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談事談(시담사담) 히포크라테스 선서에서 건설을 배운다
時談事談(시담사담) 히포크라테스 선서에서 건설을 배운다
  • 국토일보
  • 승인 2021.07.1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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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우 영 연구위원/한국건설산업연구원

[時談事談(시담사담)-이 시대 우리들의 살아가는 이야기]   

히포크라테스 선서에서 건설을 배운다

김 우 영 연구위원
김 우 영 연구위원

건설산업에 발을 내딛는 초보 엔지니어들은 가끔 선배들로부터 옛 경험담을 듣고는 한다. 그래도 명문대학교를 졸업해서 대기업 건설회사에 취업을 했고 미래 최고 기술자의 꿈을 가지고 현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지나가던 고급차에 타고 있던 엄마가 어린 아들에게 했다는 말. ‘너도 공부 안하면 저 아저씨처럼 된다.’ 사람들에게는 건설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은 모두 인생의 낙오자처럼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1900년대 중반 전쟁의 화마가 쓸고 지나간 자리에서 이제 막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워나가던 때에 건설산업은 우리나라 경제의 버팀목이었고 국가경제 진흥의 주춧돌이었다. 70년대에는 외화를 벌어들이는 수출역군으로서 대단한 활약을 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다. IMF와 세계금융위기, 최근의 코로나 사태 등과 같은 국가적 위기로 경제가 위기에 처하고 일자리 창출과 밑바닥의 경제를 끌어올리는 힘이 필요할 때가 되면 정치권은 항상 건설산업을 뒤돌아보았다. 그럴 때마다 건설산업은 좋은 소리를 듣지는 못하지만 어찌됐던 경제가 제자리에 올라갈 수 있는 힘을 보태주는 든든한 맏형과 같은 역할을 해왔다.

이처럼 국가경제를 뒷받침해주는 산업역군의 이미지만을 가지고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더럽고(Dirty), 위험하고(Dangerous), 힘든(Difficult) 3D 산업이 건설산업의 또 다른 얼굴이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수천년에 걸쳐서 이어져 온 산업이고, 대한민국정부수립 이후 한 세기 이상의 역사를 가진 산업임에도 불구하고 건설현장은 여전히 더럽고 위험하다. 건설산업 내부에서만 보면 과거에 비해서 많이 깨끗해졌고 안전해지기는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럽고 위험하다. 여전히 공부 안하면 저렇게 되는 아저씨들이다.

소방관들도 더럽고 위험하다. 그런데 소방관들은 공부 안하면 저렇게 되는 아저씨들이 아니다. 불을 끄고 사람을 살리는 희생정신으로 가득 찬 영웅들이다. 건설산업은 소방관들이 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고층건물과 큰 다리를 건설하는 고급 기술을 가졌음에도, 건물에 화재가 나고 다리가 무너지면 그 원흉으로 지목된다. 사람들이 건설산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일까? 건설산업을 오해하는 것인가?

아무리 많은 목숨을 살린 의사라도 비양심적인 한두번의 행위로 사회적으로 지탄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좋은 건물과 역사에 남을만한 구조물을 만들었어도 부실공사 한번으로 그 명성과 이미지는 바닥으로 추락한다. 의사가 실수를 하면 한 사람에게 해를 입히지만, 건설산업은 건물이 무너지고 다리가 쓰러져 많은 사람들에게 해를 입힐 수 있다. 이런 문제에 건설산업이 잘못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가?

실수로 인한 잘못도 있었겠지만, 비양심적이고 비도덕적인 잘못도 적지 않았다. 의사들은 히포크라테스 선서라는 것을 통해서 양심적으로 의료행위를 할 것을 맹세한다. 그런 맹세를 한다고 해서 항상 양심적이지는 않겠지만, 그 산업 전체와 그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하는 행위의 기준을 제시한다. 우리는 의사가 양심적으로 우리를 진료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내 몸을 맡긴다. 의사가 영리를 위해서 무슨 짓이라도 할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못할 것이다. 사람들은 건설공학자들이 전문가라고 믿고 양심적으로 건설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집에서 편안하게 잠을 자고 차를 타고 다리를 건넌다.

많은 의사들이 비양심적인 행위로 사람들에게 해를 가한다면 의료산업이 영위될 수 있겠는가?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의사들의 양심을 지키라는 맹세이기도 하지만, 의료산업을 지탱하는 주춧돌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비윤리적인 공학이 어떻게 사람을 해하는지 많이 보아왔다. 세월호가 그랬고, 성수대교, 삼풍백화점이 그랬다. 모든 공학은 사람들의 신뢰에서 그 당위성을 인정받는 것이고 그 신뢰가 산업을 지탱하는 힘이다.

우리는 일본과 친하지가 않은 것 같다. 아니 일본을 싫어한다. 필자는 오래된 일본인 친구가 있음에도 그렇다. 왜 그런가? 일본은 과거에 우리나라에 수많은 악행을 저지르고도 전혀 반성하지 않고 여전히 당당하기 때문이다. 독일은 유태인 홀로코스트에 반성하고 사죄를 한다. 독일 베를린에는 홀로코스트 기념비 2,711개가 설치돼 있다. 베를린에 출장차 갔다가 그곳에 처음 가봤던 필자는 마음속 깊이 충격을 받았다.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을 속속들이 드러내고 비난을 달게 받고 반성하는 모습으로 이해되었다. 일본과는 너무나도 대조적인 모습이었고, 어쩌면 잘못을 숨기기에 급급한 우리와도 비교되는 모습이었다. 진정한 힘과 권위가 어디에서 나오는지 보여주는 것으로 생각됐다.

모든 사람과 단체는 잘못을 저지른다. 모든 사람이 양심적이라고 할 수 없으며, 항상 윤리적이지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심적이고 윤리적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규범을 우리 마음속에 담고 살고 있으며,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는 비판하고 고치려고 노력한다. 수십년동안 잘못된 길을 가면서도 변명하고 핑계대면서 스스로 자정하는 노력을 하지 않음으로써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그 원흉으로 지목되는 처지에 스스로 놓여진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

미래의 우리나라 건설산업이 더욱 성장하고 국민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산업이 되기 위해서는 히포크라테스 선서와 홀로코스트 기념비에서 교훈을 얻어야 할 것 같다.

“나는 나의 능력과 판단에 따라 내가 환자의 이익이라 간주하는 섭생의 법칙을 지킬 것이며, 심신에 해를 주는 어떠한 것들도 멀리하겠노라… 내가 이 맹세를 깨트리지 않고 지낸다면, 그 어떤 때라도 모든 이에게 존경을 받으며, 즐겁게 의술을 펼칠 것이요 인생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하나 내가 이 맹세의 길을 벗어나거나 어긴다면, 그 반대가 나의 몫이 될 것이다” (히포크라테스 선서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