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유의 세상만사]<68>옳다고 꼭 해야 하는가?
[안동유의 세상만사]<68>옳다고 꼭 해야 하는가?
  • 국토일보
  • 승인 2016.06.07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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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유 팀장 / 기계설비건설공제조합 정보지원팀

 
안동유의 세상만사

자유기고가이자 시인인 안동유씨(기계설비건설공제조합 정보지원팀장)의 칼럼을 게재합니다. 안 팀장은 KBS ‘우리말 겨루기’ 126회 우승, ‘생방송 퀴즈가 좋다’ 우승 등 퀴즈 달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MBC 100분 토론에서는 시민논객으로 참여하는 등 지속적인 방송 출연을 통해 또다른 소통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에 本報는 건설산업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안동유 팀장의 ‘안동유의 세상만사’를 통해 작가 특유의 감성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소통의 장을 마련했습니다.


옳다고 꼭 해야 하는가?

법을 처음 배우면 법은 정의의 학문이므로 타당성을 논하는 것으로 배운다. 하지만 그것 못지않게 조심해야할 것이 실효성이다. 아무리 좋은 법도 실효성이 없으면 버린다. 실효성은 실현 가능성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군대를 다녀오니 캠퍼스엔 민주화의 열망이 절정에 올라 많은 학우들이 시위에 나서고 학교 주변엔 온통 최루탄 가루가 난무했다.

이름만 대면 아는 국회의원 출신 정치인이 당시 학생회장을 맡았을 뿐 아니라 전국학생들의 연합에 의장으로 있어서 모교는 더욱 민주화의 몸살을 앓고 있었다.

복학생은 그런 곳에 잘 나타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었으나 심심찮게 복학생들이 그런 학내 시국 데모 강연에 귀를 세우고 찾아들기도 하는 것이 당시 분위기이기도 했다.

가끔 교내를 지나다 후배들이 무슨 생각을 하나 서서 한참을 듣다 가기도 하곤 했다.

관례를 깨고 하루는 실내인 대강당에서 민주화 방안에 대한 공청회 비슷한 것이 열렸다. 강의도 비고 실내라 격렬한 어떤 시도도 없을 듯해서 차분히 앉아 듣는데 황당한 말들이 오갔다.

법학도로서 그날 가장 황당한 말은 민주화를 기념하기 위해 비를 세우자는 것이었다.

80년대 후반이니 물가를 짐작할 수 있을 터이다. 대략 100여 만원의 조그만 비석 정도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1,000여 만원의 큰 비를 말하는 것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그것을 학생들의 자발적 모금으로 충당하겠다는 것이다. (법학도의 알량한 판단력은 실패할 것이 불보듯 뻔하다는 것이었다.)

정말 좋은 뜻이고 숭고한 그 뜻을 반대할 수가 없는 분위기였다. 당장 모두 주머니를 다 털어 모금에 동참할 듯했다. 하지만 결과는 흐지부지였다. 언제 그랬냐는 듯 모금통의 모금액은 형편없었고 민주화 기념비의 건립은 그렇게 물아래로 갔다.

누구나 학생으로선 적지않은 돈으로 학교 주변 이른바 캠퍼스 타운에서 술을 마시고 즐겼지만 모금함에 그런 돈이 들어갈 정도로 열정적이진 않았다.

그날 강당에서 열망을 불태우던 학우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무척이나 타당성이 있지만 무척이나 실현 가능성 없는 제안에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비겁을 저지른 책임도 벗을 수 없겠지만 무책임하게 마구 제안을 하는 대중들의 심리도 무척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아닌 누군가의 주머니에서 나올 돈으로 공공의 선을 실현하고자 했던 것이다. 실현 가능성이 없으면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

또다른 면에서 타당성과 실효성을 생각해 볼 것이 있다. 옳다고 해서 그것을 강요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실현 가능성은 있으나 억지로 실현했을 때 오는 부작용을 간과하는 문제이다.

담배가 백해무익이라고 흡연을 금지할 수 있는가? 금지로 인해 더 큰 이익을 침해당하지는 않는가?

어느 교수님은 담배가 백해무익이니 국가가 국민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해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는데 담배가 기호상품의 일종으로 분류되는 걸 간과하고 건강 의학적으로만 접근한 것 같다.

기호란 것은 꼭 도덕적으로 타당하고 건강에 좋기만 한 것이 아니다. 담배나 경마, 도박이 그런 것이다. 국가가 술을 금지하고 담배를 금지하고 도박을 금지하면 사회는 건전해지고 건강해질 것 같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 역사적으로 증명된다.

제네바의 칼뱅이 일요일 교회에 가지 않으면 처벌한 것은 그의 숭고한 종교개혁에도 불구하고 또하나의 종교탄압이 됐다.

금주법 시대에 그 타당성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밀주가 유행했고 알카포네의 말대로 술에 돈을 쏟아 부을 준비가 돼 있던 시카고는 마피아의 돈줄이 되었고 결과적으로 알카포네를 밤의 황제로 만들어 주었다.

약간의 도덕적, 의학적 이익을 희생해서 말초적인 즐거움을 주는 것도 기호고 지나치지 않게 관리하는 것이 필요할 뿐이다.

정선의 카지노가 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어도 국가가 허용하는 이유다. 인간의 자유권도 그만큼 중요한 덕목이기 때문이다.

싱가포르를 파인 컨트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곳곳에 벌금을 매기는 일이 빈번하기에 빗대어 좋은(fine) 나라를 벌금(fine)의 나라로 이중적으로 비꼰다.

개인적으로 여행하기 제일 싫은 나라가 싱가포르이다. 숨이 막히는 답답함이 사람을 옥죈다. 다리 건너 말레이시아로 가니 묵은 체증이 내려가듯 시원해짐을 느낀 적이 있다.

헌법에 행복추구권이라고 있다. 모든 것을 모범시민의 틀에 얽어매는 것은 타당한 듯하나 실현가능성이 없고 그래서 타당성도 없어진다.

작은 일탈과 말초적인 자극도 행복추구권의 한 요소일 수밖에 없다. 요즘 법률만능주의의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자꾸 늘어나는 듯하다.

나라도 그렇고 다른 조직도 그렇고 타당성만으로 실현가능성이 없는 일을 강요하는 우스꽝스런 일이 많아지는 것 같다.

또한 조그만 타당성을 실현하기 위해 지나치게 엄격한 규칙을 강요해 조직이 경직되고 구성원의 피로도가 증가하는 일이 많아졌다.

자유롭고 합리적인 판단을 하려면 명분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 나아가서 인간을 옥죄어선 더더욱 안 된다.

무엇이 더 큰 것인지 생각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