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유의 세상만사] <31>
[안동유의 세상만사] <31>
  • 국토일보
  • 승인 2015.01.26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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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유 부지점장 / 대한설비건설공제조합 광주지점

 
안동유의 세상만사

자유기고가이자 시인인 안동유씨(설비건설공제조합 광주부지점장)의 칼럼을 게재합니다.
안 부지점장은 KBS ‘우리말 겨루기’ 126회 우승, ‘생방송 퀴즈가 좋다’ 우승 등 퀴즈 달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MBC 100분 토론에서는 시민논객으로 참여하는 등 지속적인 방송 출연을 통해 또다른 소통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에 本報는 건설산업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안동유 부지점장의 ‘안동유의 세상만사’를 통해 작가 특유의 감성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소통의 장을 마련했습니다.

합리주의와 탈권위주의

문화접변이란 말이 있다. 문화와 문화가 만나면 새로운 변화를 서로 겪게 된다는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 사회문화란 과목에서 첨 배운 것이다.

대학으로 오며 소홀히 보던 사회학이나 문화 인류학이 중요한 학문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한 문화의 구성원은 다른 문화를 접하고 엄청난 문화적 충격을 받게 마련이다. 그래서 그게 엄청난 사회 변화의 원동력이나 계기가 되기도 하고….

국사 시간에 배운 내용을 보면 삼국시대의 당나라 숙위 유학생들, 특히 최치원 같은 인물들이 엄청난 개혁적 성향을 띤다. 6두품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실패를 겪게 되지만 개혁안을 왕에게 제시하고 우물안의 개구리 같은 신라 지배층들에게 골품제를 깨라고 촉구한다.

답답한 권력 싸움을 그치고 새로운 문물, 발전한 당나라의 문물을 받아들여 제도를 개혁할 것을 촉구한다. 따지고 보면 그들은 엄청난 문화충격을 받고 신라가 문화접변을 통해 새로운 발전으로 도약하길 바랐을 것이다. 그것이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하고 보다 나은 사회로 나가는 길이라고 봤을 것이다.

91년 여행 자유화가 된지 얼마 안 된 시기에 미국이란 나라에 어학연수를 가게 되었다.(요즘 세대들은 여행을 자유롭게 하지 못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지만 우리나라가 야간 통행금지가 해제되고 해외 여행이 자유화 된 지 얼마 안된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여권을 받고 반공교육을 몇 시간 받아야 했고 미국 대사관 앞에 난민처럼 줄을 서서 비자를 받았던 일은 이제 추억이 돼 버렸다.

여튼 미국 땅에 내려서 며칠 안에 Social Security Card를 발급 받으러 Social Security Center에 갔는데 영어로 된 신청서 양식을 채워 나가다가 뭔가를 잘못 쓰게 됐다

당연히 한국식으로 생각하고 새로운 신청서를 하나 더 달라고 했더니 틀린 것은 줄을 긋고 그 아래 새로 쓰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예상과 다른 답에 잠시 어안이 벙벙해서 멍하게 있다가 실소를 내뱉으며 그렇게 했다. 엄청난 권위주의와 형식주의에 찌든 나 자신이 한심했다.

그깟게 뭐라고? 그냥 지우고 쓰면 되지.

모든 양식은 깨끗이 정서를 해야 한다.(혹 고쳐 쓴 부분을 가지고 시비라도 걸면 책임 소재를 물어야 하기 때문에) 윗사람이 귀찮은 걸 싫어해서 문제의 소지를 남기지 않도록 아랫사람을 닦달하고 아랫사람은 거기에 철저히 적응돼서 조금이라도 귀찮은 문제를 만들지 않으려 하고….

이게 한국적 행태다.

한국을 비하하고 미국을 칭송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담당자가 사실을 확인하고 책임지고 일하는 이런 작은 일이 엄청난 문화적 충격으로 다가오고 이런 깨달음이 문화접변 현상으로 나타날 때 사회는 변한다.

최치원의 시무 10조에는 턱 없지만 그런 당나라 숙위유학생들의 놀라움과 고민은 이해될 듯 했다. 그때 일을 겪으며 최치원이 생각났던 건 이런 까닭이었을 거다.

몇 달 있다 비슷한 일로 또한번 충격을 받았다. 편지를 부칠 일이 있어 우체국(포스트 아피스라고 부르는)에 갔는데 마침 갖고 있던 우표가 있어 새로 우표를 살 일이 없다 싶어 그걸 붙였다.

붙여야 할 우표보다 조금 더 비쌌으므로 아무 고민 없이 붙였다.

또한번 한국식 사고가 깨졌다. 편지 봉투에 뭐라고 깨알같이 쓰더니 나머지 금액을 그자리서 돌려 주는 게 아닌가?

윗사람 결재 같은 건 없었다. 잠시 또 어안이 벙벙했다. 이건 뭐지?

우린 아직도 비싼 우표를 붙이면 국가에서 부당이득을 한다. 예전에 전철표를 살 때도 도중하차전도무효란 알 수 없는 글을 박아넣고 부당이득을 했다.

미국 예찬을 하자는 게 아니다. 쇠락해가고 있어도 아직 미국은 세계제일의 대국이고 선진국이다.

그런 저력은 어쩌면 이런 데 있는지도 모른다. 핵무기나 달러의 힘이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