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유의 세상만사]<77>민중과 개, 돼지.
[안동유의 세상만사]<77>민중과 개, 돼지.
  • 국토일보
  • 승인 2016.09.05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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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유 팀장 / 기계설비건설공제조합 기획전략팀

 
안동유의 세상만사

자유기고가이자 시인인 안동유씨(기계설비건설공제조합 기획전략팀장)의 칼럼을 게재합니다. 안 팀장은 KBS ‘우리말 겨루기’ 126회 우승, ‘생방송 퀴즈가 좋다’ 우승 등 퀴즈 달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MBC 100분 토론에서는 시민논객으로 참여하는 등 지속적인 방송 출연을 통해 또다른 소통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에 本報는 건설산업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안동유 팀장의 ‘안동유의 세상만사’를 통해 작가 특유의 감성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소통의 장을 마련했습니다.

 민중과 개, 돼지.

“어차피 대중은 개, 돼지입니다. 적당히 짖어대다가 알아서 조용해질 겁니다.” 영화 내부자들에서 노련한 언론사 주필로 분한 백윤식의 대사다.

역사를 통틀어 보수적이고 지배계급에 자기를 팔고 사는 사람들은 견강부회하며 자기의 지식과 학문을 이용해 그들에게 복무한다.

곡학아세! 살기 위해 어쩔 수 없는 건지…?

냉정히 보면 공자도 주나라의 질서로 돌아가자는 보수주의자고 왕당파라고 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도 귀족에게 복무하진 않았지만 귀족정치를 옹호하고 대중정치를 반대했다.

역사는 발전하고 끊임없이 억압의 굴레를 벗고 피지배 계층이 자유를 외치며 새로운 시대를 열어 왔다. 하지만 늘 새로운 지배계급이 등장하고 새로운 속박과 착취의 구조가 자리잡는다.

왕의 독주를 막기 위해 귀족들이 자신의 권리를 지키려고 반항하는 반란의 역사가 있었고 그 중의 하나가 영국의 대헌장 제정이다. 귀족이 독주하면 곧 피지배 계급인 민중들이 자본과 실력으로 무장해 혁명을 일으켜 부르좌의 시대를 열었다.

시민혁명을 통해 신분이 없어지고 누구나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가 온 듯했지만 곧 사회의 어두운 그늘이 발견됐다. 노동자의 삶이 질곡에 빠져 있는 것이었다.

국가가 또 사회가 엄청난 노력을 하여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려고 한다. 하지만 끊임없이 자기 기득권을 공고히 하고 지배 구조를 확립하려는 지배계급의 시도는 그런 노력을 무산시킨다. 나누어 가지면 자기 몫이 줄어들기 때문에 자기들만 독점하고자 하는 것이다.

과거 신분제 사회에선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것이 일반적인 것이었고 용인되는 생각이었다. 노예나 농노-우리의 경우 노비나 머슴-를 그리 대했을 뿐만 아니라 자기의 부하를 그리 다루었다.

구한말 우정국이 생겼을 때 일을 잘못한 아랫 사람을 곤장으로 다스린 일을 보면 권력기관이 아닌 관청도 아랫사람을 체벌하거나 계급으로 억눌렀음을 알 수 있다.

시대가 바뀌어 신분제가 폐지되고 평등한 인권의 시대가 왔지만 시간이 가면서 어느새 낡은 개념이 되어 헌법 속의 활자로 종이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사람을 억압하고 착취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실질적으로 평등한 인권을 마음대로 주무른다. 돈과 권력을 가진 그런 사람들의 머리엔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도구나 물건으로 보는 시각이 자리잡고 있다.

마치 기계의 부속이 오래되거나 낡아지면 새로운 부속으로 갈아치우면 된다고 생각하듯 사람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른바 요즘 유행하는 말로 갑질을 하는 것이다. 이전의 땅콩 회항 사건이 그랬고 납품업체에 매질을 한 것도 그렇다. 북한은 김정은의 진짜 슈퍼갑질로 많은 당간부들이 처형당하고 노동교화를 당한다고 한다.

영화 내부자들에 나온 대사를 교육부의 한 공무원이 인용해서 이야기한 것이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트럼프가 막말을 한 것이 백인 주류 사회의 말못하는 진심이어서 지지도가 그렇게 올라간 것처럼 이 사회의 많은 기득권층은 민중을 개, 돼지로 여기고 있는 깊은 속내를 감추고 있는 건 아닌지….

이젠 심심치 않게 쓰는 표현인 가신이란 말이 기업체의 회장 일가를 위해 충성을 다한 사람에게 쓰인다. 많은 그룹사들에는 그런 집사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렇게 해서 그들은 자신의 지위를 지켜 왔다. 최근에 자살한 롯데 그룹의 임원이 그런 대표적인 예다.

지주보다 마름이 무섭다고 아랫사람들을 혹독하게 다루는 귀찮은 일은 이들이 맡아서 한다. 그럼 살점이 붙은 뼈다귀를 받아 먹을 수 있는 것이다. 나머진 그런 살점을 발라낸 뼈다귀라도 핥으려고 꼬리를 흔들도록 줄세우고….

다시 신분제로 돌아간 것인가? 새로운 신분 질서의 도래인가?

민중을 개, 돼지나 기계부속 정도로 생각하는 것은 자유나 언제나 민중은 자유와 평등을 성취해 왔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민중을 그렇게 취급하는 웃지못할 코메디를 연출한 사람들이 한때는 잘나가는 듯 보이지만 결국 거꾸러진다. 그들이 현재 어디 가 있는지를 보면 씁쓸하다.

인격은 목적이지 수단이 아니다. 칸트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