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리뷰] 전기굴착기 시장 확대, 왕도는 없다.
[전문기자리뷰] 전기굴착기 시장 확대, 왕도는 없다.
  • 이경운 기자
  • 승인 2023.08.22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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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기계시장에 친환경 바람이 불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아이디테크엑스에 따르면, 글로벌 전기 건설기계 판매대수는 2022년 6300대에서 2042년 52만 6700대로 80배 성장이 예상된다. 전체 건설기계 판매대수에서 전기장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2022년 0.5%에서 2042년 43.5%로 늘어나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주요 수출지역 EU(유럽), 미국 등에서는 전기장비 수요가 확대되며 이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이 펼쳐지고 있다.

유럽의 건설기계 제조사들이 가장 빠르다. 영국과 독일, 스웨덴 등에서 미니 전기굴착기 양산이 시작됐으며, 중국도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소극적으로 대응하던 미국도 미니장비 출시를 선포하며 대응에 나섰다.

건설기계 강국인 대한민국도 글로벌 트렌드에 발맞추고 있다. 환경부 주도하에 전기굴착기 보급 확대를 위한 지원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사업 첫 해인 2020년 20억원에서 2021년에는 40억원으로 100% 확대됐다. 이 보조금은 전기굴착기 구매자에게 최대 2천만원을 지원해 전기굴착기 보급을 확대하는 사업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시장의 반응이 차갑다. 야심찬 정부의 지원에도 전기굴착기 판매량이 도통 늘지를 않는다. 장비의 성능이 시장의 기대에 못 미치는 탓이다. 하루 8시간의 기본적인 가동시간을 달성하지 못했고, 물에 들어가야 하는 등 악조건에도 취약했다. 그 결과 사업추진 4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시범사업 수준이다. 사업 첫 해인 2020년 11대에 이어 2021년에 20대가 팔렸고, 2022년에는 40대로 늘었다가 올해는 8월말 기준 12대 판매에 머물렀다.

특히, 전기굴착기의 ‘가동시간’은 보급 확대 사업을 추진해온 4년 동안 크게 향상되지 못했다. 장비의 성능에 따라 차별화되는 보조금 산정 기준에 ‘가동시간’이 없는 이유에서다.

환경부에 따르면 전기굴착기 가동시간에 대한 평가방법이 일정치 않아 보조금 지급기준에 ‘가동시간’을 포함하지 않았다. 즉 보조금을 많이 받기 위해 ‘가동시간’을 늘릴 필요가 없다.

건설기계 제조사들도 전기굴착기에 기대하지 않는 모습이다. 보도자료만 뿌린 대충 마케팅에서 그들의 성의 없음이 묻어난다.

최근 국내시장 점유율 1위 HD현대인프라코어는 상반기에 출시를 예고한 전기굴착기(1.7톤급 미니)를 8월 3일에서야 선보였다. 산통은 길었지만 기대에는 부응하지 못했다. 야심찬 스팩은 고사하고 장비의 가동시간은 채 4시간에 되지 못했다. 지난해 말 장비 시연회에 참가했던 익명의 제보자는 “3시간 30분 만에 배터리가 바닥났다.”고 토로했다.

장비를 내놓은 HD현대인프라코어도 전기굴착기를 팔겠다는 의지가 없었다. 그래 보였다. 그들이 전기굴착기 출시에 발맞춰 오픈한 ‘디벨론 온라인 스토어’에는 오픈 당일인 8월 3일에 남긴 구매상담글에 20일이 넘도록 답이 없다.

지난해 전기굴착기를 내놓은 볼보도 판매에는 기대하지 않는 모습이다. 볼보가 작년 9월 출시한 미니 전기굴착기는 12월까지 2대가 계약됐으며, 올해는 판매량이 파악되지 않는다. 올해 전기굴착기 판매량이 총 12대인 것을 감안하면 1대나 팔렸을까 싶다.

결과적으로 전기굴착기 보급사업 현황은 초라하다. 시장의 요구에 못 미치는 성능으로 경쟁장비(디젤장비)보다 비싼 가격을 제시했다는 것이 이유라면 이유다.

거꾸로 가는 전기굴착기 보급 사업을 바라보며 정부에 묻고 싶다. 이 방향으로 가면 대한민국은 계속 건설기계강국이라는 명성을 이어갈 수 있겠는가?

올 상반기 자동차 수출의 30%를 차지했다는 전기차 만큼은 아니더라도, 전기굴착기 보급 확대에 보다 파격적인 지원책이 필요하다. “책정된 보조금도 다 쓰지 못하느냐”는 지적에 앞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