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공공 발주, '공공성' 차원 접근···적정 공사비 지급 등 패러다임 전환 시급
[기획] 공공 발주, '공공성' 차원 접근···적정 공사비 지급 등 패러다임 전환 시급
  • 김주영 기자
  • 승인 2018.03.2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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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 제 값 주고 제대로 일 시키자

[창사 24주년 특별 기획] 건설, 제 값 주고 제대로 일 시키자 
적정공사비 지급 등 공공 발주 패러다임 변화 시급

▲ 공공 발주도 '공공성' 차원에서 접근, 발주방식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현행 '최저가 낙찰제'는 건설업계의 출혈 경쟁을 야기할 뿐 아니라 건축물 품질 저하 등을 일으켜 국민 안전도 위협하는 등 부작용이 상당하다는 주장이다.

[국토일보 김주영 기자] 설계 부실, 부적격한 시공사 선정, 부족한 공사기간 등은 건설현장의 안전사고를 유발하는 대표적인 원인이다. 적정 공사비가 지급되지 않아 발생한 부작용이라는 것이 건설업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적정공사비 미지급은 건축물 품질 저하로 이어져 국민 안전 위협뿐 아니라 잦은 수리보수, 재건축 등 사회적 비용 낭비를 초래하고 있다. 대한건설협회는 올해 ’적정 공사비‘ 확보에 사활을 걸었다. 이는 문재인 정부가 강조하는 ’공공성‘ 강화와 맥을 같이 하는 움직임이다.

■ 건설 재해, 저가 낙찰·부족한 공기 ‘문제’
건설현장 중대사고는 지난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최근 3년간 총 25건이 일어났다. 공종별로는 콘크리트공이 7건을 기록, 가장 많은 사고를 일으켰다. 뒤이어 교량공(6건), 터널공(5건), 관로공과 강구조물공(각 2건), 기타(3건) 순이었다.

시간대별로 살펴보면, 주말 등 휴일 및 야간에 발생한 사고가 15건으로 전체의 약 60%를 차지했다.

사고는 설계단계에서의 충분한 지반조사 미흡 등으로 터널, 관로, 옹벽공사 중 붕괴사고가 발생한 경우가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여기에 시방서 절차를 지키지 않거나 특수공법 및 설계 이해 부족으로 일어난 사고도 다수로 나타났다.

건설업계는 적정 공사비가 지급되지 않고, 토지보상 지연이나 집단 민원 등으로 인한 공기 연장 등에 발주기관이 소극적으로 대응하기 때문에 공기에 쫓기게 된다는 입장이다. 

건설현장의 안전이 단순히 경제 논리에 파묻혀 위협받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공기에 쫓기지 않으려면, 공기 연장에 융통성을 발휘하고 예상치 못해 발생한 증액 금액도 지급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 진퇴양난(進退兩難) 공공공사… 할수록 적자
건설업계는 한 목소리로 ‘공공(公共) 공사를 하면 할수록 적자’라고 하소연하고 있다. 

2015년 대형건설사 14곳 가운데 11개사가 공공공사에서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중소형 건설사의 고충은 이보다 더 클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대한건설협회의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준공된 129개 건설현장의 실행률을 조사한 결과, 40%에 육박하는 48곳에서 실행 원가에 못 미치는 공사비를 받고 있었다. 즉, 현실과 맞지 않는 공사비가 지급된 셈이다.

적정공사비를 확보하지 못한 건설사들은 일반 관리비 절감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그 결과, 인력을 줄이거나, 외국인 근로자를 포함해 저임금 근로자를 투입하는 등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다. 

이로 인해 안전재해가 늘어났다는 사실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발표한 자료를 통해 살펴 볼 수 있다. 산업안전공단의 자료에 따르면, 건설현장 재해 중 80% 이상이 6개월 미만의 비정규직 근로자에게서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여기에 외국인 근로자의 재해는 근속기간 1달 이내가 35%를 차지했다. 

■ 정부 발주방식, 발상의 전환 필요
정부의 공공공사 입찰 방식이 건설업계를 고사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는 점도 주지의 사실이다. 주범은 ‘최저가 낙찰제도’다. 

최저가낙찰제는 입찰가격이 가장 낮은 업체를 선정하는 방식이다. 건설사들의 출혈 경쟁을 부추기고 있는 대목이다. 예산 절감을 통해 합리적인 비용으로 진행하겠다는 정부의 강압적 희생 강요가 민간 건설사의 재정상태만 악화시키고 있는 꼴이다.

