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건설산업, 공사비 정상화 없으면 무너진다
위기의 건설산업, 공사비 정상화 없으면 무너진다
  • 김주영 기자
  • 승인 2018.05.1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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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찰·가격산정 방식 모두 현실 반영해야···공공공사 수주 업체 한계 직면

▲ 건설업계가 턱 없이 부족한 공공공사비를 조속히 정상화해 줄 것을 한목소리로 촉구했다..

[국토일보 김주영 기자] 건설업계가 연일 정부와 국회를 대상으로 공공공사비 정상화를 촉구하고 나섰다. 공공공사를 주로 수주하는 건설업체의 30% 이상이 매년 적자를 기록, 한계 상황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한건설협회에서 최근 3년간 종합건설업체가 준공한 공공공사를 분석한 결과, 일반 관리비와 이윤은커녕 재료비, 노부비, 경비에도 못미치는 적자 공사가 37.2%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공사 발주 시 설계가격 기준으로 예정가격을 산정해야 함에도, 현실이 이를 반영하지 못한 까닭이다.

실제로 설계가격의 약 13.5%를 삭감해 예정가격을 결정하는 불합리한 관행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경직된 ‘입·낙찰제도’로 인해 최대 23% 추가 삭감되는 현실도 건설업계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 지난 15년간 예정가격 대폭 하락···건설업 체감 낙찰가 급감
2015년 국무조정실 보도자료를 보면, 실적공사비는 제도가 도입된 2004년 이후 10년간 평균 36.5% 하락했다. 계단식 하락 폐해를 막기 위해 2015년 도입된 표준시장단가로는 역부족인 상황. 표준시장단가가 단 6.9% 상승에 그쳤기 때문이다.

표푼품셈 역시 2006년 이후 지속적인 하향 조정으로 최대 25%, 평균 18% 낮아졌다. 이를 종합해보면, 예정가격 기초금액(낙찰률 적용 이전)은 최대 14.6% 줄어들었다.

공공발주제도의 실질적인 낙찰률도 지속 하락했다. 적격심사제의 경우, 낙찰하한율이 17년간 고정됐다. 중소업체가 주로 수주하는 300억 원 미만 낙찰 하한율은 예정가격 대비 80%대를 유지하고 있다. 임금과 물가는 오르는 반면, 업계가 체감하는 낙찰가는 거꾸로 낮아진 셈이다.

여기에 지난해부터 100억~300억 원 구간은 실제 시공단가에도 못치는 표준시장단가가 적용돼 공사비의 4.5%가 획일적으로 삭감됐다. 투찰 하한이 없어 가격 경쟁이 유일한 무기이기 때문이다.

종합심사낙찰제는 더 심각하다. 낙찰률이 최저가낙찰제도의 덤핑 수준으로 떨어진 것. 저가 투찰에 대한 부작용을 근절하기 위한 제도가 사실상 ‘무용지물’이 된 것이다. 건설업계는 종심제에도 저가 입찰을 유도하는 다양한 장치가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턴키나 기술제안 등 기술형 입찰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적정 공사비가 지급되지 않아 업계가 오히려 참여를 기피하는 실정이다.

실제로 연도별 유찰비율은 2012년 6.8%에서 2014년 30.6%로 급상승했다. 이후 2016년에는 절반을 훌쩍 넘긴 53.1%를, 지난해 8월 기준으로 52.3%를 기록했다.

반복되는 유찰로 진행되는 수의계약 또한 예산절감에 방점이 찍혀있다. 협상기준기격이 기술형입찰 평균 낙찰률이 아닌 종심제 평균 낙찰률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반면 해외는 국내와는 다른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해외의 경우 90%를 상회하고 있는 실정. 심지어 미국 연방도로청은 2011년 107.5%의 낙찰률을 기록한 바 있다. 예정가격을 초과한 수치로, 국내에서는 찾아 보기 힘든 사례다.

■ 불공정·불합리한 관행에도 '꿀먹은 벙어리'···동반자 인식 개선 필요
공기 연장에 따른 추가비용 미지급도 건설업계의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요소다. 계약상대자의 책임 없는 사유로 인한 공기 연장으로 발생하는 추가비용은 국가계약법 및 계약예규에 따라 증액이 필요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감사원 의뢰로 건산연이 지난해 실시한 공기 연장에 다른 간접비 불공정행위 조사를 보면, 발주자 귀책으로 인해 ‘공기 연장 추가 비용’이 발생한 건설업체 비율이 61.6%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공사비를 청구했음에도 비용을 받지 못한 업체는 64.6%로, 심지어 청구조차 하지 못한 업체도 43.7%로 나타났다.

