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 한잔의 여유] 빨간색
[茶 한잔의 여유] 빨간색
  • 국토일보
  • 승인 2011.07.05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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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연 태 혜원까치 대표이사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열흘이나 붉은 꽃은 없다)'이라더니 한동안 동네 담장을 붉게 장식하여 마음을 온통 달구던 빨간장미는 어느새 수명을 다하고, 그나마 장대같이 퍼부은 빗줄기에 몇개 남아 있던 꽃잎마저 떨구었을 것이다.

꽃의 색깔이 각자의 색으로 보이는 것은 다른 색은 모두 흡수하고 우리에게 보여지는 색깔만 반사하기에 그런 것이며, 빨간장미는 빨간색만 반사하기에 우리 눈에 빨갛게 보이는 것이다.

빨간색은 가시광선 중에 가장 긴 파장을 갖고, 보라색은 가장 짧은 파장을 갖는 것은 무지개가 빨, 주, 노, 초, 파, 남, 보의 순으로 일곱가지 색깔로 되어 있음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러다보니 빨간색은 햇볕에 가장 잘 바래서 시간이 지나면 주변 글씨 중 빨간색은 잘 보이지 않는다.

프랑스의 스탕달이 쓴 ‘적과 흑’에서 ‘적’은 군대의 붉은 옷을 상징하는데, 군대는 전쟁과 피가 우선 떠오르는 것은 붉은색이 갖는 특별한 의미 때문일 것 같다.

신라에 처음 불교가 전래될 때 순교한 과정을 그린 책 ‘이차돈의 사(死)’에 보면 그가 처형될 때 ‘이 차돈의 목에서 하얀 피가 솟구쳐 서라벌 바닥에 흘러 넘쳤다’라고 했는데 이차돈의 경우를 제외하곤 이 세상의 모든 피는 붉은색일 것이다.

한편 러시아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 중국의 오성기, 이북의 인공기를 통해 보면 혁명의 색이고, 선동, 흥분의 색이기도 하다.

신라시대 처용의 형상을 따서 그려 귀신의 범접을 막는다는 ‘부적’도 빨간색이며, 동짓날 끌여 먹는 팥죽도 빨간색으로 귀신을 막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축구에선 ‘붉은악마’라고 하여 이십 여년 전인가 청소년축구대회가 남미 어느 나라에서 열렸을 때 박종환 사단이라 불리던 우리의 청소년 대표 선수들이 붉은 유니폼을 입고 악마처럼 뛰어 4강 신화를 이루었는데 당시 현지 언론에선 ‘Red devils’로 불렸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큰 축구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집안에서 티.브이를 보면서도 빨간 티샤츠를 입고 응원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중국의 전통시장이다. 온통 그들이 좋아하는 빨간색이다. 엄밀히 말하면 주(朱)색이다.

우리말도 빨간색, 붉은색, 불그스름한색 등의 표현이 있지만, 한자에도 주색(朱:붉을 주), 홍색(紅:붉을 홍), 적색(赤:붉을 적) 등이 있는데, 紅色은 빨강색에 흰색을 가미한 밝은 빨강이고, 赤色은 불꽃을 상징하는 환한 빨강을 뜻하며, 여기서 말하는 朱(쭈~)色은 칙칙한 빨강을 뜻하는 짙은 빨강이다.

‘빨간 줄’은 죽음을, 그리고 ‘빨갱이'라는 사상적 적대감이 주입되어진 우리에게는 거부감이 가는 색이었지만 중국 사람은 빨간색을 아주 좋아한다.

그들이 워낙 좋아하여 너도 나도 사용하게 되자 황실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황실에서만 사용하게 하고 일반인이 사용하면 모두 죽이다보니 빨간색의 사용을 기피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제한이 없다보니 중국 어디를 가도 ‘福, 金’같은 좋은 글자는 모두 빨간 종이에 적고 있으며, 베트남 콘가이가 입는 하얀색의 ‘아오자이’도 결혼식 등 경사스런 날에는 일부러 빨간색으로 입는 것을 보면 빨간색은 여전히 좋은 의미를 갖고 있는 듯하다.

한동안 담장 가득피어 볼 때마다 가벼운 흥분마저 느끼게 하던 빨간 넝쿨장미가 어느새 보이지 않아 눈을 둘 데가 없어져 헛헛한 마음에 차마 빨간색이 그리워지기까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