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의날 특집] 라돈 사태, 안일한 정책 추진 따른 人災다
[환경의날 특집] 라돈 사태, 안일한 정책 추진 따른 人災다
  • 선병규 기자
  • 승인 2018.06.11 08: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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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주택·다중이용시설·학교시설, 라돈 관리기준 제각각 ‘문제’
라돈 관리기준 일원화 및 의무화 등 정부 발빠른 조치 촉구
단독주택·건축자재, 라돈 측정 의무조항 無…제도 개선 시급
환경부, “전문가 의견 청취 및 공개포럼 후 관련법 개정할 것”
▲ 최근 환경운동연합을 비롯한 11개 시민사회 단체들은 일명 ‘라돈 침대’ 피해자들과 함께 정부의 미온적 대처를 규탄하고 종합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국토일보 선병규 기자, 김경한 기자] 최근 환경부가 송옥주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에게 제출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9개 지역의 아파트에서 라돈 수치가 세계보건기구(WHO)의 관리기준인 100Bq/㎥(베크렐)을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강릉, 세종 등의 아파트 178가구 중 27가구의 라돈 농도가 100베크렐을 초과했다.

라돈은 폐암을 일으키는 1급 발암물질로 ‘침묵의 살인자’로도 불린다. 담배 다음으로 폐암발병률이 높지만, 무색·무취·무미의 기체 상태이기 때문에 실내 거주자들이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이 생명에 위협을 받을 수 있다.

라돈 관리는 비단 아파트뿐만 아니라, 단독주택이나 다중이용시설, 학교 등에서도 미흡한 실정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발 빠른 제도 개선과 후속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번 특집호에서는 라돈 관련법의 맹점과 개선방안에 대해 살펴봤다.

■ 1급 발암물질 ‘라돈’

라돈은 우라늄이 몇 차례 붕괴를 거치는 과정에서 생성되는 기체다. 사람에게 연간 노출되는 방사선의 85%는 자연방사선에 의한 것인데, 그 중 50%는 라돈에 의한 것이다. 화강암이나 변성암과 같은 암석, 토양, 우라늄이나 라듐을 함유한 건축자재에서 발생한다. 우라늄이나 라듐이 포함된 암반 주변에 흐르는 지하수에 포함되기도 한다.

라돈 농도는 지역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데, 대체로 표층 토양에 라듐이 많이 포함된 지역과 화강암 분포지역에서 높게 나타난다. 우리나라도 화강암·편마암 지질대나 옥천단층 지대에서 라돈농도가 높게 나오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건축자재 중에는 주로 석고보드에서 라돈이 방출될 수 있으며, 고농도 라듐이 포함된 모래나 자갈로 만든 벽돌, 모래, 콘크리트 등에도 포함될 수 있다.

라돈의 심각성은 라돈이 흡연 다음으로 폐암을 일으키는 1급 발암물질이라는 데 있다. WHO는 전 세계 폐암발병률의 최대 14%가 라돈 노출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박경북 김포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라돈 148베크렐은 담배 8개비와 같은 수준으로, 담배 다음으로 폐암발병률이 높다”며 “담배는 우리 스스로 취사선택할 수 있지만 라돈은 건물이 건축되고 나면 선택 권한을 행사할 수 없다”며 그 심각성을 전했다.

 

■ 라돈 관리 ‘권고기준’이 문제

현재 국내 라돈 기준은 실내공기질 관리법 시행규칙에 명시돼 있다. 신축 공동주택은 라돈 200베크렐, 지하역사·공항시설·영화관과 같은 다중이용시설은 148베크렐을 권고기준으로 정하고 있다. 문제는 강제성을 띤 유지관리기준이 아닌 권고사항이라 이 수치가 넘더라도 아무런 강제적 제재를 취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더군다나 일반 단독주택은 이런 권고기준조차 마련되지 않았다. 최근 단독주택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 너무 아파트 정책에만 집중하는 건 아닌지 돌아볼 때인 듯싶다.

환경부 환경보건정책과 관계자는 “WHO의 라돈 기준은 권고기준으로 최소한 100베크렐을 유지하면 좋고 못해도 300베크렐까지 유지하되, 그 이상이 되면 저감을 위해 노력하라는 의미”라며 “스웨덴의 경우 라돈 기준이 400베크렐을 넘는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스웨덴의 경우, 기존 주택은 400베크렐, 신규 주택은 200베크렐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그 나라의 기준은 ‘의무사항’이다. 라돈 고농도 가옥은 라돈 저감화 비용을 50% 보조하거나 라듐 함량이 많은 일부 건축재료(이판암)는 생산을 금지하는 강력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실내라돈저감협회 관계자는 “라돈은 화강암 등에서 자연방출되는 물질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건축자재에 대한 측정이 이뤄져야 하지만 이에 대한 기준조차 없다”고 비판했다.

