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성원 칼럼]저성장 속 이상기류, 그 斷想
[서성원 칼럼]저성장 속 이상기류, 그 斷想
  • 국토일보
  • 승인 2016.05.30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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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원 국토일보 주필

저성장 속 이상기류, 그 斷想

 
기업경기를 비롯 가계소득, 수출, 내수 등 주요 경제 변수들이 대부분 움츠러드는 축소 지향적이고 하방 편향적인 추세에서도 땅값은 오르는 어딘가 석연찮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세종시 등 지방도시의 개발 호재와 부동산 경기 회복세 덕택에 전국 땅값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7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올랐다.

국토교통부와 시 군 구가 올해 1월1일을 기준으로 전국 총 3199만 필지의 개별공시지가를 조사한 결과 지난해보다 평균 4.63% 오른 것으로 집계됐다. 재산세, 종합부동산세 등 땅 보유자들이 부담해야 할 세금 역시 지난해보다 평균 4~7% 올랐음은 물론이다.

돌이켜보면 오래 전부터 많은 한국 사람들은 돈만 있으면 땅을 사두려 했음을 우리는 기억한다. 여러 가지 각기 다른 이유가 있겠으나 그 한 가지는 땅 말고는 믿을 만한 투자 대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땅을 사는 사람들은 가장 보수적이고 방위적인 투자자들이었던 셈이다.

이들에게 정부와 중앙은행은 믿을 수 없는 존재였기 때문에 물가가 올라 통화 가치가 떨어지면 함께 그 가치가 떨어지는 예금은 기피의 대상일 수밖에 없었다. 기업가도 믿을 수 없어 주식을 산다는 것은 생돈을 퍼다 버리는 격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땅만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그리고 어디로 도망가지도 않고 그대로 남아 있을 것으로 믿었던 것이다. 심지어 관리들과 은행원들조차 예금이나 주식 투자보다는 땅을 샀을 정도다.

공직자들의 재산을 공개시켜놓고 보니 땅을 중심으로 한 부동산 부자들이 수두룩했던 것이 그 실증적 사례다.

땅에 집착하는 다른 한 가지는 한국이 평지 면적상 세계에서 인구 밀도가 가장 높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의 토지 투자였다. 땅이란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뺀다면 신(神)이 세상을 창조할 때의 면적 이상으로 늘어날 수 없게 되어 있다. 따라서 매우 과학적이고 장기적인 안목에서의 투자나 다름없는 것이다. 이런 안목에서 땅을 산 것을 투기라고 볼 수는 없다. 투기란 섶을 지고 불로 뛰어드는 행위 비슷한 것, 다시 말해 비과학적이고 단기적인 거래에 집착하는 성향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땅값이 오르면 폐해가 크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땅값은 의식주 가운데 주거비를 올리는 구실을 한다. 놀고 먹는 땅부자를 자꾸 부자가 되게 하면 빈부 격차도 심화될 뿐이다. 이렇게 되면 경제 전체의 생산 원가를 오르게 하여 국제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등으로 결국 경제 성장을 가로막는다.

언제부턴가 땅을 사 모으는 사람들에게 으레 땅 투기꾼이라는 비아냥이 따라 붙은 것도 이런 폐해 탓과 무관치 않다. 한 때 땅을 가진 사람들에게 고통이 따르도록 하겠다며 정부 차원의 세금 공세와 메스가 적지 않게 가해진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땅이 있는 사람들에게 고통을 줄 준비를 하기에 앞서 정부 차원의 제도와 그 운영부터 신중히 살펴보는 게 더 현명할지도 모른다. 특히 땅 등 부동산을 담보로 잡고서야 돈을 빌려주게 되어 있는 은행 운영 방법부터 개선의 여지가 많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의 은행들은 땅 ‘짚고’ 헤엄치기보다 더한 땅 ‘잡고’ 헤엄치기식 장사를 해왔다. 이 장사에는 장기적으로 보아도 리스크라고는 조금도 없다. 리스크야말로 기업을 경쟁력 있게 만들고 합리적으로 만드는데도 그렇다. 우리나라에서는 금융기관이 마땅히 기업으로서 져야 할 대출 리스크를 땅값 등 부동산 가격 상승에 따른 생활비 상승을 통해 고객이 대신하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토지 등 부동산 담보 대출 관행을 법률이나 행정 명령으로 금지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반시장적이다. 더 시장적인 방법이 있다면 은행이 부동산을 담보로 돈장사를 할 경우에는 따로 세금을 더 부가하는 것이다.

부동산을 담보로 잡는 데서 얻는 안전성 대신에 그만큼 세금을 더 낼 것인지 아니면 무담보 대출을 함으로써 위험을 지는 대신 그만큼 세금을 덜 낼 것인지를 선택하도록 조세 제도를 바꾸자는 뜻이다.

이렇게 해서 부동산본위 금융 제도를 점진적으로 혁파해 나간다면, 그것이 곧 금융기관의 경쟁력과 효율성을 이끄는 이른바 금융개혁의 시발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국민경제에는 땅값 등 부동산 가격의 안정이라는 선순환 구조까지 선물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최근 대부분의 경제 주체들이 저성장의 질곡에서 몸부림을 치고 있는데도 은행들이 일제히 수수료 인상에 나선 것도 이런 맥락에서 상궤(常軌)를 벗어난 이상 기류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낮은 생산성과 고임금 구조 등은 놔둔 채 손쉬운 수수료 인상으로 수익성을 기대려고 하니 한국의 금융위상이 아프리카의 우간다보다 못하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소비자와 부동산은 결코 봉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