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행정절차, 시급 다투는 공사현장 ‘무용지물’
평가기간 6개월 이상, 업계 엄두조차 못내
불명확한 평가수수료, 대행업체만 배불려
환경부, “산업 저하 우려되면 절차 간소화 추후 검토” 고려
[국토일보 김준현 기자] 잇따른 모래 규제로 골재업계의 시름이 깊어지는 가운데 재활용모래마저도 환경규제에서 자유롭지 못해 업계가 한숨만 쉬고 있다. 골재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산물인 ‘석골재폐수처리오니’가 폐기물관련법의 이중규제로 재활용이 가로막혔기 때문이다.
석골재폐수처리오니는 모래를 생산할 때 발생한 폐수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무기성오니(汚泥)로, 양질의 토사와 5:5로 혼합해 사용하면 건설·토목 현장에서 성토재로 재활용토록 폐기물관련법 시행규칙에 규정돼있다.
앞서 환경부는 폐기물의 재활용을 유형별로 세부 분류해 ‘재활용장소변경신고’ 및 ‘재활용환경성평가제도’를 개정·신설했지만, 골재선별파쇄업계는 개정된 제도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다는 지적이 흘러나와 이에 대해 살펴봤다.
■ 적기 요하는 건설현장 ‘무용지물’ 신고제도
재활용 대상의 부지를 변경할 때마다 해당 지자체에 재활용장소변경신고를 해야 하는 조항이 있다. 평균 15일 내 행정처리를 원칙으로 하나, 1개월에서 3개월까지 소요되는 경우가 발생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업계 관계자는 “석골재폐수처리오니가 복잡한 행정절차로 인해 적기에 허가받기가 어렵다”며 “현장에서는 공사기간의 시급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성·복토재가 제때 매립되지 않는다면 건설현장에서 재활용으로 쓸 수 없다”고 말했다.
업계는 무엇보다 다중 부서 승인에 혀를 내둘렀다. 지자체 자원순환과의 승인을 받기 전에 법의 저촉사항을 확인하고자 건설·건축·도로·도시계획·허가민원 등 타 부서의 협의를 이끌어내야 하고, 조건에 맞지 않으면 용도에 맞게 변경해야 하는 절차가 있어 신고기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A시청 자원순환과 관계자는 “절차가 복잡하지만 어쩔 수 없는 사항이다. 폐기물관리법에 따라 진행할 뿐”이라고 말했다.
절차의 복잡성은 차치하더라도 재활용 업계는 건설업자의 현장 시설 배치도 및 인감증명서 등을 건네받아 지자체에 제출해야하는데, 건설업계 입장에서는 대외비나 개인정보 유출을 염려하며 협조해주지 않으니 문제가 된다는 지적이다.
■ 불명확한 평가기간 및 수수료, 엄두조차 못내는 사업자들… 대행업체만 배불려
재활용환경성평가제도는 1~2년이라는 과도한 평가기간과 최대 5억원이라는 막대한 비용으로 인해 업계의 빈축을 샀다.
앞서 환경부는 기존 폐기물 관련법이 한계를 드러냈다고 판단, 관련법을 일부 개정해 ‘재활용환경성평가제도’를 마련했다. 인체에 영향을 주는 폐기물을 사전에 예측·평가해 안전한 폐기물 재활용을 도모하겠다는 취지다.
사업자는 석골재폐수처리오니를 성·복토재로 재활용 시 12만톤(t)이나 3만평방미터(㎡) 면적을 초과하면 의무적으로 재활용환경성평가를 의뢰해야 한다. 이후 한국환경공단의 평가와 국립환경과학원의 승인이 있어야 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
평가기간은 66일, 평가수수료는 성토재 및 도로기충재 등 매체접촉형 기준 2,600만원(현장조사 및 리모델링 수수료 제외)으로 법정 고시돼있다.
그러나 이와 달리 현재 평가받고 있는 업체들은 1년째 승인 대기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견적서 대행업체를 통해 평가수수료를 확인해본 결과 5억원이라는 수수료가 산정돼 재활용 업계는 충격을 받았다고 전했다.