학생이 많이 생활하는 학교시설에 대한 라돈 기준은 더 심각한 수준이다. 학교보건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1층 이하 교실의 라돈 유지·관리기준은 148베크렐이다. 교육부는 학교환경위생 및 식품위생 점검기준에서 600베크렐 이상일 때만 환경부 형식승인 수준을 보유한 연속측정법으로 2차 검사를 실시한다고 명시했다.

학교시설의 라돈관리 실태를 처음 문제제기한 노웅래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측은 “교육부는 매뉴얼로 라돈 측정 후 적극적인 저감 조치 실시기준을 WHO 허용선량의 6배로 규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는 하루 2갑 흡연자의 폐암발생 위험량에 해당한다”며 “교육부가 기준으로 제시한 수치는 학생의 안전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기준”이라고 꼬집었다.

조승연 연세대 교수(라돈안전센터장)는 “환경부가 다중이중시설을 148베크렐로 정해놨는데도 교육부가 600베크렐 넘는 교실만 라돈 저감 노력을 하겠다는 얘기밖에 안 된다”며 “면역력도 아직 제대로 형성 안 된 학생을 대상으로 한 잘못된 규정은 하루 빨리 고쳐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한 교육부의 입장은 측정 방법 및 학교생활의 패턴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육부 학생건강정책과 관계자는 “1차 측정 방법은 측정기기의 한계와 인프라 부족으로 수동측정방법을 주시험법으로 사용하고 있다”며 “이 측정법으로 교실 내에서 라돈을 측정하면 방학이나 휴일, 야간 미근무로 인해 환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타 다중이용시설보다 수치가 높게 나오는 경우가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2차 측정 방법인 연속모니터링법으로 학생 및 교직원이 생활하는 시간대(오전 8시~오후 6시)에 측정하면 라돈수치가 148베크렐을 초과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펼쳤다. 결국 학생들은 개학 이후 교실에 들어와 상당한 방사선량을 피폭받게 되는 셈이다.

■ 라돈 관리기준, 일원화·의무화해야

전문가들은 라돈을 제대로 관리하기 위해 정부의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우선 관련법 상의 라돈 관리기준을 일원화해야 한다. 현재 실내공기질 관리법에 신축 공동주택은 200베크렐, 다중이용시설은 148베크렐로 유지·관리 기준으로 규정돼있으나 단독주택은 이런 규정조차 없다. 학교시설은 148베크렐로 규정했으나 600베크렐 이상일 때만 저감을 위한 본격적인 조치에 들어간다. 심지어 단독주택에 대한 라돈 측정 기준치는 전무한 상태다. 정부는 이처럼 다원화돼 있는 라돈 관리 기준을 일원화해야 한다.

최근 환경부는 실내공기질 관리법 시행규칙에 올해 1월 1일부터 “신축 공동주택(건축법 상 사업 승인 받은 주택)의 시공자는 실내공기질을 측정한 경우 측정 결과 보고(공고)를 작성해 주민 입주 7일 전까지 특별자치시장·특별자치도지사·시장·군수·구청장에게 제출해야 한다”라는 의무조항을 신설했다. 하지만 이 조항은 측정 자체에 대한 의무사항일 뿐, 라돈 측정수치가 권고기준(148베크렐)을 초과했을 때 저감 조치 등 관리에 대한 의무는 명시하지 않았다.

따라서 단독주택과 공동주택, 다중이용시설, 학교시설 등 모든 건축물에 대해 라돈 측정치가 기준을 초과하면(예를 들어, WHO 관리기준인 100베크렐 등), 라돈 저감을 의무화하는 강력한 관리기준 의무화가 필요하다.

건물을 신축할 때 투입되는 건축자재에 대한 라돈 측정도 의무화돼야 한다. 현재 관련 규정이 없다 보니 자재업자들은 아무 원석이나 가져다 쓸 수밖에 없기 때문에, 건축자재에 대한 라돈 측정 의무화도 요구된다.

마지막으로 라돈 측정에 대한 국민 참여의 장이 마련돼야 한다. 연세대 조승연 교수는 “현재 라돈 측정 주체는 건축업자와 측정업체만으로 구성돼 있다”며 ‘국민’이 빠져 있다고 주장했다. 아무리 라돈 측정이 의무화되더라도 제대로 된 감시 기구가 없으면 제도 자체가 유명무실해질 수밖에 없다. 조 교수는 “라돈 측정 시에는 건축업자와 라돈측정업체뿐만 아니라 그 건물에 실제 입주할 주민도 참관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환경부 환경보건정책과 관계자는 “주택의 라돈 저감 조치 의무화에 대해서는 건물 완공 후 국민의 재산에 대해 강제할 수 없는 점이 있다”며 난색을 표했다. 하지만 “다원화된 실내공기질 관리기준에 대해선 변경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며 “건축업자와 입주민 등 이해당사자 간의 이견 조율 및 전문가 의견 청취, 공개포럼 개최 등을 통해 다양한 변수를 분석한 후 조만간 합리적인 방향으로 변경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