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제언] 설계도서 검토과정 의무화할 때
[긴급제언] 설계도서 검토과정 의무화할 때
  • 국토일보
  • 승인 2023.08.02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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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복 수석감리사|한국종합건축사사무소

건설현장, 무엇이 문제인가

이 준 복 수석감리사
이 준 복 수석감리사

그동안 코로나 때문에 몸과 마음이 움츠러들어 지낸 날이 여러해 인데, 이제 좀 우리 사회가 활기를 찾는 듯 하더니 연이어 들려오는 사고 소식에 마음이 심란하다.

부디 올 한해는 마음도 몸도 건강하게 진정한 희망과 설렘을 맛보고 싶었는데, 이런 소망이 무색하게 사건, 사고가 너무나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특히 건설 현장에서는 전대미문의 신축공사 중인 공동주택의 붕괴 사고로 온 나라가 시끄럽고 TV 뉴스 시간에도 관련사고 얘기로 도배질이 되고 있다. 그에 더해서 중대재해처벌법의 시행은 수많은 범법자를 양산할 지경에 있다.

그런데 우리는 사고나 재해의 근본 원인을 치유하려는 노력보다는 관련자들의 처벌이나 제재에 더 우선순위를 두는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앞선다.

대부분의 재해나 문제는 사람이 만든다. 그리고 그 해결도 결국은 사람이 하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그 모든 원초적인 문제는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시공 현장의 안전관리는 너무 관행적이고, 보여주기 식의 관리에 치중, 어떤 불이익이나 처벌을 면하기에 급급한 모습이다.

실제 현장에서 적용 가능하고 실용적인, 안전관리 절차서나 관련 법규 등의 정비가 필요하다. 일례로 실내 마감작업 공사 과정에선 안전모 착용 등이 작업에 불편을 초래하고 실제 거추장스러워 안전모 착용을 꺼려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현장관리자들의 무겁고 덜거럭 거리는 안전벨트의 일상적인 착용도 꼭 필요한 것인지 의문이다.

필요한 경우에 필요한 안전장구를 착용하는 것이 아니고, 그저 의례적인 경우가 많다. 획일적이고 경직화된 관행적인 안전관리 보다는 현장에서 꼭 필요하고 도움이 되는 합리적인 안전관리 규범이 만들어져야 한다.

적정 공사기간, 공법, 공사비 등이 당연히 챙겨져야 한다.

무엇보다도 건설현장의 기본이 되는 정교하고 잘 검토된 설계도서가 갖춰져야 한다.

공사를 진행하다 보면 시공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시공자와 협의 하거나 챙겨볼 일이 생기게 마련이다. 간혹 협의 과정에서 견해를 달리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하는데, 그 대부분의 원인은 설계도서의 미흡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그동안 설계도서나 법률적인 미비점, 관행 등의 개선을 거론하는 분들이 많이 있었지만, 그에 따른 제도의 개선이나 설계도서의 질적 향상은 아직도 피부로 느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근래 가장 많이 현장이 개설돼 공사가 진행 중인 공동주택(APT) 공사의 경우, 사업승인권자에게 제출되는 사업승인용 설계도서는 물론이고, 공사착공용 실시설계도서 조차도 부실한 부분이 있어, 검토하고 현장에 적용하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공사 진행 과정에서 시행착오가 발생하게 되고 공사 진행방법, 사용자재, 공사비용, 안전관리 등이 문제가 돼 시공자와 감리단의 의견이 상충하는 경우가 발생함은 물론, 안전하고 순조로운 공사 진행이나 품질에 문제가 야기되는 경우가 생기게 마련이다. 심하면 감정싸움까지 발전되는 경우도 있다.

우스갯소리로 한 다리 건너면 다 안다는 기술인들끼리 왜 이런 불미스런 일이 생기는가? 근본 원인은 우리의 건설 관련 제도나 사회의 모든 구성 요소가 기본에 충실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건설현장의 경우, 기본이 정립 되려면 사업승인 과정에서부터 제대로 된 설계도서가 작성되고 충분한 검토과정을 거쳐 승인이 돼야 한다. 필요하다면 관련법과 제도, 관행을 바꾸는 선행적인 조치가 꼭 필요하다. 설계도서 검토과정이 제도화 돼야 한다.

