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재난상황실의 불은 꺼지지 않는다
[기고]재난상황실의 불은 꺼지지 않는다
  • 국토일보
  • 승인 2009.10.12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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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철 소방방재청 재난상황실장

금년 여름을 보내면서 2년 연속 태풍 피해 없는 비교적 조용한 여름을 보낸 것 같아 내심 하늘에 대한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왜 그러하고 싶지 않겠는가? 아침에 자고나면 TV 뉴스에서 처음 마주하는 각종 사건사고는 그저 일상적인 소식들이 되어버렸다.

특히나 재난업무와 밀접하게 관련된 공무원, 전문가 등은 말 할 것조차 없다. 재난을 예방하고 신속히 대응하기 위해 하루하루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지만 혹여 또 어떤 소식이 전해질지? 노심초사하며 긴장된 생활을 하고 있다.

심지어 가족들까지 똑같은 처지인 경우도 많다. 한번은 아내가 화장실에 있는 나에게 노크를 하며 다급한 목소리로 불렀다. 방송자막에 00지역에 강풍이 불어 사람이 실종되고 지붕이 날아갔다는 것이다. 재난소식을 전해주는 아내가 고맙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이제 아내까지 이렇게 변했구나 하는 생각에 미안한 생각도 든다.

금년 여름에는 우리나라 남부 일부지역에 큰 비가 와서 어려움이 있기도 했지만 이정도로 끝난 것은 참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끔직한 자연재해가 한반도 주변에서 너무나 많았다. 지난 8월 태풍 “모라꼿”은 조용한 섬나라 대만을 강타하며 7백여명의 귀중한 목숨을 앗아갔고 수십만명의 생활터전을 물바다로 만들었다. 태풍기간동안 최대풍속 40㎧의 강풍을 동반하며 3,000㎜의 폭우가 쏟아졌다. 일부지역은 하루에 1,403㎜가 내려 일년 동안 내릴 비의 절반가량이 하루만에 쏟아진 곳도 있다.(연평균 강우량은 대만이 2,500㎜, 우리나라는 1400㎜ 정도)

참으로 기가 막힐 정도의 강수량이라, 하천변 6층 호텔이 그대로 붕괴되면서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TV 뉴스영상을 보면서 국민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우리나라도 이러한 대형태풍에서 예외라고 할 순 없다. 지난 2002년 8월 태풍 ‘루사’때 강릉지역에 하루 강수량 870㎜를 기록하였으며 전국 피해가 5조원을 넘긴 적이 있다. 만약 태풍 ‘모라꼿’이 우리나라로 방향을 틀었다면? 가능성이 희박하고 너무 끔찍한 상상이라 함부로 예상하기가 쉽지 않지만 우리나라의 배수시설 구조로서는 꼼짝없이 당하는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무한정 배수시설을 키울 수도 없지만 인구 밀집비율이 높은 수도권지역 등을 비롯한 도시지역은 방재기준을 재설정해야 할 시기가 아닌가 싶다. 최근 들어 부쩍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기후변화에 대응한 재난관리를 앞당겨 준비해야 한다.

또한 지난 9월 제16호 태풍 ‘켓사나’는 필리핀, 베트남, 캄보디아까지 초토화 시키면서 5백여명의 사상자와 수 백만명의 이재민을 발생시켰다. 9월 30일 남태평양 환상의 섬 ‘사모아’에 지진해일로 2백여명 가까이 사망자를 냈고 우리 교민도 목숨을 잃었다. 같은 날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지진으로 천여명 이상이 사망했다고 한다. 일부언론에서는 수천명이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이곳은 2004년 지진해일로 인해 28만 여명의 사망자를 낸 지역이기도 하다.

매일 쏟아지는 지구촌 재난소식에 가슴 아프기 그지없다. 우리나라는 여름철 태풍이 비켜갔지만 우리에게 던진 메시지는 강했다. 분명 우리도 안전할 수 없다는 것이다. 2002년 태풍 ‘루사’, 2003년 태풍 ‘매미’를 결코 잊지 말고 최근 주변국들에 몰아치는 태풍·지진을 남의 일로 여겨서는 안 된다. 타산지석으로 삼아 기준을 강화하고, 방재 인프라 보강을 위한 재정 투자를 크게 늘려야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내일 아침에는 또 어떤 소식을 접할지 두렵다. 이번 추석명절에도 고향에 계신 구순이 넘은 어머니를 찾아뵙지 못해 죄송하지만, 국민의 안전을 위해 일한다는 자부심으로 오늘도 24시간 재난상황실의 불은 꺼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