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일보 현장 25時] “부실공사 방지! 관행적 악습 건설문화 타파해야”
[국토일보 현장 25時] “부실공사 방지! 관행적 악습 건설문화 타파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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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8.14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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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기 국토일보 안전전문기자/ 공학박사/안전기술사/안전지도사

법과 제도, 시스템 잘 구축돼 있더라도 운영은 결국 사람들의 몫
건설문화 개선하기 위해 ‘염치․하는 척․뻔뻔함, 남 탓’ 경계해야

최 명 기 기술사
최 명 기 기술사

대한민국은 세계 7대 건설강국이다. 그런데 최근 발생한 전단보강 철근 누락과 콘크리트 강도 저하에 따른 붕괴사고 등 계속되는 후진국형 사고들로 인해 대한민국 건설은 끝 모를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이로 인해 국내 시장은 물론이거니와 해외 시장에서의 수주에도 빨간불이 켜지고 있다.

이번 발생한 사건들로 인해 설계, 시공, 감리, 발주청 등 건설업계와 건설관련 공공조직에 대한 신뢰가 땅 밑으로 곤두박질치고 있다. 건설기술인이라고 얼굴 들고 다니기가 부끄럽고 더 이상 뭐라 할 말이 없는 지경이다. 지금이라도 뼈를 깍는 각오로 신뢰회복이 급선무다.

어쩌다가 대한민국 건설이 이렇게 되었는지 참담할 뿐이다. 왜 이러한 일들이 생겼을까?

부실공사 방지를 위해서는 불법 재하도급, 공사기간 부족, 최저가 공사비용 낙찰, 기능인력 부족에 따른 외국인 근로자 채용, 감리제도, 설계제도, 전관예우, 기술인 역량 부족 등 개선할 점이 많이 있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이러한 원인의 밑바탕에 깔려있는 근원적인 건설문화를 다시 조성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일부 전문가들은 이러한 문제해결을 위해 시스템 개선과 법령 정비 등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법과 제도, 시스템이 잘 구축돼 있더라도 운영은 결국 사람들의 몫이다. 사람들이 변하지 않고는 결코 개선될 수 없는 문제다.

거시적이고 원론적인 이야기 같지만 건설업계에 오랜 시간동안 고착화되고 관행처럼 굳어온 건설문화가 이런 문제를 촉발했다고 본다. 건설문화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사항을 반성해보고 창의적인 개선방안을 찾을 필요가 있다.

첫째, 염치(廉恥)가 없기 때문이다. 체면을 차릴 줄 알며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인 염치가 부족하기 때문에 이번 사태가 촉발됐다.

염치가 없다보니 책임의식과 직업 윤리의식은 물론이고 갑질과 이권에 쉽게 유혹됐다. 이로 인해 염불보다는 잿밥에 눈독을 들이는 병폐가 되풀이 되어왔다. 갑질과 이권에 관여하는 행위를 차단하도록 시스템 개선과 더불어 건설업계에 종사하는 내부 구성원들의 인식개선이 필요한 이유다.

둘째는 하는 척 하는 문화가 건설업계에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실질적인 일보다는 보여주기식 일에 매몰돼 있지는 않았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각종 설계나 감리보고서 상에서는 그럴 듯하게 보이지만 현장과는 괴리되고 동떨어진 내용으로 채워지고 있지는 않았는지 반성해야 한다. 이런 이유로 보고서나 사진 상에서는 특별히 문제가 없지만 현실 곳곳에서는 부실로 채워지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실질적으로 일하는 문화조성이 필요하다. 입으로만 일하고 최고 의사결정권자 앞에서 얼쩡거리는 사람들보다는 현장에서 실무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대우받는 문화를 만들 필요가 있다.

셋째는 뻔뻔함과 남 탓으로 돌리는 문화가 조성돼 있기 때문이다. 뻔뻔해도 너무 뻔뻔하다 보니 앞뒤 분간하지 않고 책임을 회피하고 그 책임을 누군가에게 전가시키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해볼 부분이다. 설계는 시공사에게, 시공사는 전문건설업체나 작업자․설계사에게, 감리는 시공사나 설계사의 탓을 하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볼 부분이다. 영국에서는 감리를 하는 과정 중 특정 사안에 대해 의견이 상이했을 경우에는 감리단장과 감리원 사이에서도 공문으로 문서를 서로 주고받는다고 한다. 만약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소재와 더불어 회사에서 청구되는 구상권에 대해 그 책임을 확실히 하고자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확실한 권한과 책임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

넷째, 과정보다는 결과, 특히 너무 이윤만을 추구하는 문화가 저변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개인이나 부서, 조직의 이윤을 최우선적으로 추구하다 보니 이번 사태를 초래했다. 안전과 품질을 무시하고 부정한 방법으로 얻은 이윤추구에 대해서는 몇 백배, 몇 천배의 강력한 징벌적 손해배상을 물을 수 있도록 할 필요도 있다.

다섯째는 그동안 사법부의 기업에 대한 봐주기식 판결 등이 부실을 초래한 영향도 크다. 대형 사고들이 발생하면 건설업계서는 책임회피를 위해 비싼 수수료를 주고 대형로펌을 사용해 적극적으로 방어했다. 이때 사법부는 사회 전반의 거시적인 측면보다는 특정 사안의 프레임 속에서 법리라는 잣대를 들이댔다. 그 결과 부실을 초래했던 건설업계에 책임을 면제시켜 주었던 측면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법조계의 시장영역만 확대시켜 주면서 건설업계는 부실공사를 또다시 하게 되는 그런 상황이 초래됐다. 사법부도 국민들의 안전과 품질을 위해서는 기업들에게 면제부를 주기 보다는 필요한 경우 강력한 처벌을 내려야 한다.

이제 안전이나 품질은 정부가 규제하던 시대에서 국민들과 수요자들이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시대로 변했다. 건설업계는 앞장서 나가지는 못할망정 이제는 적극 따라가야 한다.

부실공사 방지와 건설관련 공공기관 혁신을 위해서는 제도와 시스템 개선은 당연히 필요하다. 그러나 그보다는 먼저 건설문화를 바꿔야 한다. 이번 기회에 이런 관행과 문화를 바꾸지 않는다면 언제라도 이번 사고와 같은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날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당장 하나씩 개선해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