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이순신과 류성룡
[논단] 이순신과 류성룡
  • 국토일보
  • 승인 2012.01.09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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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영 진 건원엔지니어링 부사장


이순신과 류성룡

임진왜란은 조선건국 이래 최대의 ‘국가위기사태’였다. 그 당시 조정과 관료의 현실감각은 마비돼 있었다.

이순신을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하는 인사명령서가 이순신에게 도착하는데 69일이 걸렸다. 전쟁 중에 임금으로부터 직접 명령을 받는 최고사령관의 임명이 조정대신들의 당쟁에 의해서 이렇게 늦어진 것이었다.
하루가 급박한 전시상황에서 조정대신들은 당파의 이익을 쫓아, 또다른 자신들만의 싸움을 하고 있었다.

이순신의 삼도수군은 남해와 서해로 우회하는 왜군의 군수보급로를 차단함으로써, 적의 육군이 경상도 이북으로 진출하는 것을 억지했다. 한때, 선조 임금은 왜군에 쫒겨 의주까지 피난했었다. 그 때, 백성들은 한양과 평양을 버리고 떠나는 임금의 가마를 붙잡고 통곡했고, 임금의 호위부대는 채찍으로 길을 열었다.

임금을 쫓아 평양까지 진주하던 왜군은 군수보급이 차단돼 더 이상 올라갈 수 없었다. 적의 육군은 경상남도로 도로 내려와 눌러 붙었다. 이순신의 수군이 남해를 완전히 차단해서 뒤가 막혀 죽는 상황을 두려워했고, 왜군은 살아남기 위해 남해 해안마을에 머물렀다.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2년 전에, 류성룡(당시 우의정)은 전라도 정읍현감(종6품)으로 있던 이순신을 병마첨절제사(종3품)로 천거했다. 조정대신들은 반대했고, 이순신은 부임하지 못했다. 한 달 후, 이순신은 만포진 수군첨절제사(종3품)에 임명했으나, 다시 부임하지 못했다. 이듬해, 진도 군수로 발령됐으나, 사간원은 다시 반대했고 발령은 취소됐다.

류성룡의 끈질긴 노력으로 이순신은 전라좌수사(정3품)로 부임했다. 이순신은 부임 후, 쉬지 않고 전쟁준비에 몰두했다. 판옥전선을 고치고, 새로 만들었으며, 매일같이 진법훈련을 시켰으며, 군량미를 비축하고, 화포와 화살을 만들었다. 이듬해에 임진왜란이 발발했다.

이순신은 옥포에서 이겼고, 한산도에서 이겼다. 사천, 당포, 당한포, 율포에서 이겼다.
전쟁이 소강상태이던 정유년에 이순신은 체포돼 의금부로 끌려갔다. 죄목은 군공을 날조하고 임금을 기만했다는 것이다. 류성룡은 은밀히 구명운동에 나서고, 이순신은 짧은 문초를 겪고 풀려난다.

이 시기에 이순신의 후임으로 원균이 임명됐는데, 칠천량 해전에서 300여척의 조선수군은 전멸한다. 하루 밤낮의 싸움이었다.

풀려난 이순신은 백의종군하다가, 류성룡의 도움으로 삼도수군통제사에 복직했으나, 전멸하고 남은 수군은 고작 수졸 120명에 전선 10여척이었다.

왜군은 이 기회에 남해에서 서해로 우회하는 군수보급로를 확보하기 위해 330척의 함대를 이끌고 명량 수로로 들어오다 이순신의 12척 함대를 만나 으깨어졌다. 이 싸움은 전쟁의 국면을 완전히 바꾸었다. 왜군은 전쟁을 포기하고 본국으로 철병하고자 했으나 이순신에 의해 퇴로를 차단당했다. 왜 육군을 화물처럼 싣고 있던 250여척의 왜 함대는, 이순신에 의해 그 팔할이 남해 앞바다에 수장됨으로써, 전쟁은 끝이 났다.

세계경제가 위기상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세계를 호령하던 유럽의 강대국들이 갈 길을 찾지 못하고 허덕이고 있으며 기라성 같던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스가 무너지고 있다.

우리나라와 우리기업은 어떠한가? 이 위기를 극복할 방책이 있는가? 나는 그 방책을 사람에게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상의 모든 일은 사람에게서 시작되고, 사람에게서 끝이 난다. 위기상황에서 최고경영자는 좋은 인재를 등용하고, 알맞은 자리에 배치해 그 역할을 다하도록 해야 한다.

임진왜란 당시, 선병질적인 문제로 국사를 돌보기 어려운 선조를 대신해 류성룡은 조선의 최고경영자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가 이순신을 발굴, 또 다른 최고경영자로 임명하게 된다.

당시 수많은 반대를 물리치고, 이순신을 발탁한 류성룡의 인사 처리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전쟁 전체의 무게와 맞먹을 만큼 국가의 중대사라고 할 수 있다.

류성룡과 같이, 인재를 꿰뚫어보는 통찰력과, 기필코 그 인재를 알맞은 자리에 배치해 내고 마는 끈질긴 노력, 그 인재가 그 자리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켜주는 정치력이 필요하다.

오늘날의 기업의 역할은 단순한 이익단체의 기능을 넘어선다. 수 천명의 직원과 그에 딸린 가족들, 기업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사회의 각 조직들… 기업이 국가의 근간이 돼가고 있다.

류성룡의 인재발굴과 등용이 나라를 구했다. 그리고 오늘날의 대한민국에 이르고 있다.

세계적인 경제위기상황에서 기업을 운영하는 최고경영자에게 서애 류성룡과 같은 인사철학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