더욱이 최근 들어 공공과 민간부문의 일거리가 모두 감소하면서 ‘저가 수주 경쟁→덤핑 낙찰→공사비 급증→산업 재해 발생→업체 부도’라는 악순환이 한층 가속화되고 있는 양상이다. 
정부는 최저가 낙찰제도의 폐해를 막기 위해 종합심사낙찰제, 종합평가낙찰서, 기본설계기술제안 등 다양한 대안을 마련했다. 그럼에도 부작용은 이어지고 있다.

건설업계, ‘공공(公共) 공사를 하면 할수록 적자’ 어려움 토로
최저가낙찰제 퇴출 등 입찰제도 개선… 품질·안전 확보 강화해야

중소형 건설사는 ‘부익부 빈익빈만 가중시키고 있는 대형사를 위한 제도’라고 불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컨소시엄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시공능력을 인정받아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출혈경쟁은 지속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심지어 턴키처럼 기술평가 비중이 높은 ‘기술형 입찰’도 10건 중 6건이 적자공사로 분류됐다. 여기에 적정 가격을 보장해 주는 방식인 적격심사도 77건 가운데 24건(31.2%)가가 적자에 허덕였다. 100억 이상~300억 원 미만 규모에서도 9건 중 6건이 적자로 분류됐다. 

즉, 적정공사비 보장을 위해 도입된 다양한 입찰 방식 역시 적자공사를 막지 못한다는 의미다. 새로운 발주방식을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 이유다.

일각에서는 시설공사에서만큼은 입찰제도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해당 사업의 ‘예정가격’을 비공개로 산정한 뒤, 입찰에서 제일 근접한 가격을 제시한 시공사를 낙찰자로 선정하는 것을 제안한 것. 입찰에서 현재 가장 강력한 ‘무기’로 통하는 최저가격을 무력화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 방식은 발주처가 염두에 둔 건축물의 규모, 시설을 예정가격으로 비공개로 산정하고, 낙찰자는 가이드라인에 맞춰 자신만의 노하우로 낙찰 비용을 산정해 제시하는 ‘노하우+기술력’을 모두 결합한 방식이다. 

건설업계는 터무니없는 예산으로 최고 품질의 건축물을 요구하는 현실에서 벗어나 적정 수준의 건축물을 적정 가격에 건축할 수 있는 낙찰제의 패러다임 변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렇게 되면 발주처가 사전에 염두에 둔 품질, 내부 인테리어 등에 부합한 건축물을 시공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것이라 주장했다.

■ 美, 공공성에 ‘무게’… 손해·이익 모두 공유
국내 조달시장과 해외 조달시장의 차이점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특히 공공성에 가치를 둔 미국이 국내 조달시장과는 현격히 다른 모습을 보인다. 

미국의 조달규정(FAR)을 보면, 크게 고정금액계약(Fixed-Price contract)과 실비정산계약(Cost- Reimbursement Contract)으로 구분된다. 

세부적으로 보면 고정금액계약은 ▲확정고정금액계약 ▲시장가격 조정부 고정금액계약 ▲고정금액 인센티브 계약 ▲장계가격 재결정 고정금액 계약 ▲소급가격 재결정 고정금액 상한가격 계약이 있다.

미국 정부는 비용과 가격정보를 통해 예상되는 이행비용을 추정할 수 있을 때 이 방식을 활용한다. 여기서 낙찰자가 계약을 적절하게 이행했는지 여부가 대금 지급의 기준이 된다. 

미 정부는 이행 비용에 따른 가격조정을 하지 않아도 돼 고정금액계약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시장 가격의 변동과 공기 절감과 같은 인센티브 등 다양한 조건에 따른 비용 지불도 가능하다.

실비정산계약에는 ▲원가계약 ▲원가분담계약 ▲원가-고정보수 가산계약 ▲원가-인센티브 가산계약 ▲원가-성공보수 가산계약이 있다. 이 방식은 연구개발(R&D)나 신기술 적용 등 계약 이행비용을 추정하는 것이 어렵다고 판단되는 경우에 적용된다. 다만 반드시 협상에 의한 계약 절차를 준수해야 한다. 

