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일보 현장25時] 중대재해처벌법, 중소규모 건설현장 특성 고려해야
[국토일보 현장25時] 중대재해처벌법, 중소규모 건설현장 특성 고려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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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4.01.26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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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기 국토일보 안전전문기자/공학박사/안전기술사/안전지도사

“중소규모 건설현장, 대기업과 같은 잣대 들이대서는 안 돼”
소규모 사업장 맞는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운영 등 시행령 개정해야

최 명 기 박사
최 명 기 박사

본질이 호도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처벌만을 위한 법이 아니다. 건설현장과 같은 사업장에서 작업을 하는 근로자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법이다. 이를 위해 경영책임자인 사업주로 하여금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하고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상의 조치를 하도록 만든 법이다.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에는 1년 이상의 형사처벌을 하게 된다.

그런데 처벌에만 방점을 찍다보니 본연의 목적은 사라지고 오히려 분란만 키우고 있는 실정이다.

50억 미만 건설공사 현장에 대해서는 2년 정도 유예하자는 개정안이 여야 합의가 불발됐다. 이에 따라 1월 27일부터 중대재해처법법이 시행된다.

법령 시행에 따라 공사금액 50억 미만인 중소규모 현장에서는 상당한 혼란과 피해가 예상된다. 중소규모 현장의 경우 안전관리가 부실하기에 대규모 사업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사고발생이 많은 편이다. 또한 고령층과 외국인 근로자 사용이 많으며, 공사관리 인력도 현저하게 부족하여 재해 위험에 노출이 심한 편이다. 기본적으로 안전관리를 해야 하겠지만 중소기업 특성상 현실적인 여건은 그리 녹록치 만은 않은 편이다. 중소기업의 특성을 고려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이 아쉬운 이유이다.

일부 법령에서는 소규모 건설공사의 특성을 고려하여 안전관리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건설기술진흥법(건진법)’의 경우 법 제62조(건설공사의 안전관리) 1항에 따라 안전관리계획을 작성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법 제62조의2(소규모 건설공사의 안전관리)에서는 소규모 공사의 특성을 고려해 안전관리계획 수립을 하도록 하고 있다. 건설공사의 범위, 소규모안전관리계획의 수립 기준, 제출ㆍ승인의 방법 및 절차를 규정하여 소규모 공사에 맞도록 운영하고 있다.

또한 ‘지하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지하안전법)’에서는 법 제14조(지하안전평가의 실시)를 규정하고 있다. 반면에 법 제23조(소규모 지하안전평가의 실시)에서는 평가항목ㆍ방법, 소규모 지하안전평가를 실시할 수 있는 자의 자격, 소규모 지하안전평가서의 작성방법 등 소규모 공사 특성에 맞도록 운영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의 경우에도 ‘건진법’이나 ‘지하안전법’과 같이 소규모 건설공사 현장의 특성을 고려해 시행할 필요가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제4조(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 및 이행)에서는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하고 운영토록 하고 있다.

중소규모 건설회사에서 중대산업재해를 예방하는데 꼭 필요한 사항만을 선택적으로 적용, 시행하는 방안을 제안한다.

예를 들어 근로자의 안전과 보건을 확보하기 위해 중소규모 건설회사가 꼭 수행해야 할 사항만을 규정하여 시행하자는 것이다. 항목 선정과 관련해서 추가적인 논의와 합의가 필요하겠지만 안전ㆍ보건에 관한 목표와 경영방침 설정, 유해ㆍ위험요인을 확인해 개선하는 업무절차 마련과 이행점검, 필요한 예산 편성과 집행, 안전ㆍ보건에 관한 종사자의 의견 청취 등으로 한정해 시행할 것을 제안한다.

이를 위해서는 중대재해처벌법에 소규모 사업장에 대한 예외 내용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법령개정이 어렵다면 우선적으로 시행령에 제4조의2(소규모 사업장의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 및 이행) 항목을 추가, 시행하면 될 것으로 보인다. 중대재해처벌법 제4조(사업주와 경영책임자등의 안전 및 보건 확보의무) 제2항에서는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 및 이행에 관한 조치는 대통령으로 정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행령 개정을 통해 당장이라도 소규모 건설현장의 혼란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사실 중소규모 건설회사의 경우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과 이행을 하고 싶어도 인력과 예산이 부족해 할 수가 없는 상황이 대다수다. 공사금액 150억 원 미만의 건설현장의 경우에도 현장소장을 비롯해 품질관리자 1명, 안전관리자 1명이 현장을 관리하고 있는 실정이다. 공사관리를 할 인원이 없어 불법이지만 품질관리자와 안전관리자가 공사관리를 하고 있는 현실이다. 본사의 경우에는 2~5인 이내가 현장관리를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하고 운영한다는 것은 허울 좋은 환상일 뿐이다. 중소규모 건설현장의 특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중대산업재해를 예방하는 잣대를 대기업의 기준에 맞추어서는 실효성을 담보하기 곤란하다. 중소기업 특성에 맞는 잣대를 만들 필요가 있다.

물론 소규모 건설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경영책임자 입장에서는 이러한 내용도 부담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안전은 이미 시대적 과제가 됐다. 필수적으로 이행해야 하는 기본이 됐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무조건적인 적용유예가 아니라 기업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

기업을 경영하는데 있어 근로자들은 한번 쓰고 버리는 일회성 소모품이 아니다. 회사의 귀중한 자산이자 고객이라는 인식 개선도 필요하다. 안전사고와 품질사고는 대부분 이러한 인식하에서 발생돼 왔기 때문에 지금부터라도 인식을 개선, 노력해야 한다.

기업과 건설업계가 지속성장 하기 위해서는 안전의 시대적 패러다임 변화를 인식하고 지금부터라도 준비하고 대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