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감리 30년 째… 부실공사 최후의 보루 감리, 이제 지쳐가고 있다
[기고] 감리 30년 째… 부실공사 최후의 보루 감리, 이제 지쳐가고 있다
  • 국토일보
  • 승인 2023.07.13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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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현 희림종합건축사사무소 수석감리원/인천 건설기술교육원 외부강사
유 종 현 수석감리원
유 종 현 수석감리원

1994년 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며, 설계, 시공에 이어 감리라는 새로운 업역이 건축부분에 생겨났다.

졸업과 동시에 감리라는 세계에 20명의 동기들이 이 세계로 진출했지만, 30년이 지난 지금 감리 또는 건설사업관리를 하고 있는 동료는 저를 포함한 2명 뿐이다. 그렇게 본다면 그리 좋은 직업은 아닌 듯 하다.

현재까지 여러 감리관련 사이트를 보면 우리나라에는 약 3만명 정도의 건설기술자가 현장이나 본사에 배치돼 감리 또는 건설사업관리를 수행하고 있다고 하는데, 사회적인 경기에 따라 이직이나 퇴사 등이 타 업종에 비해 많다.

저는 30년 중 23년 동안의 보조 감리업무를 수행했고, 이제는 단장이 돼 현장을 관리한 지도 7년이 돼 간다.

감리는 자동차 보험과도 같은 존재다.

부실공사가 일어나기 전에는 평소에는 아무도 찾지 않지만, 뭔가 일이 터지면 그 때 감리를 찾는다. “그동안 감리는 일 안하고 뭐하고 있었냐”고….

그리고 언론에는 대학교수, 각종 분야 전문가, 공무원 들이 출연해 규탄대회를 통해 결론을 도출하는데 결론은 “감리를 두들겨 잡자, 벌점이 약했나 보다, 감시하는 기구를 두자” 등이다.

30년 동안 진행되는 우리 감리자들은 부실벌점을 받지 않기 위해 보이지 않은 곳에서 많은 노력을 했다. 그러나 이제 그 노력의 한계가 온 것 같은 느낌이다.

국가는 감리에게 많은 권한을 주었다고 하나 우리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사용할 수 없는 권한이라고 생각한다. 30년 동안 써 본적도 없다.

일을 못하면 벌점을 부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한번이라도 감리 또는 건설사업관리자들이 어떤 환경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물어보는 전문가는 없었다.

30년 전 전면책임감리업무가 시행되고 30년 동안 우리 업무는 줄어들지 않고 계속해서 늘어났고, 우리는 건축․토목․기계․전기․통신․소방․조경의 업역을 맡아 현장에 배치되지만 현장에서는 품질, 안전, 환경, 지급자재, 민원 등 추가업무를 겸직하도록 요구한다.

해야 할 일도 많은데 모르는 업무까지 겸직 하면서, 업무의 끝은 보이지 않고, 매일매일 새로운 일들이 지금도 계속 발생되고 있다.

특히 감리원 대다수는 현장출신이 많아 설계변경이나 계약변경, 지급자재발주 등의 업무에 취약한 것이 사실이다. 거의 90%는 이부분에 대해 잘 모를 것이다.

이렇게 버벅대고 있을 때 감사기관에서 나오거나 하면 부실벌점 들어간다.

“그 때 상황은 이렇습니다. 제가 겸직을 하느라 바빠서 잘 못 챙겼습니다. 한번만 봐주십시오!”. 그러나 감사기관은 “그건 당신 사정이고 벌점 3점 입니다”를 통보한다.

지금 현장에 가보면 시공사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감리단, 건설사업관리단의 젊은 기술자는 거의 없다. 제 현장에 배치된 젊은 기술자들도 모두 퇴사해서 새로운 길을 찾고 있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철근콘크리트 붕괴사고와 관련, 현장의 여건을 살펴보면 구조도면의 철근배근도는 왜 그렇게 어렵게 그렸는지, 전문가도 이해하기 어렵게 작성됐고 현장에서 많은 수정과 검토를 거쳐 제2의 구조도면을 만들어내야 하는 실정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적정한 금액을 지불하고 현장에서 샾드로잉 수준의 구조도면을 받아 본다면 좋겠지만 아직도 그런 도면을 현장에서 받아보지를 못했다.

철근 구조도면은 컴퓨터가 계산해 만들지만 현장에서 철근을 작업하는 사람은 외국인 근로자와 연로한 근로자들이 많아 그분들 수준으로 도면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제 이런 문제가 공공연히 퍼져 어디서 또 붕괴하는 상황이 발생할 지 우려된다.

감리 또는 건설사업관리업무에서 추가로 신설할 항목이 있으면 기존 업무를 줄이든지, 아니면 인원을 추가로 배치하든지 해야지 계속해서 업무만 늘어나게 하고 책임만 가중시킨다면 10년 이내 건설 기술자들은 이 업역을 떠날 것이다.

부실공사의 최후의 보루 감리는 이제 지쳐가고 있다.

7월 불볕더위에 철근 위에서 콘크리트를 타설하며 땀을 흘리는 또 다른 감리의 열정만은 잊지말아야 한다. 그들이 있어서 나머지 집들은 튼튼하게 지을 수 있다.

국토부, 행안부, 감사원, 노동부, 발주청, 자문기관, 통제기관은 늘어났지만 감리 또는 건설사업관리자의 고충을 들어주는 국가 기관은 아직 없다.

젋은 친구는 업역을 떠나고 빈자리는 칠순의 선배님이 다시 현장으로 와서 빈자리를 채우고 있다.

새로운 변화되는 여건에 맞춰 과도한 업무를 줄이고 품질이나 안전에 집중하도록 배치해야 한다. 책임을 철저하게 묻고, 할 수 있는 만큼의 업무만 배정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감리비 아깝다’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도록 제대로 주고 제대로 일을 시키는 건설산업 분위가가 형성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