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丙)의 눈물] 가설기자재 대여업체 하수급자 인정 안돼… 제도개선 시급
[병(丙)의 눈물] 가설기자재 대여업체 하수급자 인정 안돼… 제도개선 시급
  • 김준현 기자
  • 승인 2019.08.12 11: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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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관비계는 위험·시스템비계는 안전? ‘어불성설’… 안전수칙 준수가 핵심
하수급인 인정 지급 보증 의무화로 취약한 현실 개선돼야
정부, 시스템비계 의무화는 탁상공론주의적 발상 ‘우려’
강관비계 소규모 업체 보호장치 마련도 시급

 건설의 시작을 알리는 가설기자재업계가 건설산업기본법에서 명칭조차 주어지지 않아 대여대금 지급의무화와 지급보증으로부터 외면 받고 있다. 또 건설현장 추락사고 주범으로 몰려 각종 규제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심지어 정부가 내놓은 해결책, 일체형발판(시스템비계)을 소화하지 못하게 될 소규모 업체들은 비명을 지르고 있다.

본보는 건설업계의 기초체력과도 같은 가설업계의 고충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집중 탐구했다.

 

■ 가설기자재 어두운 현주소

가설기자재는 비계, 동바리, 파이프서포트 등 가설구조물을 구성하고 있는 부품의 재료를 말한다. 비계는 재료운반이나 근로자의 통로 및 작업을 위한 발판이고, 동바리는 기둥 밑의 움직임을 방지하는 수평 연결재이다. 파이프서포트는 ‘기둥’, 현장에선 ‘받침’으로 불린다. 이러한 자재들을 하나로 묶어 작업대를 만들어야 비로소 건설이 시작된다.

그러나 이들은 스스로 을(乙)도 아닌 병(丙)의 위치에 있다고 규정할 정도로 건설업 내 실질적 취약 업종에 처해있다.

특히 가설업계는 “자재를 납품하고도 오랜 시간이 지나야 대금을 지급 받거나 심지어 받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성토했다.

또 “건설현장에 있어 가설기자재는 건설근로자의 발이자, 길이다”라며 “좋은 품질의 자재를 대여해주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급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어야 한다. 이를 통해 더 나은 제품을 공급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일체형발판(시스템비계)을 전체 시장에서 60%까지 늘린다는 정부의 방침 역시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정부는 건설현장 추락사고를 획기적으로 줄이기 위해 시스템비계 카드를 꺼냈지만, 업계에서는 자재변경만으론 문제의 본질을 해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더불어 수십 억 원대 시스템비계를 보유할 수 없는 소규모 업체(강관비계 소유주)들은 시장에서 퇴출될 위기에 처해있다.

가설업계는 “건설현장 추락사고는 정해진 규칙을 지키지 않아 발생하는 사고가 많다”며 “시스템비계가 추락사고 방지 만능열쇠라고 생각한다면, 정부는 탁상공론만 펼친 격이다”라고 지적했다.

 

■ 가설업계, 하수급인 인정으로 권리 보장돼야

현재의 건설생산 체계는 종합건설업체가 전문건설업체에게 하도급을 주고, 전문건설업체는 가설기자재를 대여하기 위해 가설업체와 계약을 맺는 구조다.

이 구조에서 전문건설업체는 종합건설업체와의 거래에 있어 예상치 못한 부도나 파산, 기업회생신청으로 인해 임금과 자재·장비 등의 하도급대금을 받지 못하는 경우에 대비한 ‘안전장치’를 마련했다. ‘하도급대금지급보증서’가 그 것이다.

그러나 전문건설업과 달리 가설업계는 건설산업기본법에서 명칭 자체가 존재하지 않아 대금 지급 의무화와 보증에 대한 법적 근거가 없다.

한국건설가설협회 ‘가설기자재 대여대금 체불현황 조사 결과’에 따르면, 가설산업 전체시장에서 대여대금 중 지급받지 못한 체불금액은 매년 1,965억원으로 추정되고 있다. 5년간 1개 대여업체당 평균 체불액은 9억4,000만원, 체불업체 수로는 21개 업체에 이른다.

가설업계는 “상거래에 있어 대가와 재화의 교환은 기본이다”라며 “상황이 좋지 않아 편의를 봐달라는 식의 상거래가 습관이 된다면 상대적 약자의 위치에 놓인 누군가는 여전히 피눈물을 멈출 수 없을 것이다”라고 호소했다.

현행법은 수급인이 도급받은 건설공사에 대한 준공금 등을 지급받은 경우, 받은 날로부터 15일 이내에 하수급인에게 현금으로 지급토록 규정하고 있다. 또 건설공사용 부품을 제작 납품하는 업체들은 해당 규정을 준용해 부품대금을 적시에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법적 근거를 담고 있다.

그럼에도 이와 유사하게 본구조물 건설공사를 위해 필수적으로 설치·사용하는 임시구조물인 가설기자재를 대여하는 업체는 하수급인에 대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어 제도 개선이 필요한 입장이다.

이에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정동영 의원(민주평화당 대표)은 가설기자재 대여업체를 수급인으로 인정하고 대금을 15일 이내에 지급토록 하는 신설법안을 마련했다.

구체적으로 ‘발주자’는 ‘발주자 또는 수급인’으로, ‘수급인’은 ‘수급인 또는 하수급인’으로, ‘하수급인’은 ‘가설기자재 대여업자’로, ‘하도급대금은’은 ‘가설기자재 대여대금’으로 본다.

