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 한잔의 여유] 김홍도 그림의 비밀
[茶 한잔의 여유] 김홍도 그림의 비밀
  • 국토일보
  • 승인 2013.07.19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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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연 태 혜원까치종합건축 대표이사 / 한국건설감리협회 회장

김홍도 그림의 비밀

 
1745년 영조 21년에 평범한 중인 가정의 외아들로 태어난 김홍도는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집안 어느 누구도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늘에서 천재성을 내려 주었는지 그의 재주를 알아본 스승 강세황이 그림과 시와 글을 배워 주게 되어 김홍도는 시, 서, 화를 두루 익혀 여느 중인 출신의 화가들과 다르게 자신의 그림에 직접 지은 시를 써 넣을 수 있었다.

10대부터 그는 능력을 인정을 받았고 스무살이 되기 전에 도화원의 화원이 되며, 채 서른 살이 되기도 전에 김홍도는 조선 최고의 화가로서 인정을 받게 되어 왕의 초상을 그리는 등 국가 차원의 중요한 그림 사업에 책임자 역할을 하게 된다.

지금같이 사진기가 없는 시절이다 보니 왕의 지시에 따라 백성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그려 왕에게 보여주는 역할을 하게 된 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지는 퐁속화이다. 왕의 지시로 각 지방을 두루 다니며 산하를 그리는 훈련을 한 후에 그는 일본 쓰시마 섬으로 가서 지도를 그려오기도 하고, 중국에도 다녀오면서 외국의 사정을 왕에게 알리는 역할까지 했으니 화가로서 참으로 특별한 경험이라 하겠다.

그는 신선도를 비롯해 꽃과 나무, 동물 등을 그린 정물화와 금강산 등을 그린 산수화, 건축물이나 궁중에서 하는 행사를 재연하는 그림, 책에 들어가는 삽화 및 절에서 다루어지는 불교화까지 그렸으니 실로 모든 종류의 그림에 손을 댄 듯 하다.

게다가 음악에도 조예가 깊어 거문고 연주도 수준급이었다고 하니 그의 재주가 비범했음을 볼 수 있다.

그 비범한 재주를 갖은 천재화가의 그림을 자세히 드려다 보면 참으로 말도 안되는 특이한 점을 발견 할수 있다. 일부러 그런 건지 실수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오늘을 사는 우리같은 후손들은 헷갈리는 것이 한 둘이 아니다.

▲ 김홍도의 씨름

김홍도 ‘씨름’ 그림을 보면 그림 우측 아래쪽에 땅을 짚고 있는 사람의 오른 손 모양이 왼손처럼 거꾸로 그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도저히 저런 모양이 나올 수 없는 것이다.

▲ 김호도의 무동

김홍도 ‘무동’은 춤추는 아이의 오른발이 앞으로 향해야 되는데 뒤쪽으로 돌아가 있는 모양은 도저히 불가능하다. 우측 아래 무동의 옆에서 해금을 켜는 사람의 왼손은 키타를 치듯이 엄지손가락이 위로 나오고 네 손가락은 아래로 감싸 손가락 끝만 보여야 하는 데 손등이 다 보이는 것은 현을 잡는 방법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김홍도의 활쏘기

김홍도 ‘활쏘기’ 그림에서도 활쏘는 사람이 왼손잡이인지 왼손으로 활을 쏘고 있는데 왼발이 앞으로 나가 있음을 볼 수 있다. 당연히 오른손이 앞으로 나가면 오른 발이 따라 나가야고, 왼손이 나가면 왼발이 나가야 활이 쏴지지 않겠는가… 천하의 김홍도가 단순한 실수를 한건지, 관람자의 재미를 위해 그림마다 ‘숨은 그림찾기’를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 김홍도의 빨랫터

김홍도는 키가 크고 훤칠하다고 전해지는데 그의 성격은 아마 내성적이며 수줍음을 많이 타는 사람이었나 보다. 빨래를 하거나 목욕을 하는 두 그림 중 위의 신윤복 ‘시냇가에서’의 그림엔 여인들의 앞에서 당당하게 서서 여인들을 바라보지만 김홍도의 ‘빨래터’ 그림엔 여인들의 뒤에 숨어서, 그것도 부채로 얼굴을 가린채 훔쳐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 김홍도의 길가에서

‘길가에서’는 김홍도가 수줍음을 많이 타는 사람이란 것은 그림에서 갓을 쓴 양반이 아이를 엎고 가는 것을 보고 크게 웃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언제 다시 만날지도 모르는 스치는 사람들을 보면서 웃는 대목에서도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웃고 있음을 보아도 알 수 있다.

▲ 김홍도의 그림감상

김홍도의 ‘그림감상’은 몇 명이 둘러서서 아마 외국에서 왔을 듯한 희귀한 그림을 감상하는 듯한데, 이 대목에서도 그는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 혹자는 이 그림을 평하면서 그림에 침이 튈까 걱정하여 부채로 입을 가리고 설명을 한다고 하지만, 씨름판에서 마저 얼굴을 가린 것과 여타 여러 그림을 통해 볼 때 침이 튈까 조심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고 그는 습관적으로 얼굴을 가리는 듯 하다.

그림에서 얼굴을 가린 사람이 김홍도 자신이라는 말이 있지만 그것이 사실인지는 알 수 없다. 어차피 조선시대 풍속화는 이런 저런 설명이 전해지지 않기에 오늘을 사는 우리 중에 적당한 이유를 들며 목소리를 높이며 주장하는 사람의 말을 따를 수 밖에 없다. 혹자의 말대로 부채로 얼굴을 가린 인물이 김홍도가 본인이 맞는다면 그는 성격이 소심하고 수줍음을 잘 타는 성격이 분명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