건설업계는 정부 대책이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고 비판했다. 2016년 12월 개정된 기획재정부의 예규는 계약금액 조정 사유를 ‘발주기관 귀책사유’로 한정시켰다. 천재지변 등 불가항력으로 인한 공기 연장을 고스란히 건설업체에 부담시킨 꼴이다.

발주기관의 불공정 관행도 심각하다. 올해 3월 감사원 조사 결과, 건설업체의 64.6%가 발주자 불공정행위를 경험한 것으로 응답했다. 그 중 공사비 산정제도의 문제와 발주자의 과도한 책임 전가가 우려 수준에 도달한 것으로 분석됐다.

그럼에도 건설업계는 ‘새로운 수주’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으로 손해를 감수하고 있다. 이의 제기 시 발부처의 불인정뿐 아니라 보복조치 등에 대한 우려다.

발주기관과 건설업체의 관계가 파트너가 아닌 '갑을'가 유지되는 상황으로 인식 변화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 시설공사 자재구입 가격 '현실성' 결여···산정기준 '양호한 구매조건' 모순
건설업계는 공공공사 가격 산정기준이 불합리하다고 지적했다. 조달청의 시설공사 자재가격 반영 수준이 매우 낮고, 일반 관리비도 실제 비용에 턱 없이 부족하다는 설명이다.

조달청은 시설공사 자재가격을 별도로 조사, 결정하고 있다. 이 가격은 위임된 시설공사에 적용하거나 설계가격의 적정성을 검토할 때 사용된다. 문제는 결정된 가격이 현저히 낮다는 것.

조달청 시설공사 자재가격은 ‘양호한 구매조건’을 기준으로 책정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실제 건설업체가 구매하는 시중 자재가격보다 월등히 저렴할 수밖에 없다.

조달청의 가격장보 및 시중물가지 가격을 비교하면 2018년 2월 기준 홈관의 경우 물가지 평균가격은 6만5,100원이지만, 조달청 가격은 5만445원으로 77%에 불과하다.

대표적인 마감재인 석고보드의 격차는 더욱 벌어진다. 석고보드의 조달청의 시설자재가격은 2,970원. 물가지 평균가격인 4,093원의 72.6% 수준이다.

입찰 낙찰률을 고려할 경우 실구매가는 더욱 낮아지는 만큼 중소규모 건설현장은 당연히 적자를 보게 된다. 무엇보다 조달청 시설자재가격은 다른 발주기관에도 적용, 그 파급영향이 전체 공공공사로 번진다.

일반관리비도 부족하다고 건설업계는 호소했다. 조달청은 시설공사 예정가격을 산정할 때 ‘원가 계산 제비율 적용 기준’을 마련했지만,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건설업계는 꼬집는다.

공사기간 장기화, 각종 규제로 인해 일반 관리비가 지속 상승하는 최근 상황에서 실제 환경에 부합된 제경비율 조정이 필요하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100억 원 미만 공사를 수주하는 6등급 이하 업체의 실제 일반관리비율은 법적상한인 6%를 웃도는 것으로 나타나 실질적인 대책 마련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 정부 정책 획일적 적용 부작용 초래···건설현장 특성 고려해야
정부의 각종 정책 변경도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사후정산제. 법정 근로시간 단축,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그 것이다.

건설업계는 사후정산제 시행이 시공 품질과 건설 안전에 악영향을 준다고 지적했다. 사회보험료 등 일부 항목은 예정가격 금액을 100% 반영해 투찰해야만 한다.

그 결과, 낙찰률이 고정된 적격심사제의 경우 일종의 풍선효과가 발생해 직접공사비를 삭감하게 되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100억원짜리 공사의 경우, 직접공사비의 0.6%인 약 3,450만원이 삭감되는 셈이다. 그만큼 안전에 소홀해질 수 밖에 없다.

건설기술진흥법 상 ‘안전관리비’, ‘품질관리비’도 낙찰률 적용 배제가 예정돼 어려움을 가중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또한 국민연금 등 사회보험료 가입대상 확대 항목으로 부담이 늘어 진행 중인 건설사업의 경우 보험료 부족 사태도 우려되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건설업계는 변경되는 정책에 대한 공감은 인정하지만, 신규 발주분부터 적용하고 개별 기업이 아닌 프로젝트별로 적용해야 현장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공사비 부족이 얼마나 심각하면 업계가 거리에서 호소하겠냐”며 “이대로 가면 건설업체도 쓰러지고 국민안전도 쓰러질 수 밖에 없다. 일한 만큼 제값을 받고 제대로 시공할 수 있는 환경이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고 성토했다.

한편 건설업계의 목소리를 반영해 16일 대한건설협회, 대한전문건설협회, 건설기술인협회, 시설물유지관리협회 등 22개 건설관련 단체들이 한자리에 모여 ‘공사비 정상화 탄원 및 전국 건설인 대국민 호소대회 선포를 위한 공동 기자회견’을 개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