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봉 스님과 김영한 할머니
효봉 스님과 김영한 할머니
  • 국토일보
  • 승인 2010.03.22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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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환의 세상만사] (주)삼미 대표이사 / 공학박사 / APEC 공인컨설턴트 / 기계기술사

2010년 3월 12일 법정 큰 스님께서 ‘무소유’라는 가르침을 남기고 우리 곁을 떠나셨다. 많은 사람들이 큰 스님의 명쾌한 법문과 고결한 성품을 존경해 왔기에 더욱 가슴이 메어지는 아픔을 느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큰 스님 뒤에 영향을 끼친 그림자 같은 두 분의 큰 어른이 계셨다는 사실은 잘 모른다.

한분은 은사스님이신 효봉스님이며 또 한분은 훗날 길상사가 될 자리를 내 놓은 요정 대원각을 내놓은 김영한 할머니이다.

효봉스님의 속명은 찬형(燦亨)이며 법호는 효봉(曉峰)으로 평안남도 양덕 출신이다. 1913년 일본 와세다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귀국하여 10년 동안 법조계에 투신하여 서울과 함흥의 지방 법원, 평양의 복심법원에서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최초의 판사가 돼 활동했다.

1923년에 직책상 한 피고에게 사형선고를 내리게 되었지만, 인간이 인간을 벌하고 죽인다는 데 회의를 느껴 법관직을 팽개치고 전국방랑의 길에 올랐다. 엿판 하나를 들고 3년 동안 참회와 고행의 길을 걷다가 1925년 여름 금강산에 이르러 출가 수도인이 될 것을 결심했다.

신계사(神溪寺) 보운암 (普雲庵)의 석두화상(石頭和尙)을 찾아 간단한 선문답(禪問答)을 나눈 뒤 머 리를 깎고 5계(戒)를 받았다. 38세의 출가는 매우 늦은 나이였으므로 이때부터 깨달음을 위한 용맹정진에 들어갔다.

밤에도 눕지 않고 앉은 채 좌선햇으며, 한 번 앉으면 절구통처럼 움직일 줄 모른다고 하여 이때부터 ‘절구통 수좌(首座)'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러나 출가한 지 5년이 지났지만 깨달음을 얻지 못하자, 1930년 늦은 봄 금강산 법기암(法起庵) 뒤에 단칸방을 짓고, 깨닫기 전에는 죽어도 밖에는 나오지 않을 것을 결심하고 토굴 안으로 들어갔다.

하루 한끼만 먹으며 토굴 속에서 용맹 정진하다가, 1931년 여름 도를 깨닫 고 벽을 발로 차서 무너뜨리고 토굴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석두화상에게 오 도송(悟道頌)을 지어올리자 석두화상은 오도를 인가했다.

1932년 사월초파 일에 유점사에서 동선(東宣)을 계사(戒師)로 구족계(具足戒)와 보살계(菩薩 戒)를 받았다. 그 뒤 1933년 여름 여여원(如如院)에서 수행하며 오후에는 불식(不食)했고, 겨울에는 마하연(摩訶衍) 선원에서 안거했다.

이어서 부처님의 사리가 모셔진 전국의 적멸보궁(寂滅寶宮)을 찾아 한 철씩 정진했고, 1936년에는 당대의 고승 한암(漢巖)과 만공(滿空)으로부터 도를 인가받았다.

1937년 조계산 송광사 삼일암(三日庵)에 안착해 10년 동안 후학들을 지도하여 정혜쌍수(定慧雙修)에 대한 확고한 구도관을 열어주었으며 이때 대종사 (大宗師)의 법계(法階)를 받았다.

김영한 할머니는 1916년에 태어나 1999년 돌아가신 분으로 법정스님이 대원각을 길상사로 창건되도록 시주하신분이다.

할머니는 16살 때 조선권번에서 궁중아악과 가무를 가르친 금하 하규일의 문하에 들어가 진향이라는 이름의 기생이 됐다. 월북시인 백석(1912∼1995)과 사랑에 빠져 백석으로부터 자야(子夜)라는 아명으로 불린 그는 한국전쟁 이후인 1953년 중앙대 영문과를 졸업해 ’백석, 내 가슴속에 지워지지 않는 이름’, ’내 사랑 백석’ 등의 책을 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가 지금의 길상사 자리를 사들여 운영하던 청암장이라는 한식당은 제3공화국 시절 대형 요정 대원각이 됐다.

법정스님이 쓴 ‘무소유’를 읽고 큰 감명을 받은 김 할머니는 1987년 미국에 체류할 당시 로스앤젤레스에 들른 법정스님을 만나 대원각 7,000여 평(당시 시가 1,000억원)을 시주하겠으니 절로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법정스님은 줄곧 시주를 받을 수 없다고 사양하다가 1995년 마침내 청을 받아들였다.

창건법회 날 김영한 할머니는 법정스님으로부터 염주 하나와 ‘길상화’라는 법명을 받았다. 당시 그는 수천 대중 앞에서 “저기 보이는 저 팔각정은 여인들이 옷을 갈아입는 곳이었습니다. 저의 소원은 저곳에서 맑고 장엄한 범종 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