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큰빗이끼벌레 이력서
[전문가 기고] 큰빗이끼벌레 이력서
  • 선병규 기자
  • 승인 2017.06.26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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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태계조사평가협회 부회장 성낙필

[전문가 기고] (사)생태계조사평가협회 부회장 성낙필  

큰빗이끼벌레 이력서

이름 : 큰빗이끼벌레(Pectinatella magnifica)
주소 : 4대강 및 그 지류, 주요 댐
원적 : 필라델피아, 미시시피강, 함부르크등
분포 : 전세계
경력 : 한국으로 어떻게 들어왔는지는 잘모름, 1994년~1995년 처음 발견됨, 4대강 사업이 준공된 2014년 이후 국내 언론에 대서특필 되면서 유명해짐

 

자기소개서

우선 최근까지 지속되고 있는 타는듯 한 가뭄으로 인해 고통을 받고 계시는 모든 대한민국 국민들과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이 땅을 고향삼아 살아오고 있는 모든 생명체들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더욱이 한때 제가 행복하게 살아오던 4대강에는 물이 넘치도록 많던데 왜 그 물들이 해갈에 도움을 주지 못하는가에 대해서는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참고로 저는 비가 많이 올 경우 저의 식구들과 어울려 살기 어려운 원시적인 생명체에 불과하지만 저도 이 땅에 공생하며 살아가는 생명체의 일원으로서 진심으로 가뭄이 하루라도 빨리 해갈되길 기원해 봅니다.

저는 사람들이 말하기로 약 1억 3,600만~1억 9,000만 년 전(쥐라기)에 지구상에 태어나 오늘날까지 살아가고 있는 원시적인 동물입니다.

요즘 사람들이 저를 처음 발견한 것은 1800년대라고 합니다. 주로 북아메리카나 유럽쪽에 살던 제가 한국(이하 우리나라)에 어떻게 들어오게 되었는지는 저도 잘 모릅니다.

하지만 민물에만 사는 제가 그 먼 거리를 스스로 왔을리는 전혀 없구요, 아마도 해외에 살던 물고기들에 붙어 있다가 사람들이 그 물고기들을 우리나라로 들여올 때 어쩔 수 없이 따라 들어온 게 아닐까 합니다.  

그렇게 정말 하찮던 제가 갑자기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된 것은 1994~1995년 사이의 갈수기 중에 소양호, 팔당호, 대청호, 안동호, 주암호, 동진강 하류, 영산강 하류 등 4대강의 인공호수와 저수지와 같은 정체수역에서 발견되기 시작하면서 부터입니다.

하지만 제가 유명인사가된 것은 4대강 사업에 따른 공사가 준공된 이후인 2014년 봄부터 여러 언론매체를 통해 ‘괴생물체’,‘4대강 외래종 급증’, ‘충격, 자연이 보내는 경고’ 등으로 회자되면서 부터입니다.

그 후로 저는 1억 3천만년이 넘는 삶의 과정에서 가장 모질고 힘든 시기를 맞이했습니다.

비록 원시적 생물이라고들 하지만 저의 명예는 땅에 떨어졌고 저의 동족들은 마치 병원균을 옮기는 숙주 쓰레기 취급을 당하면서 물밖으로 건져져 내팽개쳐지고 온갖 모욕과 멸시에 이어져 강제적 몰살에 무방비상태가 됐습니다.

제 삶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저 혼자(개충-Zooid)의 크기는 원래 1㎜로 아주 작습니다.

하지만 유동이 있는 물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수많은 개충들이 젤라틴 형질의 분비물을 분비해서 결합해 여러분이 보시는 것처럼 큰 구형의 군체를 만드는 거랍니다.

하지만 그 군체도 물의 유동이 세면 떠내려가거나 유실되기 때문에 수초나 고사목, 돌, 폐타이어, 밧줄등 물속의 여러 기질에 달라붙는 겁니다.

제 군체의 모양이 좀 못나고 크며 냄새도 심해서 오해들 하시지만 저희들 군체의 약 99%는 물이고 0.3%만이 유기물입니다.

저는 원시생물로 살아남기 위한 여러방법을 사용하는데 특히 적합하지 않은 환경 즉, 위기에 처할 때 저는 무성생식을 통해 형성된 식물의 씨앗과 같은 형태의 휴지아(Statoblast)를 방출합니다.

휴지아의 몸에는 갈고리 모양의 가시들이 있는데 물의 유동에 몸을 맡겨 떠돌다가 그 갈고리모양의 가시를 이용해 물고기나 새의 몸체에 붙어서 멀리 이동하거나 수변의 각종 기질체에 달라붙어 다시 군체를 형성할 수 있는 조건을 기다린답니다.

즉, 여러분이 저희 군체를 물밖으로 건져올리거나 충격을 가하거나 하면 저의 휴지아가 순간적으로 물속으로 분산됩니다.

물론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수온이 약 10℃이하가 되면 역시 휴지아 상태로 겨울을 이겨냅니다.

제가 좋아하는 먹이는 박테리아, 담수조류(algae), 규조류, 편모조류 등이고 지렁이, 깔따구, 달팽이, 어류 등에게는 먹이의 역할을 하며 다양한 물속생물의 서식처 역할을 하면서 나름 담수군집내 먹이망(food-web)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합니다.

하지만 제가 살 수 있는 조건도 까다로워서 물의 흐름이 거의 없는 정수환경(저수지, 댐), 유수역에서는 수변에 기질이 풍부한 정수환경이며 제 먹이원인 각종 조류(algae)가 풍부하면 더욱 좋습니다.

저를 싫어하시는 여러분, 저는 억울합니다. 제가 한국에 오고 싶어 온 것도 아니구 4대강에 살고 싶어 산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전 한국에 와서도 일부 댐이나 저수지 등에서 소리 없이 잘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어느해 부터인가 4대강 전체가 제 삶의 터전과 같이 변해버린 겁니다.

특히 제가 가장 좋아하는 녹조라떼도 공짜로 대량 공급되기 시작했으니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제가 4대강을 이렇게 만든게 아니라 4대강을 이렇게 만든 여러분들이 제 삶의 터전을 너무도 크고 우아하게 만들어준 것 뿐입니다.  저는 억울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저도 불만이 많이 생겼습니다.

통제가 안되는 제게 먹이를 너무도 많이 주셔서 요즘 제가 숨쉬기가 곤란합니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지천으로 이동중입니다. 저도 이제 힘들어 못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한가지 소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도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저를 더이상 천덕꾸러기로 만들지 마시고 제가 살수 없는 4대강, 또 그 지천으로 만들어 주세요.

그러면 얼마든지 저는 떠날 겁니다. 그리운 고향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