아무튼 내용이 제대로 된 설계도서가 확보될 수 있다면, 가장 중요한 1차적 요소인 기본이 갖춰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음 단계로 잘 갖춰진 ‘설계도서’라는 기본을 성실하게 지켜가는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 물론 정교하게 작성된 공사계획이나 예산 등의 부수적인 조건들이 잘 뒷받침돼야 함은 물론이다.

공사에 임하는 기술인들의 마음가짐도 당연히 기본과 원칙을 지켜가려는 자세로 초지일관해야 한다. 그러면, 쓸데없는 일로 시간을 낭비하는 일들이 줄어들고, 이는 결국 공사기간 준수 및 공사 품질 확보의 선순환 구조로 이어질 것이다.

당연히, 공법변경이나 재시공 등으로 인한 원가 상승이나 자원의 낭비, 공기의 지연, 품질저하로 인한 하자발생 및 민원 등도 부수적으로 줄어들 것이다. 어려운 여건에서 공사를 수행하는 현장 기술인들의 소모적인 업무에 대한 부담도 줄어들고, 그에 따라 일에 대한 자부심이나, 개인적인 삶의 질도 점차 나아질 것이다.

현재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대다수 기능인들은 중국인을 비롯한 외국인 들이다.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 안전관리가 제대로 될 리 없다. 현장마다 덕지덕지 붙어있는 안전구호들은 그저 구호일 뿐, 아무 쓸모가 없다.

획일적으로 지급되는 안전장구가 단기간 사용되고 버려지는 현장의 실상도 개선돼야 한다. 관련 비용을 지급하고 개인적으로 구입해서 쓰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해서 쓸데없이 버려지는 자원의 낭비도 막아야 한다.

안전은 스스로 지켜야 한다. 목마른 말을 강가까지 끌고 갈수는 있어도 말이 스스로 물을 먹지 않으면 목마름을 해소할 수 없는 이치다.

우린 이제라도 빨리 빨리라는 주술에서 벗어나 안전하고 쾌적하며 견실하고 보람찬 건설현장으로 자리매김하는 전기를 마련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 건설기술인들이 지탄의 대상에서 벗어나고 제대로 된 위상을 확립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기본적인 바탕이 구비되지 못한 환경에서 그래도 묵묵히 자기 임무에 땀 흘리는 기술인들만 매도하고 탓하며 심지어는 처벌까지 하는, 그런 불합리는 하루속히 없어져야 한다.

일례로 주택법 제44조(감리자의 업무 등)에는 ‘시공자가 설계도서에 맞게 시공하는지 여부의 확인’이란 항목이 있는데 기본이 충족되지 못한 설계도서로 사업승인이 되고 그런 설계도서를 가지고 시공의 적정여부를 확인 하라는, 참 불합리한 경우가 아닐 수 없다.

제대로 갖춰지지 못한 기본을 정해놓고, 제대로 일하라며 처벌이라는 채찍을 드는 것은 무엇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관련 법령의 해석에 어떤 자의적인 판단이 가능한 법령은 무수한 불합리만 만들 뿐이다. 건축법, 주택법, 건진법 등 관련되는 조항들을 세밀하게 검토함은 물론, 법률 상호간의 괴리여부도 잘 검토하고 현장의 실제적인 목소리도 잘 모으고 다듬어 정책이나 법안 등의 개정에 반영하는 역할을 한국건설기술인협회 등 유관 단체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현장의 목소리를 잘 수렴해서 기본을 잘 만드는 일에 노력과 지혜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새로운 정부의 출범과 궤를 같이해 이런 불합리한 문제들을 개선하고, 기본이 확립된 너른 마당에서 마음껏 기량을 펼치는 당당한 건설기술인들의 내일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