만 해도 2년 이상을 사용하면 시대를 따라잡기 어려울정도로 디자인이나 기능 등이 변해있다. 이러니 최신버전을 따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자동차, 컴퓨터, 가전, 가구 등 주변의 대부분의 것들이 그러한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늘 생활하는 건축은 어떠한가? 건물의 외관, 특히 최근 조성된 신도시를 가보면 느낄 수 있을 만큼 건축물의 외관은 그럴싸하게 세련된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다.

나름 건축가의 설명대로 시대성, 지역성, 상징성, 역사성, 경제성, 유지관리성 등 여러 가지 ‘성(性)’자를 붙여가며 최신 컨셉이 반영돼 있는 것 같다. 휴대전화만큼은 아니지만 시대를 따라잡는 것은 맞는 것 같다. ‘최신’은 외형 뿐만 아니라 성능, 기능, 디자인, 품질 등 ‘질(質)’의 발전이 수반되지 않는 것은 별로 없다.

그러나 우리의 건축물의 수준이 그만큼 따라가면서, 변화하고 발전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오히려 일부 성능과 첨단설비를 제외하곤 6~70년대 건축물의 품위를 따라가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 아무리 건축이라는 속성을 감안하더라도 세상이 변하는 만큼, 소비자의 욕구패턴이 변화하는 만큼 따라가고 있는지?

■ 낙후된 건축과 환경에 왜 너그러운가

건축물의 사용자 입장에서 들여다보자. 소위 소비자들은 싸고 질 좋은 제품, 최신 제품을 선호 하는 것이 당연하다.

또한 자신의 취향에 맞는 제품을 얼마든지 선택할 수도 있고, 소비자의 권리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거주하는 건축물은 그렇지 않은 게 현실이다. 건축가가 설계해서 건축업자가 지어준 대로 맞추어 살아야 하는 게 당연한 일이고, 불합리하고 사용하기 불편한 건축물에 대해 ‘불만제로’와 같은 방송프로에서 고발하는 일은 없으니 말이다.

그야말로 우리나라 성장기였던 80~90년대에 지어진 올드패션한 아파트에 살면서도 첨단 가전제품의 편의를 누리면서 살아가는 모습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을 세상의 어떠한 재산보다도 비싼 비용을 치루고 얻는다는 사실이다.

아파트공화국에서 살고 있으니 감수해야하는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누구하나 주거환경의 불편함이나 불합리한 부분에 대해 불평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불가항력적인 현실에 굴복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자신의 집이 최신 버전이기는 커녕 2~30년 전의 버전으로서 현재의 자신의 취향이나 시대적인 트랜드와 전혀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제는 공개적으로 비판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나라의 주거환경, 건축수준이 진정으로 발전할 수 있다.

■ 건축현장 양적생산에 익숙

건축은 그 속성상 전자제품처럼 획기적인 개발과 발전을 이어갈 수 없다. 특히 공장에서 균일한 제품을 만드는 것과는 달리 모든 공정이 현장에서 사람 손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은 그 어떤 산업과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건축계의 질적성장이 늦은 이유는 그동안 급속발전을 이어온 우리나라의 양적성장 환경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여진다. 건축의 예술적 접근방식보다는 하나의 건설공사에 불과한 사업을 빠른시간내에 마치려 하는 사고방식이 가장 큰 원인이었던 것이다.

흔히 “건축은 종합예술이다”라고 하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그렇게 낭만적인 일로 취급받지 못하는게 현실이다. 과거‘쟁이’로서의 투철한 직업관이나 철학도 부족할 뿐만 아니라 현재와 같은 낮은 설계보수로는 그렇게 한 프로젝트에 집중해서 일일이 문제 해결해가며 작품을 만들어가기 버거운 한계가 있다.

오히려 한국의 경제 급성장기의 현장분위기 보다도 훨씬 각박하고 메마른 건축계의 현실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일을 수주하기위해 현상설계나 제안서를 작성하고 최근 부쩍 늘어난 각종 심의, 인증취득, 평가 등의 절차는 일을 시작하기 전부터 지치게 만들 때도 있다.

■ 명품건축 추구··· 도시·국가 격 높여야

국내 건설시장의 신규물량은 점점 메말라가는 가뭄을 연상케 한다. 국내 주택 공급율은 110%를 훌쩍 넘은지 오래고, 혁신도시, 행복도시 등 대형 건축시장의 양적 성장기는 이제 끝이 보이는 듯 하다. 이제 건축계는 어떠한 전환점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

믹스커피보다는 몇십배 비싼 원두커피를 즐겨먹는 시대가 온 것과 같이 이제는 건축계도 명품건축을 추구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이것이 일부 의식있는 건축주나 건축가의 힘으로 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국민적 사고전환이 필요한 사항이다.

한국이 세계경제순위 11위 OECD 국가라면 그 위상에 맞는 건축수준과 품위를 갖춰나가야 할 때이다. 그러나 지금 세계 순위 6위라는 서울, 과연 건축수준과 도시풍광을 놓고 선뜻 동의 할 수 있겠는가? 항공 촬영된 서울의 모습을 종종 볼 때면 아쉬울 때가 많다. 굳이 세계 다른 도시와 비교할 필요 없이 자부심을 갖아도 되건만, 건축을 하는 필자의 입장에서는 다른나라 유명도시와 비교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특히 건축물의 수준차이 뿐만 아니라 전체도시의 품위가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너무도 아쉬운 부분이다. 마치 서울의 성장이 80년대에 멈취진 느낌을 받는 것은, 신도시 찾아다니며 손쉬운 개발에 익숙해진 한국사회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게 분명하다.

더 좋은 자동차와 핸드백, 화장품, 전자제품, 음식에 이르기까지 명품을 추구하는 것은 산업발전과 경제수준에 의해 자연스럽게 결정되는 현상이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지불한 금액에 걸맞는 수준의 건축을 소유하고, 이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더 나아가 우리의 생활환경을 구성하고 있는 건축과 도시를 우리수준에 맞도록 사회에 요구하는 일도 당연한 일이다. 이런 사회변화 분위기속에 명품건축이 속속 등장하는 것이고 명품도시로 발전하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 우리나라 건축계가 질적인 성장을 향해 새로운 시장을 열어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