또 ‘건설기계 대여업자’를 ‘건설기계 대여업자 또는 가설기자재 대여업자’로 하고, ‘하수급인 또는 건설기계 대여업자’를 ‘하수급인, 건설기계 대여업자 또는 가설기자재 대여업자’로 준용토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 의원은 “가설기자재를 대여하는 자에 대해서도 현행법상 제작납품업자와 같이 대금 지급에 관한 규정을 준용토록 해야 한다”며 “발주자 등이 불이익행위를 할 수 없도록 가설기자재를 대여하는 자에 대한 보호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토교통부에서도 가설기자재 대여업자를 하수급자로 인정하는 당초 법안 취지에는 동의하는 모양새다. 국토부 관계자는 “가설기자재라는 것 자체가 건설산업기본법에 대한 법적 근거가 없기에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알 수 없지만 대금 체불이 발생하지 않는 법안에 반대할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 본질을 잃은 시스템비계, 속도조절론 제기

정부가 안전한 건설현장을 조성한다는 이유로 시스템비계 사용 확대방안을 내놓아 가설기자재 업계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정부에 따르면, 전체 산업재해 사망자 절반 이상이 건설현장에서 발생했고, 이 가운데 절반이 추락사고에서 일어났다. 그 중에서도 가설공사 추락사고, 또 그 중에서도 재래식 강관 작업발판(강관비계) 사용이 주범이라는 게 이유다.

국토부는 지난 4월 안정성이 검증됐다는 시스템비계를 공공공사에 의무적으로 반영하고, 향후 민간도 원칙적 사용을 유도할 셈임을 밝힌 바 있다.

정부의 방침과 달리 대부분의 가설기자재 업계는 순응하지 않는 모양새다. 가설업계 대표는 “비계는 용도에 따라 쓰임새가 다른데도 불구하고 강관비계는 위험하고, 시스템비계는 안전하다는 식의 논리는 대체 어디서 나온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시스템비계는 정방향 건축(아파트 등)에 유용한 공사인데 강관비계로 밖에 사용할 수 없는 한옥이나 플랜트 사업에도 시스템비계를 적용할 것이냐”고 정부 방침을 꼬집었다.

이어 “특수한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이 강관비계를 사용해야 한다고 정부가 말한다면, 그건 또 정부가 지향하는 안전정책과는 맞지 않으니 모든 것이 어불성설이다”라며 “정부는 비계에 대한 이해도 없이 그저 보여주기식으로 시스템비계를 의무화해 업계에 혼란만 조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해외 건설현장 어디에서도 추락사고를 줄이기 위해 시스템비계를 확대한다는 방침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강관비계는 위험하고 시스템비계는 안전하다는 식의 사고방식은 위험하다는 주장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지난 3월 18일 충북 청주시 OO대수선공사 현장에서 시스템비계가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청주 사고는 발판에 안전 하중 이상의 건축자재를 올려놔 발생한 경우다. 품질관리와 안전관리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강관비계와 다를 것이 없음이 드러난 사례다.

단관비계용강관(속초 엑스포타워).
단관비계용강관(속초 엑스포타워).

■ 고사직전 강관비계 업계, 퇴출 수순 밟을까

국토부는 오는 2022년까지 신규공사부터 시스템비계를 설계단계에 반영하라고 주문했고, 수행 중인 공사는 계약을 변경하라고 지시한 상태다.

건설가설협회 관계자는 “법적으로 강관비계 사용을 금지할 순 없다지만, 설계단계에서 시스템비계가 적용되면 건설업체는 시스템비계를 사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설업계는 이번 조치가 시장 혼란을 유발할 뿐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경영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강관비계 제조·대여업체는 시장 축소에 따른 생존을 걱정하고 있는 실정이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비계시장에서 강관비계가 차지하는 비중은 60%에 이른다. 시스템비계와 강관비계를 모두 소화할 수 있는 업체는 관련 공사에 따라 용도를 변경할 수 있지만, 강관비계만 소유한 업체는 시스템비계가 건설현장에서 입지를 넓혀갈 수록 설 자리를 잃게 된다. 강관비계는 5억에서 10억원으로 소유할 수 있으나, 시스템비계는 초기 투자비용이 30억원 이상 드는 고가 품목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을 공장에서 반제품형태로 만들어져 건설현장에 투입되는 시스템비계를 사용할 수 없는 현장도 존재하는 점을 정부가 간과했다는 지적이다. 강관비계를 사용해야 하나 의무화 조치로 인해 오히려 건설 근로자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소규모 대여업체들을 위한 대책 마련에 소극적이다.

가설업계 관계자는 “이미 가설시자재 시장은 강관비계에서 시스템비계로 전환하는 중이지만, 정부 부처에서 정책적으로 급격한 의무화를 통해 강제함에 따른 부작용도 있을 수 있다”며 “시장 상황을 보면서 속도조절을 할 필요성이 있고 소규모 가설기자재 대여업체를 위한 생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건설현장 가설기자재 사고의 주된 원인을 가설기자재 자체의 재료적인 문제로 접근하기 보다는 시공과 근로자의 안전수칙 준수 여부가 더 중요한 요인으로 보이는 만큼, 향후 대비책 마련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