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헷갈리는 시그널
[사설] 헷갈리는 시그널
  • 국토일보
  • 승인 2009.03.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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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건설업은 생사의 기로에 서있다. 건설업계 스스로의 냉엄한 진단일 뿐 아니라 자금줄을 쥐고 있는 금융권이나 정책 당국의 시각도 대등소이 하다.

 

오히려 정부쪽에선 더 위기 국면으로 인식하는 기류가 짙다. 종합부동산세 등 각종 부동산 규제가 줄줄이 풀리고 있는 게 이런 위기의식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건설업계의 연쇄도산이 몰고 올 파국적 면모를 우려, 파격적인 규제완화에 나선 것이 현 정부의 입장인 셈이다.

 

건설업의 GDP에서 차지하는 투자비중이 무려 18%에 달할 정도로 막중한데다 경제적 연관효과, 다시 말해 타 산업에 미치는 파급영향까지 막강한 때문에 정부로서는 각별히 신경을 쏟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특히 작금의 세기적 경제침체기에 가장 빨리 경기부양 약발을 올릴 수 있는 게 건설경기인 만큼 열정을 기울이는 것도 무리는 아닐 듯싶다. 전체 경기에 미치는 영향은 물론 고용효과 또한 만만치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정부의 지원 필요성을 부정할 수도 없는 게 건설업의 실상이기도 하다.


 그런데 문제는 정부의 건설업에 대한 이런 인식과는 달리 정부의 위기대응 시그널이 묘하다는 점이다. 직선적인 표현을 빌리면 위기대응 신호가 무척 헷갈린다는 사실이다. 한편으론 칼 같은 구조조정을 다짐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경기부양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신호를 받아들이는 입장에 있는 기업이나 민간부문으로 하여금 혼선을 빚게 하고 있다는 점이다.


 부실기업들을 하루빨리 솎아내야 신용경색이 풀린다는 확고한 원칙을 천명하면서도 기실 그 수단인 구조조정 작업은 금융권의 자율에 맡긴다는 어정쩡한 자세로 일관한다. 그런가 하면 중소기업들의 대출 만기를 일괄 연장하는 이율배반적 방안까지 모색하는 혼란도 서슴치 않는다.


 이런 정부의 엇갈린 신호에 은행과 기업들은 늘어나는 게 눈치뿐이다. 아직은 부도가 난 것도 아니고 자본을 다 까먹은 것도 아니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숨을 연명할 길을 찾아 백방으로 헤매게 마련이다. 더구나 일자리 마련이 급선무라며 정부 차원에서 막대한 자금 지원까지 해줄 판이니 어느 기업이 자진해 날 죽여 달라고 목을 디밀겠는가. 기업회생절차를 자청하고 나선 신창건설의 사례는 이처럼 눈치만 살핀 채 내실을 기하지 못한 기업구조조정의 산물이라 할 수 있을 듯싶다.


 지금의 우리 경제가 재정지출의 확대만으로 살아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듯이 건설산업 역시 재무적 수혈만으로 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다. 부동산 경기 침체라는 실물위기에 금융위기까지 맞물려서 주저앉는 구조적 위기를 맞고 있는 국면이다.


 이런 상황에서 매사를 재무적으로만 판단하고 대응하려는 것은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오히려 경영능력과 기업여건을 중시하는 과감한 구조조정을 통해 건전성을 먼저 확보하고 이에 편승해 기업 경영환경을 개선해 주는 데 정책적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는 판단이다.


 1차 구조조정 대상에 올랐던 건설업체의 관계자들의 경험담을 들어보면 채권단의 구조조정이 지나칠 만큼 재무적 판단에 경도돼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경영진의 능력이나 성장 전망 등 비재무적 판단은 거의 무시되고 있다는 반증인 셈이다. 금융권으로선 부실자산 기피에 집착하기 마련이다 보니 당연한 수순인지도 모른다.


 시그널의 혼선은 최근 다주택 보유자의 양도소득세 중과 폐지라는 정부의 세제개편안에 여당 원내대표가 공개적으로 반대의사를 표출한 사례에서도 중첩되고 있다. 정부로선 부동산 시장에 돈이 좀 돌아 얼어붙은 경기를 살려주기를 기대하는 의지가 분명한 듯한데  정치권에선 엇박자를 보이니 기업계나 민간부문에선 또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지금 70개 가까운 중소건설사들이 2차 구조조정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이제부터라도 정부의 신호음이 분명하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그 맥락은 역시 경영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이른바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유발하는 데로 모아져야 할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