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와 실수요
투기와 실수요
  • 이경운 기자
  • 승인 2017.12.22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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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리뷰

새 정부의 야심찬 부동산대책이 쏟아졌다. 서민의 주거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주거복지 로드맵을 발표하고, 가계의 재무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주택담보대출을 옥좼다.

투기세력을 근절하기 위해 투기과열지구와 분양가상한제를 부활시켰으며, 다주택자를 압박하는 카드로 양도소득세 강화, 대출규제, 임대주택 등록 활성화 등 강력한 시그널을 보냈다.

이러한 부동산정책은 ‘방향성이 좋다’로 귀결된다. 신혼희망타운과 청년주택 등 의지를 담은 참신한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투기를 누르고 민간임대를 제도권에 아우르겠다는 계획도 야심차다.

격무에 시달린 국토교통부 공무원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야심찬 발표’로 논란을 야기한 장관은 빼고 말이다. 장관은 ‘주거복지’만 언급하면 충분할 것을 ‘주거사다리’라는 원대한 의미로 설명했다. 후분양제를 공헌해 일을 크게 만든 점도 질책할 만하다.

주거사다리는 임대에서 내 집으로 가는 과정. 사다리를 타고 오르듯, 각자 알아서 가는 길을 ‘주거복지’를 통해 가는 것처럼 포장한 것이다. 완제품을 파는 후분양제는 몰라서 못하는가. 1천 가구도 안 되는 사업장에서 발생할 금융비용만 1천억원이 넘는다. 민간이 감당할 수준이 아니다.

각설하고. 부동산대책은 서민에게 맞춰져 있다. 한정된 재원으로 주거취약계층을 돕는 의미, 백번 공감한다.

그러나 아쉬운 부분이 있다. 주거취약계층을 넘어선 내 집 마련 계층들의 이야기다. 이사를 가고 싶지만 자금이 부족한 이들도 여기에 속한다.

그들은 스스로 주거사다리를 올라갈 힘이 있어 대책을 기대하지 않는다. 투기세력이 아닌 실수요자들. 정부의 부동산대책이 이들의 주거사다리를 끊었다. 대출을 막아 이사도 내 집 마련도 못한다.

정부도 신혼희망타운의 기준인 맞벌이부부 소득기준 상향을 고민하고 있다. 마찬가지의 의미로, 보다 폭넓은 방안이 필요하다.

상환능력을 갖춘 무주택자, 일시적 2주택자 등 실수요자에게는 대출길을 열어줘야 한다. 투기와 실수요를 명백히 구분하길 바란다. 투기를 잡겠다고 거래를 고사시킬 참인가.

도시재생사업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최근 전국 68곳의 시범사업 대상지역을 발표하며 “부동산가격 급등, 투기발생 등의 문제가 있으면 사업을 연기·중단하겠다.”고 밝혔다. 투기를 잡겠다고 도시재생이라는 본질이 호도된 모양새다.

한 TV프로그램에서 유시민 작가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인류 역사상 젠트리피케이션(둥지 내몰림)을 막는 방법은 없었다.”

시장은 움직인다. 막고 누르고 지지고 볶는다고 능사가 아니다. 시장에서 가격폭락과 거래 급감 등 위험신호가 나오기 전 핀셋조정이 필요하다. 2018년에도 매달 부동산정책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조정과 여지를 담은 혜안을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