최저가낙찰제, 건설업 적자 심화… 발주자-낙찰자 운명공동체 인식해야
설계 부실·부적격 시공사 선정·공기 부족이 건설현장 안전사고 촉발

미 정부는 계약 조건에서 발생한 합리적이고, 귀속 가능하며, 허용이 가능한 비용을 일종의 리스크로 판단해 비용이 상승하더라도 비용을 부담한다. 동시에 계약금액총액을 설정하고, 계약상대자가 초과해서는 안 될 상한선을 정해 무분별한 증액을 막는다.

낙찰자는 정부와 합의된 추정비용 내에서 계약을 이행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하며, 계약담당공무원은 낙찰자의 이행을 면밀하게 모니터링해 도덕적 해이가 일어나지 않도록 관리 감독한다.

한국과 미국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공공성‘이다. 미국은 공공의 신뢰를 유지하고, 국가가 제시한 목적을 달성하는 동시에 수요에 적합한 최적의 상품과 서비스를 공급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정부조달이 국가의 경제정책 및 공공정책을 실현하는 수단인 셈이다.

한국은 국가계약법에 의거, 상호 합의에 따라 계약을 체결하고 신의성실에 따라 반드시 이행해야 할 것을 강조한다. 미국과는 다르게 관련 법규 등 개별 규정에서 추구하는 방식으로, 정부조달이 경제정책, 공공정책의 실현의 수단이 아닌 문자 그대로 ’계약‘이 된다. 즉, 현행 국내 낙찰방식은 정부의 이익이 최우선 가치로 분류된다. 

반면 미국은 발주처와 낙찰자가 하나의 운명공동체로 인식하고 있다. 더욱이 한국과는 다르게 공사비를 절감했을 경우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등도 손해와 이익을 공유하는 유연한 방식을 보인다다. 

■ 불공정한 관행, 건설업계 경영난 가중
건설업계는 국내 공공공사에 ’불공정‘한 면이 많다고 꼬집는다. 적자 수주의 책임이 온전히 ‘입찰자’의 몫이다. 여기에 공사 착공 후 용지 보상업무에 낙찰자가 관여하는 관행도 남아 있어 간접비 증가를 견인한다. 심지어 현장에서 불법 매립 폐기물이 발견되더라도 낙찰자가 처리를 책임져야 하는 실정이다.

건설업계는 하자담보책임기간도 불합리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예를 들어 철도터널을 준공한 이후 발생한 균열에 대한 원인분석 없이 시공자에게 떠넘기고 있다는 것이다.

시공부실에 따른 균열인지, 통과차량의 진동 등을 관리하지 못한 관리주체의 부실인지는 따지지 않고 하자보수를 요구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즉, 이는 정부나 발주처의 이익을 최우선시 여기는 것과 맥을 같이하며 불공정한 관행을 고착화하고 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최민수 박사는 “공공사업의 부실은 설계 단계부터 적정공기 확보 등을 통한 부실 방지가 중요하다”며 “품질 확보를 위해서는 예정가격의 적정화 추진, 표준시장단가의 현실화, 제경비 반영 현실화, 저가 낙찰의 금지 등의 도급 공사비의 적정화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공공 발주, 적정 공사비 보장 논의 ‘희망’ 
대한건설협회도 올해 적정공사비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이를 위해 대한건설협회 유주현 회장은 입찰 제도 개선을 위해 국회, 정부 등 다양한 발주처를 대상으로 지속적인 설득에 집중하다고  밝혔다. 

유 회장은 “원가에도 못미치는 공사비는 공공시설물의 안전사고를 유발시킬 뿐 아니라 품질 저하도 불러와 국민에게 피해를 끼친다”며 “건설업계 경영악화는 하도급업체, 자재장비업체, 건설 노동자 등에게 연쇄적인 영향을 미쳐 경제에도 악영향을 준다”고 지적했다.

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공공공사만 수주해 온 중소건설업체의 영업이익률이 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산재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공공 발주과정에서 공사비 삭감이 광범위하게 이뤄져 원가에 못미치는 공사비가 책정된 탓이다.

대한건설협회 관계자는 “가격 경쟁으로 촉발된 예산 절감은 건축물 품질저하, 유지보수 비용 증가 등으로 이어져 장기적 관점에서 예산 낭비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한편 최근 지방정부 등을 중심으로 공사비 적정화가 논의되고 있다. 그럼에도 발주 관련 제도 개선 등 구체적인 방안이 없이는 ‘공염불’에 그칠 것이란 지적도 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