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하게 사는 생활법률 상식] <77> 근로자의 자살이 업무상 재해로 인정되는 요건
[똑똑하게 사는 생활법률 상식] <77> 근로자의 자살이 업무상 재해로 인정되는 요건
  • 국토일보
  • 승인 2017.06.26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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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신호 변호사 / I&D법률사무소

 

똑똑하게 사는 생활법률 상식

결혼, 부동산 거래, 금전 대차 등 우리의 일상생활은 모두 법률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고 법을 잘 모르면 살아가면서 손해를 보기 쉽습니다. 이에 本報는 알아두면 많은 도움이 되는 법률상식들을 담은 ‘똑똑하게 사는 생활법률 상식’ 코너를 신설, 게재합니다.
칼럼니스트 박신호 변호사는 아이앤디법률사무소의 대표변호사이자 가사법 전문변호사로 상속, 이혼, 부동산 등 다양한 생활법률문제에 대한 전문가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박신호 변호사 / I&D법률사무소 / legallife@naver.com

■ 근로자의 자살이 업무상 재해로 인정되는 요건

근로자 자살, 업무와 상당인과관계 인정되면 ‘업무상 재해’
업무내용․유서내용․자살과정 등 종합, 상당인과관계 ‘판단’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10년 넘게 OECD회원국 중 1위라는 통계가 있다. 이러한 통계의 신빙성에 대한 논란도 존재하지만, 어쨌든 우리나라가 자살률이 매우 높은 국가인 것은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수치의 정확성과 함께 그 원인에 대해서도 논란이 분분하다. 혹자는 무한경쟁 사회구조 하에서의 극심한 스트레스와 경제양극화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을 원인으로 언급하기도 하고, 혹자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정신과 치료를 기피하고 우울증 치료를 잘 받지 않기 때문이라고 진단하기도 한다.

우리나라 다음으로 자살률이 높은 헝가리의 날씨가 햇빛이 많이 들지 않고 습하고 우중충한 날이 많다는 것을 참고해 눈부신 햇살을 막는 미세먼지가 자살률에 영향을 준다는 사람도 있고, 툭하면 풀리지 않은 형사사건이 자살 처리되고 종결되는 것 때문에 자살률이 높아진다는 사람도 있으며, 우리나라가 치안이 안정돼 있다보니 테러 등이 거의 없고 따라서 타살률이 낮아서 자살률이 높아진다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자살과 관련해 법적으로는, 근로자가 업무상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자살을 하는 경우에, 이것이 업무상 재해로 인정될 수 있는가하는 논점이 있다.

대법원은 근로자의 자살이 업무상 재해로 인정되는 요건에 대해서,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37조 제1항에서 말하는 ‘업무상의 재해’란 업무수행 중 그 업무에 기인하여 발생한 근로자의 부상․질병․신체장애 또는 사망을 뜻하는 것이므로 업무와 재해발생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 그 인과관계는 이를 주장하는 측에서 증명하여야 하지만, 반드시 의학적 ‧ 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며 규범적 관점에서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는 경우에는 그 증명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근로자가 극심한 업무상의 스트레스와 그로 인한 정신적인 고통으로 우울증세가 악화되어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선택능력, 정신적 억제력이 현저히 저하되어 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에 처하여 자살에 이르게 된 것으로 추단할 수 있는 경우라면 망인의 업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될 수 있고, 비록 그 과정에서 망인의 내성적인 성격 등 개인적인 취약성이 자살을 결의하게 된 데에 영향을 미쳤다거나 자살 직전에 환각, 망상, 와해된 언행 등의 정신병적 증상에 이르지 않았다고 하여 달리 볼 것은 아니다(대법원 2014. 10. 30. 선고 2011두14692 판결, 대법원 2015. 1. 15. 선고 2013두23461 판결 등).”라고 판시하고 있다.

구체적인 사례를 보면, A는 B은행에 은행원으로 입사한 지 20여년만인 2013. 1. 17.에 C지점장으로 부임해 이 지점의 여․수신 영업, 고객 관리 등을 총괄하는 업무를 수행하게 됐는데, B은행에서는 2013. 2.경부터 몇 차례 여신 실적 등이 부진한 지점에 대하여 대책수립을 보고하도록 지시했고, C지점도 그 대상에 포함돼 있었다. 그런데 당시 C지점의 전체 대출금 중 약 8.5%를 차지하던 주요 거래처인 D교회 측에서 대출금리 인하를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었다.

A는 2013. 5. 27. E정신과의원에 내원해 ‘정신병적 증상이 없는 중증의 우울병 에피소드, 비기질성 불면증’ 진단을 받았는데, 당시 의무기록에는 “매일 아침 일어나는 것 자체가 고통이다. 업무적인 스트레스가 많았다. 죽고 싶은 마음은 항상 있다. 집에서 목도 매 봤다(보름 전?)”는 등의 A의 진술 내용이 적혀 있었다.

A는 2013. 6. 13. 출근을 했으나, 업무에 집중하지 못하고 불안해 하다가 11:10경 점심약속이 있다면서 회사를 나가서는 13:50경 자신의 배우자에게 전화를 하여 “나 지금 원두막에서 약 먹어서 죽는다. 곧 갈 거다.”라고 말하였고, 결국 14:20경 서울 서초구에 있는 한 텃밭 원두막에서 농약을 마시고 목을 매어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

A는 2장의 유서를 남겼는데, 자살 현장에서 발견된 유서는 주로 가족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적혀 있었고, 집에서 발견된 유서에서는 “아들들아, 너희는 커서 절대로 영업현장에서 근무하지 마라. 아빠의 성격상, 그리고 너희들도 아빠의 성격을 닮아서 아빠의 전철을 밟을 수 있으니 절대 영업사원은 되지 마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러한 사실관계 하에서, 유족들은 근로복지공단에 산재사고에 의한 유족급여 및 장의비를 청구했으나 근로복지공단은 A의 자살이 업무상 재해로 볼 수 없다며 이를 거부하자 유족들이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 취소청구를 했는데, 이에 대해 서울고등법원은 망인의 업무와 사망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기에 부족하다며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으나, 대법원은 “이러한 우울증 발현 및 발전 경위에 망인의 유서내용, 자살 과정 등 제반사정을 종합하여 보면, 망인은 우울증으로 인하여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선택능력, 정신적 억제력이 현저히 저하되어 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에 처하여 자살에 이르게 된 것으로 추단되므로, 망인의 업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라고 판시하며 원심판결을 파기했다(대법원 2017. 5. 31. 선고 2016두58840 판결).

이와 같이 대법원은 근로자의 자살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는데 관대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은 되도록 없어야 하겠지만 만약 근로자가 업무 스트레스로 인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우에 산재처리가 되지 않은 경우에는 유족들은 소송을 걸어서 법원의 판단을 받아보는 것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