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년 칼럼] 아파트 화재 시 하향식피난구 설치 당연하다
[김광년 칼럼] 아파트 화재 시 하향식피난구 설치 당연하다
  • 김광년 기자
  • 승인 2023.03.10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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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일보 김광년 기자] 초고층 고공전쟁이 갈수록 뜨겁다.

15층 아파트는 이제 기본이고 25층은 일상화 됐고 눈길이 쏠리는 곳에는 어김없이 30층 초고층 아파트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뻗어 있다.

아찔하지만 그래도 멋있다. 부의 상징 유수 브랜드를 달고 뽐내며 서 있는 여기저기 초고층 건축물이 대한민국 서울의 가치를 높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결정적 문제가 있다.

입주민 즉 국민의 안전이 담보되지 못하는 제도적 모순이다.

현재 국토부는 건축법시행령을 개정, 입법예고 중이다. 아파트 대피공간에 대해 바닥면적 산정에서 제외해 주는 법령을 개정하고 시공사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겠다는 것. 여기에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아파트의 대피공간은 직통(피난)계단의 설치를 면제해 주는 대체 설비로 2005년 발코니 확장 과 함께 도입, 당시 소방 고가사다리로 구조가 가능한 10~15층 정도 높이가 대부분이던 시절이다.

그러나 2023년 현재 상황은 완전 다르다.

대부분의 신축아파트가 20층 이상으로 지어지고 초고층 아파트일수록 프리미엄이 붙는 세상이지만 2010년 부산 해운대 주상복합 화재 이후 국민주거 안전에 대한 눈높이가 크게 달라졌다는 사실을 중시해야 한다.

서울, 부산, 인천, 대구 등 전국 대도시의 건축소방심의에선 신축 고층아파트 대피공간 내 하향식피난구 같은 탈출가능한 대피시설을 함께 설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둘 중 하나만 설치할 것이라면 차라리 대피공간 하지 말고 하향식피난구를 설치하라고 권장하는 추세다.

그러나 이번 건축법시행령 개정안의 제안 이유를 보면 국토부의 진단은 ‘대피공간이 인센티브가 부족해 과소 규모로 지어지거나 문제있는 저비용 시설로 설치되고 있다’고 보는 듯 하다.

진단이 잘못됐다. 따라서 올바른 해결방안이 나올 리 만무다.

무조건 대피공간만 제대로 확보하면 된다고 생각할 일이 아니다.

법령의 취지대로 실질적인 직통계단 역할을 할 수 있는 하향식피난구 같은 피난시설의 필요성이 절대적임에도 불구하고 이번 개정안대로라면 “이제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셈이 될 공산이 크다. 참으로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결국 특정업역 특혜라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

특히 국민 안전을 계산하지 않는 무모한 정책추진이 아니냐는 안전시설업계 반발도 거세게 일고 있는 분위기다.

건축을 하는 쪽에 정책의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고 안전시설 확충이 핵심이다.

그러나 작금 정부는 국민안전은 아랑곳하지 않고 초고층 아파트 안전이 보장되지 못하는 위태로운 대피공간에서 화재가 진화될 때까지 기다리라는 꼴이다.

마치 기억하기도 끔찍한 세월호가 생각난다.

소방청 한 관계자는 “지자체가 건축 심의에서 대피공간만의 설치를 막고 있다 보니 상당수 건설사들이 하향식피난구를 에어컨실외기실 안에 설치하고 있어 골머리를 앓고 있다” 며 건축법 제도적 모순을 지적했다.

하향식피난구의 문제는 사생활 침해에 취약하거나 저비용 설비라서 문제가 아니다.

소방법규에서는 당연히 대피실(방화구획) 내에 설치토록 하고 있는 것을 건축법시행령에서 그저 ‘발코니 바닥에 설치’ 라고 졸속 도입해버린 후폭풍이다.

화재발생 시 세대 내 좁은 공간에서 체류하며 최악의 상황을 기다리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소방청의 권고처럼 하향식피난구 등으로 직통 계단을 제대로 대체할 수 있는 양방향 피난로를 동시에 확보토록 해야 한다.

차제에 하향식피난구도 아무데나 설치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안전한 대피공간(방화구획) 내 설치를 법제화, 피난안전 뿐 아니라 방범, 프라이버시 등의 문제도 동시 해결방안을 강구해야 할 때다.

다시 한번 강조한다.

인심쓰듯 제공하는 대피공간 인센티브는 자칫 최악의 안전사각지대로 돌변할 우려가 매우 지대하다는 점,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빠른 시간 내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는 새로운 구조나 시설이 개발되고 이에 대해 검증이 되었다면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확대 시행해야 한다.

더욱이 인센티브 제도를 운영하려면 그야말로 형평성 있고 공정한 잣대로 산업과 시장에 적용해야 한다.

“법이 목소리 크고 힘 센 세력에 휘둘리는 듯 합니다” 라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기업행위 보다 국민안전 차원에서 접근하고 판단해야 한다는 현실을 실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2023년 3월, 치솟는 고층 아파트 시대는 지금 인센티브 혜택만큼이나 국민 안전에 더 바람직한 건축법 시행령 개정 방향은 무엇인지 보다 냉철함을 촉구하고 있다.

국토교통부의 지혜와 의지가 필요한 시점이다.

2023, 3, 10 / 본보 편집국장 김광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