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리뷰] 주택업계에 닥친 ‘고난의 행군’
[전문기자리뷰] 주택업계에 닥친 ‘고난의 행군’
  • 이경운 기자
  • 승인 2023.11.03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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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을 앞둔 분양시장에 고난의 행군이 펼쳐지고 있다. 고난의 행군은 1996년에서 1999년 사이 북한에서 발행한 대기근으로, 먹을 것이 없어 발생한 사건이다.

부동산시장에서도 공급이 대거 위축되며 먹을 것 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연초 1.3 규제완화 이후 다소 회복되던 분위기가 다시 침체되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9월까지 착공·분양물량이 급격하게 줄었다. 지난해보다 착공이 57.2% 감소했고, 분양은 42.2% 줄었다. 수요자들이 고금리 장기화에 부담을 느껴 주택구입 시기를 미루는 모습이다. 9월 기준 서울의 아파트 매물은 8만 가구에 달한다.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거래가 침체되자 공급 일정이 연기되고 있다. 고금리라는 난관에 시장침체까지 이어지며 연말보다 내년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최근 분위기로는 미국발 고금리 기조가 내년 상반기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결국, 주택 수요가 전세로 돌아서 집값이 정체된 가운데 전세값이 오르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당장 집을 사 고금리를 감당하기보다 전세로 살며 적기를 가늠하겠다는 의도다. 수치로는 (9월 기준 5년 평균대비) 수도권 아파트 거래량이 35.2% 줄었고, 전세는 28.3% 늘었다.

이러한 구매수요 응축은 추후 집값을 밀어 올리는 촉매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가 바라는 ‘집값이 느리게 오르며 안정되고, 이로 인해 매매·전세가 순조로운 상황’과는 다른 양상이다.

공급침체는 이미 장기화되고 있다. 연초부터 이어진 물량 감소에 분양대행사, 광고대행사, 홍보대행사 등에서 구조조정이 확대되고 있다. 최근에는 거래 침체로 인한 공인중개사 이탈도 본격화됐다.

미분양 현장은 이보다 심각하다. 상반기에 미분양으로 인한 중도금 집단대출이 난항을 겪은 뒤 잠잠한 듯 보였지만 실상은 여전했다.

A현장은 2022년 7월 분양한 뒤 1년 4월이 지났음에도 아직 중도금 대출을 받지 못했다. 계약률이 낮아 은행이 대출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협력사, 하도급사의 직원명의로 계약률을 올리는 일명 자서분양(강제분양)을 진행하고 있다.

자서분양에 대해 일각에서는 “분양률을 높여 중도금 대출을 받고, 이 돈으로 공사를 진행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다”며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지만, 사업이 잘못되면 명의 대여자가 분양받은 집을 인수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에 처한다. 과거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자서분양이 극성을 부리자 정부가 나서 임직원 강매를 제한하는 ‘자서분양 피해방지 대책’을 시행할 만큼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다.

연구기관의 분석도 암울하다. 한국건설연구원은 최근 ‘2024년 건설·부동산 경기전망’에서 전국 주택 매매가격이 4분기 보합세 이후 하락 반전할 것으로 내다봤다.

시장이 이러함에도 정부는 두 목소리를 내며 상반된 모습을 보인다. 한국은행은 고금리 장기화에 가계부채(주택담보대출) 증가 속도가 빠르다며 경고하고 있고, 국토교통부는 주택공급 활성화대책을 발표하며 집을 지으라고 독려한다.

해외의존도가 높은 국내 경제를 감안해 정부를 이해하고 싶지만, 하고 싶은 말만 하는 기관들의 엇박자에 시장만 죽어난다. 결국, 이러한 투트랙은 대통령의 야심찬 주택공급대책에 큰 차질을 불러올 것이 자명하다.

겨울의 초입, 주택공급 관련 업계에 고난의 행군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