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 한잔의 여유] 매화 (梅花)
[茶 한잔의 여유] 매화 (梅花)
  • 국토일보
  • 승인 2017.04.17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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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연 태 (주)모두그룹 대표이사 / 前 한국건설감리협회 회장

매화 (梅花)

 
매화, 그 이름만 들어도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잔잔한 떨림이 울려온다. 매화는 다른 꽃들이 피기 전에 맨 먼저 피어난다. 눈서리를 두려워하지 않고 언 땅위에서 가장 먼저 꽃을 피우다 보니 화형(花兄)이요, 눈서리 속에서 피다 보니 세한(歲寒)의 군자요, 늙은 매화 등걸에 이끼가 피고 세월의 껍질이 생기는 것을 통해 ‘매화는 늙을수록 품격이 높아진다’고 하여 고매(古梅)라 하며, 눈이 내릴 때 핀다고 해 설중매(雪中梅)라고도 부른다.

흔히 난초의 향기를 유향(幽香), 모란의 향기를 이향(異香), 매화의 향기를 암향(暗香)이라 부르는데, 문인들은 매화 향기를 코로 맡는 것이 아니고 귀로 듣는다며 차마 취향(臭香)이라고 부르지 못하고 문향(聞香)이라고 하였는데 그들이 즐겨 감상하던 매화는 뜰 안 오래 묵은 등거리에 핀 몇 송이 매화꽃이었고, 때론 분재로 가꾸어 매화를 가까이 두고 밤에 촛불에 비쳐지는 그림자도 즐겨 감상했다고 한다.

색깔이 황색이고 매화와 닮았다 해서 황매화라 불리는 다른 꽃이 있지만 매화는 통상 홍매화와 백매화로 나뉘며 때론 가지에 접을 붙여 두 색깔이 동시에 피게도 한다. 백매화중 아무 티도 없이 백옥같이 흰 순백의 매화를 옥매(玉梅)라 부르는데, 옥천 이원에 있는 역사 깊고 시인 묵객들이 많이 찾는 국내 최고의 매화농장인 ‘옥매원’도 그런 뜻이란다.

매화는 추위 속에 꽃을 피워 청고(淸高)하고 창연한 고전미가 있어 가장 동양적이며 선비정신을 상징한다하여 시나 그림의 소재로 삼았다. 숫자를 통해볼 때 그 하나는 일지매(一枝梅)요, 둘은 대나무와 매화로 이아(二雅)라 하며, 셋은 매화 대나무 소나무로 세한삼우(三友)요, 넷은 매 난 국 죽으로 사군자라고 하며, 다섯은 대나무 난초 국화 매화 연꽃으로 오우(五友)라고 불리며 우리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

매화는 통상 한사(寒士)와 향기(香氣), 순결(純潔)한 미녀의 청초한 자태를 상징해 차가운 눈 속의 매화를 찾게 된다.

‘어미는 어려서 되어 설움에 울고
매화는 눈 속에 피어 추위에 떠네.’

어린 여종의 몸에서 낳은 일지매는 나중에 비적이 되어 비적질을 마치고는 금으로 만든 매화꽃 한 가지를 남겨 두었다고 하는데 여종인 어미가 일지매를 생각하며 서러움에 겨워 적은 이 시를 통해보아도 서러움의 꽃으로 보인다.

‘원림(園林)에는 봄눈이 내렸는데
꽃은 아름답게 한꺼번에 피어나네
눈인지 꽃인지 분간을 못하겠더니
향기로 매화가 피었는지 알았네.’(손조서: 春雪)

‘섣달 눈 하늘 가득 내리는데
차가운 매화가 방싯 꽃을 피웠네
눈송이 또 송이송이
매화에 날아드니 꽃인지 눈인지 모르겠구나.’(보우스님: 雪中軒)

‘마음엔 섣달 눈이 아직 녹지 않았으니
누가 즐겨 사립문을 두드릴까
밤에 갑자기 맑은 향기 움직이니
매화나무 몇 가지에 꽃 핀 듯하구나.’(유방선: 雪後)

‘금교엔 눈이 쌓이고 얼음도 풀리지 않아
계림에 봄빛은 아직도 찾아오지 않았는데
영리한 봄의 신은 재주도 많아
모례(毛禮)의 집 매화에 먼저 꽃을 피웠네.’(삼국유사: 중 일연)

‘지금 눈 내리고
매화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이육사: 광야에서)

‘옥 같은 살결엔 아직 맑은 향기 있어
약을 훔쳤던 달 속의 미녀 항아의 전신인가’(이규보: 동국이상국집)

‘어여쁜 온갖 꽃 모두 보았고
안개 속 꽃다운 풀 모두 밟아보았네
그래도 매화는 찾은 수가 없는데
땅에는 눈보라만 가득하니 이를 어쩌랴’(한용운: 매화)

매화를 깊이 있게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니 화선(畵仙)으로 추앙받는 단원 김홍도의 매화음(梅畵飮)은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때로 끼니를 걸러야 할 만큼 가난했던 그가 어느 날 그림 값으로 3천 냥을 받았는데 2천 냥으로 매화를 사고 팔백 냥으로 술을 여러 말 사다가 친구들을 불러 그 매화를 감상하며 술을 마셨고, 나머지 2백 냥으로 쌀과 나무를 사서 집에 들였으나 겨우 하루 지낼 것밖에 안 되었다니 그의 고결한 인품이라 할까….

중국 송나라의 임포(林逋)가 매화를 너무나 좋아해 세상에 나가지 않고 은둔 생활을 하며 매처학자(梅妻鶴子)라 하여 오직 매화와 학을 기르며 매화를 아내로 학을 자식으로 살았다 하며, 조선시대엔 퇴계가 매화를 가장 좋아해 그가 죽을 때 마지막으로 한 말이 ‘매화에 물을 주어라.’라고 했으니 그의 매화사랑이 가슴 속 깊이 전율로 느껴진다. 생전에 90여 수의 매화에 대한 시를 매화시첩(梅花詩帖)으로 편집돼 지금도 도산서원에 전시돼 있다.

그는 ‘매한불매향(梅寒不買香): 매화는 춥더라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라고 했다.

‘천연한 옥색은 세속의 어두움 뛰어 넘고
고고한 기질은 뭇 꽃의 소란스러움에 끼어들지 않네.’(퇴계 이황: 湖堂梅花)

이제 이 매화가 지고 있다.
‘매화 꽃피어 온 산 가득한데/ 은자(隱者)는 빈 술잔 쥐고 웃음지네/ 술을 살 돈이 없는 거야 괜찮지만/ 다만 매화꽃 오래 가지 못할까 두렵구나.’라던 어느 문인이 두려워했던 대로 어느새 매화가 꽃잎을 접고 있다.

이제 내년에나 다시 볼 매화를 기다리며 또 나의 한 해를 보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