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진단] 중대재해처벌법의 허(虛)와 실(實)
[이슈진단] 중대재해처벌법의 허(虛)와 실(實)
  • 국토일보
  • 승인 2021.11.22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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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명 구 교수/을지대학교 보건환경안전학과

“실효성 최우선… 사각지대 최소화하는 예방적 제도돼야”

이 명 구 교수
이 명 구 교수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의 배경 및 목적

근로자 및 일반 시민의 안전을 아무리 강조해도 중대사고들은 끊임없이 발생해 왔다. 산업재해현황의 주요 지표인 사망만인율은 2016년 0.96에서 오히려 매년 증가 추세에 있다.

이에 노동계 및 관계 전문가들은 ‘산업안전보건법’ 한계로 ▲중대재해 발생사업장에 대한 지나치게 낮은 양형기준 ▲주식회사, 그룹사 등은 사업주를 특정하기 곤란한 점 ▲사업장 규모를 고려하지 못한 벌금 규정 ▲사내하도급 등 수급인에 대해 실질적인 영향력이 있는 도급인의 무관심 등을 지적했고 그로 인해 사업주의 안전보건 조치의무를 상습적으로 해태하는 기업이 상존하고, 기업의 준법의지를 견인하지 못하고 있음을 주요 문제점으로 제시하며 이의 해결방안을 모색하게 됐다.

그로 인해 중대재해를 중대산업재해와 중대시민재해로 구분하고, 안전보건의무 이행 주체를 단순히 사업주라는 개념에서 사업주(개인사업주)와 경영책임자등으로 구분하였고, 양형기준을 사망자가 발생한 경우 산안법 상 1억원 이하의 벌금을 10억원 이하로 대폭 상향했고 징역형을 7년 이하의 상한선 규정에서 1년 이상의 하한선 규정을 도입하였으며, 법인에게 부과하는 벌금도 10억원 이하에서 50억원 이하로 증액하고, 도급인의 수급인에 대한 안전보건의무를 규정하는 중대재해처벌법을 제정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의 실(實)

개별사업 또는 사업장의 재해예방활동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경영책임자를 처벌 대상으로 규정, 재해예방활동 중요성에 대한 경영책임자의 인식제고에 상당한 기여를 한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사업주 및 경영책임자등의 재해예방에 필요한 인력·예산 등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 및 그 이행에 관한 조치 등을 규정하고 하위 법령에서 안전보건경영 방침 및 목표 수립, 안전경영위원회의 운영, 수급인에 대한 안전보건의무, 안전보건교육 등 핵심적인 내용을 열거해 재해예방활동에 필요한 주요 골격을 법령에서 제시함으로서 각 사업장의 안전보건활동 방법론을 제공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중대재해처벌법의 허(虛)

중대재해처벌법의 중요한 허점은 처벌대상, 양벌규정, 양형기준 등의 모순으로 그 이행력 및 실효성을 담보하기 곤란한 측면이 있다.

처벌대상은 사업주, 경영책임자등, 공무원 및 법인으로 하고 있으나, 사업주는 개인사업주로서 명확한 정의가 있으나, 경영책임자등은 법 제2조제9호의 가목과 나목으로 구분해 정의하고 있는데 나목은 중앙행정기관 및 공공기관의 장으로 명확히 특정될 수 있으나 가목은 각 법인 내에서 특정인을 지목하기 곤란한 실정이다. 이러한 애매한 규정으로 인해 경영상 실질적 지배력이 있는 경영책임자는 오히려 안전보건 관련 업무는 본인과 무관한 것으로 하위 직급자에게 일괄위임하고 의도적으로 무관심하려는 추세에 있다는 얘기까지 나돌고 있다.

양벌규정은 일상적으로 다른 법령에서는 불법 행위자(대리인, 종업원 등)에 대한 처벌과 법인의 대표자나 법인에 대한 처벌로 구분하고 후자인 경우에는 상당한 주의와 감독을 게을리 하지 않은 경우에는 처벌하지 아니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는 대표자가 그 대리인에 대해 상당한 주의와 감독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대리인이 범법행위를 한 때에 대표자나 법인에게 면책을 부여할 목적으로 규정한 것이다. 그런데 중대재해처벌법은 불법 행위자(대표자)와 법인에 대한 처벌로 구분하고 무생물체인 법인(또는 기관)이 상당한 주의와 감독을 게을리 하지 않은 경우에는 처벌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상당한 주의와 감독은 사람이 하는 것이지 무생물체가 하는 것이 아니며, 경영책임자등은 열심히 재해예방활동을 했어도 일단 재해가 발생하면 처벌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다. 이는 법리적 심각한 오류로 시행일을 앞두고 반드시 개정돼야 한다.

양형기준은 벌금 상한선을 상향조정하였으나 여전히 법원의 양형기준에 의존하게 되고, 사업장 규모를 반영하지 못하여 그 실효성이 개선되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징역형은 1년 이상이라는 하한선을 도입하고 벌금과 징역을 병과할 수 있도록 했으나 오히려 징역은 상한선, 벌금은 하한선을 도입하고 매출액에 상응하는 벌금형을 규정해야 실효성이 개선될 것으로 판단된다.

마무리

중대재해는 아무리 재해예방활동을 열심히 해도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발생될 수 있고, 재해예방활동을 게을리 해도 경미한 재해 조차 발생되지 않을 수도 있다. 궁극적으로는 재해예방활동을 열심히 하는 사업장이 사고발생확률은 낮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모순점은 늘 존재하고 있는 것이 산업재해 실정이다.

그러므로 재해예방활동을 열심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발생된 재해(착한 사고)와 재해예방활동 방법 및 법적 기준을 잘 알면서도 이를 이행하지 않아 발생된 재해(악한 사고)를 구분해 처벌할 수 있는 규정 또는 기법이 필요하다. 또한 중소규모 사업장은 산재예방활동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몰라서 못하거나 수급인으로서 도급계약 금액 또는 기간 등이 부적절해 투자할 여력이 없을 경우도 있기 때문에 이러한 사각지대를 최소화할 수 있는 예방적 제도 개선에 더욱 역점을 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