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천 ‘방음터널 화재’… 또 人災(인재)다
과천 ‘방음터널 화재’… 또 人災(인재)다
  • 국토일보
  • 승인 2023.01.02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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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음터널, 화재 등 안전규정 관련법 사실상 없어
전국 55곳 방음터널 언제든 안전사고 노출돼
정부가 인정한 저소음 포장기술, 대안책 중 하나
불연재 사용 의무화 등 제도적 대책 마련 시급

[국토일보 특별취재팀=선병규, 이경옥, 김현재 기자] 

2023년 새해를 3일 앞둔 12월 29일 제2경인고속도로 방음터널 화재로 5명이 숨지고 41명이 중경상을 입는 참변이 일어났다.

이날 사고는 오후 1시49분께 경기 과천시 갈현동 제2경인고속도로 갈현고가교 방음터널을 지나던 5t 폐기물 집게 트럭에서 원인미상 화재가 나며 발생했다.

이 불은 플라스틱류로 된 방음터널 벽과 천장으로 순식간에 옮겨붙으면서 터널속은 화염과 검은 연기로 휩싸였고, 결국 46명의 사상자 발생한 것이다.

우연한 사고가 아닌 인재(人災)로 볼 수 있는 이번 방음터널 참변의 원인을 다각적으로 따져봤다.

제2경인고속도로 방음터널 화재 모습
제2경인고속도로 방음터널 화재 모습

▮방음터널, 화재 등 안전규정 사실상 전무

최근 경기도의회 김현석(국민의 힘) 의원은 “현재 설치돼 있는 방음터널은 이름만 터널일뿐 안전과 관련된 규정이 사실상 전무”하다며 “소방법상 방음터널은 일반터널로 분류되지 않아 옥내 소화전을 비롯한 소화설비를 갖추지 않아도 되고, 스프링클러 역시 설치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방음터널은 터널 형태를 한 방음벽일 뿐 시설의 안전 기준은 너무나 미흡하다”면서 “국토안전관리원 기준으로도 터널에 해당하지 않아 시설물 안전 점검 및 정밀 안전진단 대상에서도 제외된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주민 민원에 못 이겨 우후죽순 설치에만 집중할 게 아니라 안전 규정부터 강화해야 한다”면서 “이번 화재 방음터널에 쓰인 PMMA(폴로메타크릴산메틸)는 방연 소재이긴 하나 불연 소재가 아니어서 고열에는 불쏘시개 역할을 한다”고 밝혔다.

이번 화재는 방음터널에 사용된 플라스틱 소재로 인해 피해를 더욱 키운 셈이다.

방음터널에는 강화유리가 많이 사용되지만 플라스틱 소재가 가격도 저렴하며, 더 가볍고 설치가 쉬워 많이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꼼수가 큰 화(火)를 불러온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내화자재업계 한 관계자는 “과거에는 무기단열재가 방음판으로 많이 사용된 적도 있지만, 현재는 채광성이 있는 자재들로 거의 대체됐다. 아무래도 미관 쪽에 치중돼 진행이 되지 않았나 싶다. 기준이 없다보니 가연성 소재가 아무렇게나 사용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채광성을 확보하려면 해외처럼 일부는 불연성 자재, 일부는 채광성 있는 망입유리 성능에 준하는 자재를 사용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모색해야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환경부-국토부, 방음터널 안전법 사각지대

방음 터널 또는 방음벽의 화재 예방을 위한 재질 및 설계 관련 기준이 ‘사실상 없다’는 비판이다.

현행 환경부 소관의 ‘방음 시설의 성능 및 설치 기준’에는 방음 시설을 설계할 때 기본적인 고려 사항으로 주변 경관과의 조화, 강풍·강우·진동에 의한 변형 및 파괴 방지 등만 포함돼 있다. 

하지만 화재 안전성을 고려한 방음판 설계나 방음 자재 기준 관련 내용은 찾아 볼 수 없다.

