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참사는 ‘인재’…“기본부터 지키지 않았다”
광주 참사는 ‘인재’…“기본부터 지키지 않았다”
  • 이경옥 기자
  • 승인 2021.06.11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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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 동구 학동 재개발 건축물 붕괴 17명 사상

= 철거 당시 해체계획서 검토부터 시공까지 ‘문제’

= 해체 전문가 전무… 저가 수주·공기단축 등 비일비재
광주시 동구 학동 소재 건축물 철거 붕괴사고 현장 일부.

[국토일보 이경옥 기자] 광주 참사로 원칙과 기본을 무시한 건설현장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또 인재다. 9일 광주의 재개발 공사장에서 철거 중이던 5층 건물이 대로변으로 그대로 무너지며 도로를 달리던 시내버스를 덮쳤다. 이 사고로 버스 안에 있던 9명이 목숨을 잃고 8명이 중상을 입는 등 17명의 사상자를 냈다.

이번 사고로 경찰 조사가 시작됐고, 국토부는 산학연 전문가로 구성된 중앙건축물사고조사위원회 등을 꾸렸다. 

업계 전문가들은 이번 사고를 예견된 인재로 보고 있다. 무엇보다 해체계획서 검토 자체에도 문제가 있었고, 계획서 대로 시공을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기본부터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명기 대한민국산업현장단 교수는 “해체계획서 내용이 너무나 일반적이다. 현장에 따라 해체 순서와 그것을 명시한 도면 등 세부적인 계획서가 필요한데, 이번 현장은 그런 것이 없다. 소규모 현장들의 경우 일반적인 해체계획서로 지자체에서 관행적으로 허가를 받고 있고, 그 마저도 실제로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다”라고 말했다.

통상적으로 규모가 큰 현장은 국토안전관리원에서 해체계획서를 검토한다. 이 경우에는 세부적인 내용까지 구체적으로 명시한 계획서를 제시하고 검토하지만, 소규모 현장은 예외다. 

해체계획서 자체를 해체 전문가가 검토하는 것도 아니다. 건축사, 기술사 등 안전진단기관 검토를 관행적으로 하고 있지만, 실제로 해체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업계 현실이다.

사실은 해체를 잘 모르는 감리자가 해체 감리를 하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소규모 공사 현장의 경우 90%가 해체계획서대로 시공을 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해체 공사비용 자체를 저가로 수주하고 있고, 또 거기서 재하도를 하게 될 경우에는 비용을 더 줄여야 하기 때문에 무리해서 공기를 단축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번 광주현장 역시 원칙대로라면 30일은 걸려야 할 해체 기간을 단 이틀 만에 끝내려고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해체계획서 대로 작업하면 시간이 오래 걸리니 중간 정도에서 먼저 해체하고, 근무 자체를 자율적으로 넘어갈 수 있도록 눈 감고 있다는 것이 업계 관행이라는 것이다.

또 이번 광주 현장처럼 비상주감리현장 역시 건축물관리법에 따라 추락이나 낙하위험이 크고, 크레인과 같은 건설장비가 사용될 경우 현장입회 감리를 하게 돼 있지만, 이 부분도 지켜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동구청 역시 안전에 유해하다고 판단되는 현장에 대한 민원이 들어왔을 경우, 현장점검을 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나 하지 않았다. 해체에 대한 지자체의 개념 자체가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해체 전문가 부재도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국내에 해체에 대해 잘 아는 전문가는 손에 꼽을 정도로 부족하다.

실제로 대학원 해체공사 강의는 전무하며, 건설기술 교육기관이나 법정 교육기관에서 관련 강의를 찾아볼 수 없다.

더불어 관련 업계 관계자들 역시 해체공사나 가설공사에 대한 중요성을 못 느끼고, 실제 품질에 영향을 미치는 본 공사에만 신경을 쓰고 있는 풍토가 만연하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해체계획서 작성 역시 철거업체에서 하고 있다. 철거업체들 역시 영세한 곳이 대부분이어서 인터넷에 있는 자료를 짜깁기해서 해체계획서를 작성할 가능성도 상당히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최명기 교수는 “해체계획서 작성과 검토를 철거업체가 할 것이 아니라 건설안전기술사들이 직접해야하는 것이 맞다. 국내에 해체 전문가들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다른 전문 자격사들에 비해 안전을 하시는 분들이 그래도 제일 많이 알고 있다”고 말했다.

또 법령에 따라 안전진단기관이 해체계획서를 검토할 수 있도록 돼 있는데, 회사나 단체 소속이 아니더라도 전문가들이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해체공사업 관련해서도 전문업종 업역 신설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철거업체들 대부분 영세한 곳들이 많아 프로젝트를 저가로 수주한 다음 장비 기사를 불러오고, 사람을 불러오는 형태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철거업체에 대한 인력과 장비기준이 적절한지도 검토해야 하는데, 이런 부분이 미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전 대책과 관련해서는 제도적인 부분은 어느 정도 완비가 돼 있으나 이행 확인이 미비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정부가 제제나 처벌에만 치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경제성만 중요하게 생각하고, 원칙과 기본을 무시하다보니 이런 문제가 계속 발생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