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일보 현장25時] 건설공사 발주자, 넋 놓고 있을 때가 아니다
[국토일보 현장25時] 건설공사 발주자, 넋 놓고 있을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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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10.05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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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기 국토일보 안전전문기자/공학박사/안전기술사/안전지도사

도급·용역·위탁사업·안전보건관리체계, 전면 재검토해야

최 명 기 박사
최 명 기 박사

정부나 지자체, 공사나 공단 등을 포함한 건설공사 발주자는 그 지위가 발주자일까 아니면 도급인일까? 사회가 요구하는 안전패러다임이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어 건설공사 발주자들의 인식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다.

지난 2020년 6월, 인천 중구 인천항 갑문에서 진행되던 보수공사 중 안전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협력업체 소속 40대 작업자가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었다. 이 사건과 관련해 검찰은 인천항만공사를 발주자가 아닌 사실상 원도급사에 해당한다고 보고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건설공사 발주자를 예전처럼 무작정 발주자로 볼 것인지, 아니면 도급인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판결은 향후 중대재해처벌법 판결에도 미치는 영향이 상당하다. 그러하기에 안전전문가들이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있는 사건이다.

지난 6월, 1심 재판부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인천항만공사 사장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이례적으로 국가 공기업 사장이 해당 사업장에서 벌어진 안전사고와 관련하여 실형을 선고받아 그 충격은 상당했다. 1심 재판부는 인천항만공사를 건설공사를 실질적으로 총괄하는 도급인으로 보고 안전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판단해 유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9월 22일, 항소심 재판부는 이를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으로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부담하는 도급인의 범위를 확대하고, 위험한 일부 작업의 도급을 원칙적으로 금지해 이른바 ‘위험의 외주화’에 대한 도급인의 책임을 강화했다고 보면서도 이건과 관련해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인천항만공사를 건설공사 발주자가 아닌 건설공사를 총괄하는 도급인에 해당한다고 보기 부족하다고 판시, 무죄를 선고했다. 현재 검찰은 대법원에 상고를 한 상태이다.

1심과 항소심 재판부의 판결은 건설공사 발주자를 도급인의 범위로 해석할 수 있는지 여부에서 엇갈리고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도급인을 물건의 제조·건설·수리 또는 서비스 제공 등의 업무를 도급하는 사업주로 규정하고 있다. 도급인은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조치를 해야 할 책임이 있다. 그러나 예외조건으로 건설공사 발주자는 도급인에서 제외하고 있다. 향후 이러한 예외조건 허용에 대해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산업안전보건법이나 중대재해처벌법에서는 건설공사 발주자와 도급인을 구분 짓는 기준은 도급, 용역, 위탁 등에 있어서 건설공사 발주자가 실질적 지배, 관리, 운영을 했는지 여부가 관건이다. 다시말해 발주자가 공사를 총괄·관리했는지 여부에 따라 발주자냐 도급인으로 구분될 수 있다.

이번 판결에 대해 건설공사 발주자들과 경영책임자들은 일단 한 숨을 돌리게 됐다. 그러나 아직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향후 대법원 판결이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지난 2021년 11월 5일 발생한 한전 여주지사 협력업체 사망사고와 관련, 고용노동부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한전을 배전공사의 발주자가 아닌 도급인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검찰은 한전을 도급인이 아닌 전기공사업법에 따른 발주자의 지위에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 사건을 계기로 한전은 이대로는 안된다는 인식하에 안전 패러다임의 변화와 함께 대대적으로 불합리한 제도 개선을 이끌었다. 한전은 안전사고 근절을 위한 특별대책을 발표하고 ‘효율에서 안전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했다. 공사현장 마다 안전담당자를 배치하는 것은 물론 인력·장비 실명제를 도입하는 등 현장의 안전을 강화했다. 또한 불법하도급 등 부적정 행위가 적발된 업체와 사업주에 대해서는 한전 공사의 참여기회를 박탈하는 원스트라이크아웃(One-Strike Out) 제도를 마련하는 등 시공 현장과 업계에 큰 변화의 바람을 불러 일으켰다.

정부나 지자체, 공사나 공단 등 건설공사 발주자들이 도급, 용역, 위탁 등에 대응하는 조치는 그야말로 허술하기 짝이 없다. 입찰공고에서부터 낙찰하는 과정에서 수행하는 안전보건역량평가, 도급계약서 작성, 공사 시행과정 중 이행사항 점검 등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면 아직도 부족하고 미흡한 실정이다. 물론 모든 기관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관들은 아직도 개념조차 없는 실정인 경우가 많다.

이번 기회에 도급, 용역, 위탁사업 등을 수행하는데 있어 문제는 없는지 되돌아보고 부족하면 개선해야 한다. 대법원 판결에 따라 공공기관장이 실형을 받고 수감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발주자가 시공사에게 무리하게 공기단축을 요구하고 작업자 인력충원과 직접 작업 등을 지시했다면 실질적 지배관리로 보아 발주자가 아닌 도급인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는 생각이다.

그동안 발주자라는 가면 뒤에 숨어서 권한만 행사하고 책임을 지지 않았던 발주자의 관습과 행태도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안전에 대한 시대적 환경이 급속히 변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