특히, 방음 시설 설치 때 화재에 강한 재질을 사용하도록 한 정부 지침이 2012년 삭제됐다.

국토교통부는 1999년 ‘도로설계편람’ 제정 당시 ‘방음벽에 사용되는 재료 중 외부는 불연성 또는 준불연성이어야 하고 내부의 흡음재료는 자기 소화성으로 연소 시 화염을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고 규정했다.

그러나 2012년 개정판부터 해당 내용이 삭제됐다. 즉, 2012년부터 2016년 사이에 건설된 방음터널이나 방음벽은 화재 등에 무방비 상태인 것이다. 

이 당시 어떤 이유로 화재 안전 관련 해당 내용이 왜 삭제됐는지 조사가 필요하다. 

이후 2016년 ‘도로터널 방재시설 및 관리지침’이 개정되면서야 방음터널 방재시설 설치 의무화 규정이 신설됐다. 하지만 이 규정에서도 불에 타지 않는 강화유리 등을 사용해야 한다는 의무 내용은 명시돼 있지 않았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전국 55개 방음터널 안전성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꼭 방음터널 고집해야 하나. 저소음 포장기술 대안 가능한가.

수도권의 경우 고층 아파트가 밀집하면서 방음벽보다는 방음터널을 요구하는 주민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지자체는 어쩔수 없이 방음벽보다 예산이 훨씬 많이 소요되는 방음터널을 짓고 있다.

전국에 걸쳐 방음터널 55개가 설치돼 있고, 제2경인고속도로 방음터널처럼 화재 참변에 언제든 노출돼 있는 실정이다.

최근 도로 소음을 크게 낮추는 아스팔트 포장 신기술이 상용화 되고 있다.

이제는 방음터널이나 방음벽을 통한 소음 예방이나 민원 해결보다는 도로 자체에서 소음을 낮추는 방안을 찾아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않다.

저소음 도로포장 전문기업 A사는 작년 12월 ‘아스팔트콘크리트 포장의 표층을 복층구조로 시공하는 배수성 저소음 포장공법’에 대해 국토교통부 신기술(947호) 지정을 받았다. 

이 신기술은 기존 단층 구조에 비해 소음을 크게 줄였기 때문에 방음터널이나 방음벽 설치비용보다 절감돼 경제성도 높고 화재 등 안전사고 유발 가능성도 낮은 것으로 알려졌으며, 2012년에 환경부로부터 신기술과 함께 기술검증도 받은 바 있다.

신기술로 도로를 포장했을 경우에는 9dB(데시벨) 감소효과가 있으며, 이는 기존 방음터널과 방음벽보다 소음 저감 성능이 동등하거나 우수할 수 있는 수치다.

도로 소음을 저감하는 방법은 보통 ▲소음원 제어 ▲공기이동 경로 제어 등 2가지로 나눈다.

소음원 제어는 타이어 마찰음을 줄이는 저소음 도로포장기술이 적용되고, 공기이동경로제어는 방음터널이나 방음벽이 대표적이다.

그렇다면 유지관리가 편하고, 돈도 적게 들고, 화재 등 안전사고 위험이 상대적으로 낮은 저소음 포장기술이 활성화 안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기존에 방음터널이나 방음벽 업계의 영업력이 워낙 두터워 저소음 도로포장 기술이 끼어들 영역이 적었다”면서 “몇년 전부터  방음벽이나 터널대신 저소음 도로 포장기술을 적용하는 사례가 조금씩 늘어나는 추세다”라고 전했다.

제2경인고속도로 방음터널 화재 참변을 계기로 국토교통부, 환경부 등 정부 당국은 관련 법령을 신속히 재정비해야 하는 과제가 던져졌다.

아울러 도로자체 소음을 줄이는 저소음 도로 포장기술에서도 해답을 적극적으로 찾아야 할 때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