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팝나무
이팝나무는 대나무와 마찬가지로 대전 근처까지의 남쪽 지방에서 주로 자라는 나무인데 기후가 점점 온난화 되어서 그런지 서울에도 이팝나무가 하얀 꽃을 달고 만발했다. 한동안 조팝나무가 온통 하얗게 피어 있더니 요즈음 임무교대를 한 것 같다.
두 나무 다 하얀 쌀밥을 연상하게 되나 조팝나무는 싸리나무 같은 나지막한 나무에 가득 매달려 있고, 이팝나무는 키가 20 여m까지 자라지만 도로변의 나무들은 5~6m 쯤 되는 것 같다.
‘입하’ 때 꽃이 펴서 이팝나무로 불린다고도 하지만 이맘 때쯤 지난 해의 쌀은 떨어지고 새로 보리가 나기까지 먹을 것이 없다보니 풀뿌리와 나무껍질로 연명한다는 초근목피의 보릿고개에 하얀 꽃이 피어 마치 쌀밥을 담아 놓은 것 같다고 해서 이팝나무라 불렀다고 한다.
보릿고개가 없어서일런지 서양에서는 이 나무를 마치 흰 눈이 내린 것 같대서 눈꽃나무(snow flowering) 라고 부른단다.
이팝나무에 대해서 애달픈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시어머니의 구박을 받던 착한 며느리가 5월 어느 날 조상의 제사를 모시기 위해 시어머니가 내주는 쌀로 제삿밥을 짓게 되었는데 친정이 워낙 가난하여 시집 올 때까지 잡곡밥만 짓고 한번도 쌀밥을 지어 본 적이 없어 밥물을 얼마로 잡아야 할지 잘 몰라 혹시나 제삿밥을 잘못 지어 낭패 할 까봐 몹시 겁이 났다.
그래서 뜸이 제대로 들었나 보려고 밥알 몇 개를 떠서 먹어보고 있는데 시어머니가 문틈으로 이 광경을 보고는 ‘제사에 쓸 쌀밥을 몰래 퍼먹고 있다’면서 온갖 구박을 하였다. 구박을 견디다 못한 며느리가 뒷산에 올라가 목을 매어 죽고 말았는데, 이 며느리가 묻힌 무덤 가에 흰 쌀밥 같은 꽃이 수북하게 피는 나무가 자랐고 사람들은 쌀밥에 한이 맺혀 죽은 며느리가 환생한 것이라고 해서 이 나무를 이팝나무라 불렀다고도 전해진다.
어째튼 이팝나무를 보면 어쩔 수 없이 하얀 쌀밥이 생각난다. 이북에선 김일성의 유훈이 ‘인민들에게 이(쌀)밥에 고깃국을 먹이라’는 것인데, 남한에선 적정량의 쌀 외의 먹고 남아도는 쌀을 관리하는데만 연간 3천억 원인가의 엄청난 재원이 들어 쌀이 천덕꾸러기가 된 것 같다.
쌀이 남아 도는 것은 단순히 쌀의 생산기술이 늘어서만은 아닌 것 같다. 전엔 보통 장정 한사람이 한 달에 쌀을 세말 쯤 먹곤 했는데 지금은 한사람이 반말도 먹지 못한다. 쌀 소비량이 엄청 줄었다는 얘기다. 그 나머진 쌀이 아닌 다른 것으로 주년 부리를 한다는 얘기겠지.
고전인 흥부전에 보면 이팝나무가 나온다. 우리의 고전 소설은 근본적으로 ‘권선징악’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흥부의 파트너인 놀부는 참으로 못 된 위인이었던 것 같다. 보통사람은 오장육부(보)인데, 놀부는 오장칠부로 심술 부 하나가 더 있었다고 한다.
흥부전에 보면 놀부의 서른 여덟 가지의 심술행태가 나열되는데 그 행동거지가 “술 잘 먹고, 욕 잘하고, 애 밴 여자 배 차기, 다 큰 처녀 겁탈하기, 우는 애 때리기, 호박에 말뚝 박기, 초상난 데 춤추고, 불 난 집에 부채질 하고, 남의 제사에 닭 울리고, 비 오는 날 장독 열고, 똥 누는 애 주저앉히기…” 온통 못된 짓 뿐 이었지만 그 파트너인 흥부는 착하기가 그지없다.
있는 것은 없고 없는 것은 많은데도, 스물 셋씩이나 자식을 퍼질러 놓고 입을 것이 없으니 이불 대신 멍석에 스물 세 개의 구멍을 뚫고 그 속에 애들을 몰아넣고 애가 늘면 구멍만 하나씩 더 뚫는 아이디어를 개발했으나, 문제는 식량이었다.
형수 밥 풀 때 식량을 빌려 달랬다가 주걱으로 얻어맞고, 쌀 좀 빌려 달라는 부탁을 다시 해보려고 형수 뒤에 바짝 붙어서 ‘형수님, 저 흥분데요’ 했다가 ‘흥분’ 된다는 말로 성추행으로 몰려 다시 얻어맞고, 다시 찾아가 ‘한번만 더 사정하러 왔다’ 했다가 ‘사정(射精)’하려 한다는 말을 듣고 또 엄청 맞은 듯 싶다.
할 수없이 굶주린 자식들을 생각하여 매 품을 팔러 가기로 했으나 실은 매를 맞으러 가지 못했다. 방에서 부인에게 매품 팔러 간다는 얘길 하는 것을 꾀쇠아범 이라는 자가 부엌에서 엿듣고 구전을 먹고 다른 사람한테 연결 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 세상에 공짜 점심이 있을 수 있겠는가, 관가의 문지기에게 인정(人情- 약간의 뇌물)을 베풀었어야 본인이 맞을 수 있었던 건데…
그런 와중에 흥부는 부러진 제비다리를 묶어 주는 찬스를 잡으면서 일시에 형편이 펴졌다.
‘흥부전’에 보면 그 톱질의 첫 번째 대박에서 “하얀 쌀밥이 이팝나무 만큼이나 쏟아 졌다. 스물세 놈 새끼들이 달려들어 퍼먹고 배가 남산만큼이나 커졌다” 라고 쓰고 있다.
늘 이팝나무의 활짝 핀 하얀 꽃은 보다보니 뭘 먹지 않았는데도 이상스레 배가 부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