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리뷰] 행정 따로, 현장 따로… 안전은 없다
[기자리뷰] 행정 따로, 현장 따로… 안전은 없다
  • 김준현 기자
  • 승인 2019.07.06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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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형 작업발판이 시스템비계인가요?”

가설공사 추락사고 방지대책 세미나에서 발제자 발표 도중 건설업계 관계자가 이런 질문을 해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행정에서는 ‘일체형발판’이라 표현하지만, 현장에서는 ‘시스템비계’라는 용어가 익숙하기에 벌어진 해프닝이다. 정부와 업계간 소통 실태를 여실히 보여주는 현장이다.

인기리에 종영한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를 보면 역병이 퍼진 고을을 순찰하던 세종 이도가 백성 하나를 붙잡고 “피난을 가라고 공고를 붙였는데 왜 여태 여기에 있느냐” 다그치는 장면이 있다. 백성은 “한자를 읽지 못하는데 저게 무슨 말인지 알게 뭐냐”며 도리어 따졌던 그 장면이 생생하다.

정부는 2022년까지 사망사고를 절반으로 줄이기 위해 ‘건설현장 추락사고 방지 종합대책’ 계획을 구상했다. 핵심은 일체형 작업발판(시스템비계)의 현장 사용을 획기적으로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공공공사는 의무적으로 반영하고, 향후 시방서 및 설계기준 등 국가건설기준 개정을 통해 민간도 사용할 수 있도록 유도할 셈이다.

현장 반응은 그리 달갑지 않다. 특히 이날 세미나에서는 시스템비계 의무화가 추락사고 해결책이 아니라는 참석자들의 성토가 이어졌다.

업계 관계자들은 근로자가 절차만 잘 지키면 강관비계를 사용해도 추락사고를 줄일 수 있고, 시스템비계를 설치할 수 없는 현장이 많아 자재 변경만으로는 근본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아울러 스마트 안전장비를 2021년까지 의무화 한다는 공고 역시 별도 지원이 없으면 사용할 수가 없는데도 정부는 현장 중심 정책을 외면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토부는 민간공사 시스템비계 확대 방향 정책을 펼치는 것뿐, 완전 의무화는 아니란다. 또 강관비계만 설치해야 하는 현장은 가설구조물의 안전 검토 여부를 집중적으로 펼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한다. 왜 현장은 숙지하고 있지 못할까?

스마트 안전모에 대해서도 터널공사 등 공공발주에서만 활용할 가능성이 높고, 일반 건설현장에서는 스마트 안전모를 착용할 일이 없다고 하니 이런 불통도 없다.

정부가 향후 민간공사에 시스템비계 ‘의무화’, 스마트 안전모 ‘의무화’ 등 업계 부담이 될 자극적인 키워드를 강조해 혼란만 야기한 셈이다.

세종 이도가 역병이 퍼질 것을 예상하고 백성들에게 글을 남겼지만 한자를 모르는 백성들이 미처 대응하지 못한 것과 무엇이 다를까.

지난주는 매년 7월 첫째 주 월요일을 ‘산업안전보건의 날’로 정하고 국민들에게 안전의 중요성을 알리는 ‘산업안전보건 강조주간’에 맞춰 다양한 행사를 실시한 기간이다.

보여주기식 이벤트는 하지 말자. 1년 365일을 지켜보고 건설근로자에게 끊임없이 안전의식을 고취, 올바른 소통을 위한 실속 있는 대책을 내놓는 것에 집중하길 바란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지만, 아무 것이나 하면 아무렇게나 된다는 것! 정부는 명심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