대행업체는 평가 기본 수수료 3,000만원 외에 대상지역의 기초조사만 7,000만원, 시험분석에 1억원, 평가서 자료작성 3,000만원, 모델링 평가 1억2,000만원, 현장적용성 시험 1억4,000만원 정도를 예상하며 약 5억원을 넘기는 평가 수수료가 산정된다고 밝혔다.
수수료에 대해 환경공단 측에 문의한 결과 관계자는 “폐기물의 재활용 방법과 면적·용량별 기준 및 대상 지역에 따라 비용이 천차만별이기에 직접적으로 평가 절차를 밟지 않은 이상 수수료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며 “다만 면적 및 무게에 따라 성·복토재로 쓸 매체접촉형 재활용 비용이 2억원까지 나올 수는 있다”고 말했다.
재활용 업계가 직접 환경공단에 신청해봐야 결과를 알 수 있으나 영세한 업체들 입장에서는 견적서 대행업체와 협업하지 않을 경우 사업을 진행하기가 힘들다. 이런 부분에서 오히려 대행업체의 배만 불리는 악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염려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무엇보다 이런 이야기들이 업계 귀에 들어가니 업체들이 평가엄두조차 못내는 실정이다. 국립환경과학원의 자료에 따르면 재활용환경성평가제도 승인 업체가 재활용 폐기물의 신기술 개발에 목적을 두는 비(非)매체접촉형 세 군데만 진행된 것으로 확인됐고, 매체접촉형 폐기물의 경우에는 승인받은 곳이 없으며, 신청 업체마저도 몇 군데 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골재업계 관계자는 “법 도입 2년이 지났는데 여전히 활성화되지 않았다는 것 자체가 법 제도의 사문화를 의미하지 않냐”는 의문까지 제기했다.
■ 걸림돌은 기간, 골재수급난 가중 고려해 합리적 행정제도 보완해야
지금까지 살펴본 바로는 폐기물관련법 개정·신설로 인해 재활용 사업자가 고충을 겪는 부분이 무엇보다 신고·평가 기간으로 확인됐다.
업계는 현재 고객의 정보를 취합하고 지자체 여러 부서와 합의를 이끌어내야 하는 복잡한 행정절차로 사업이 지연되거나 거부당하는 경우는 물론, 대규모의 환경평가제도로 사업 확장을 못하고 있다.
재활용 사업이 고정된 장소가 아닌 여러 지역에서 활성화된다고 볼 때, 이런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한다면 오히려 불법 투기업자들만 늘어나서 재활용산업이 저하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환경부 담당자를 통해 이런 고충을 전하자 “재활용환경성평가는 아직 기반이 제대로 잡히지 않은 제도이다. 환경공단 외에도 최근 평가지정기관업체 2군데가 승인 대기 중에 있으니 차후 제도가 보편화를 이끌면 기간 및 수수료의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역마다 신고 및 평가를 받아야 하는데 기간이 발목 잡는 게 문제라면 사업지연 확장을 저하시키는 현행 제도의 행정절차를 간소화시키는 방안도 추후 고려해보겠다”고 덧붙였다.
골재업계는 최근 몇 년간 살얼음판 위를 걸으며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다. 4대강 준설사업으로 하천모래는 생산이 불가능한 상태이며, 바다모래는 수협과 어민의 갈등으로 채취를 못하고 연이어 사수 결의대회를 진행 중이다.
최근 국토교통부를 통해 발표된 ‘한국골재협회 9월 골재채취 능력평가 공시’ 자료만 보더라도 평가받은 17개 업체 가운데 하천골재업체는 전무하고 바다골재업체는 한군데밖에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선별파쇄업체만 절반이 넘는 9군데가 평가받은 것으로 볼 때, 대부분 부순모래만이 수도권 현장에서 활발하게 생산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 보니 부순모래 부산물도 연간 3,000만톤(국토부 추산)씩 발생하고 있어 건설 매립현장에 재활용으로 장려해야 하는 입장인 만큼, 개선 방안이 빠른 시일 내에 나와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