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 한잔의 여유] 난향천리(蘭香千里)
[茶 한잔의 여유] 난향천리(蘭香千里)
  • 국토일보
  • 승인 2017.04.03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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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연 태 (주)모두그룹 대표이사 / 前 한국건설감리협회 회장

난향천리(蘭香千里)

 
그 향기가 천리를 간다하여 ‘난향천리’라고 하는 난초의 향기가 바람을 타고 멀리 퍼지 는 것을 이백(二伯)은 그의 난초시(詩)에서 향풍(香風)이라고 했다. 난향은 강하거나 요염하지 않고 조용하며 부드러워 때론 난초 꽃 옆에서도 손바닥으로 자신의 코 쪽으로 바람을 일으켜야 향기를 느낄 때도 있다.

문일평은 ‘화하만필’에서 ‘난초의 향기는 유원(幽遠)하다.’며 난초에서 풍기는 향기로운 바람이 일면 십 리 안의 모든 초목들이 무안한 빛을 띠게 된다고 했고, 중국에선 향초(香草), 수향(水香), 연미향 (燕尾香), 국향(國香), 향조(香祖), 제일향 (第一香), 왕자향(王子香) 등으로 부르며 난초의 향기를 제일로 치고 있다.
 
난초는 군자의 충성심과 절개를 뜻하기도 하는데 중국 전국시대에 자기가 모시던 암군(暗君)과 대립하여 멱라수에 몸을 던진 비극의 시인 굴원은 ‘초사’에서

“나는 이미 난(蘭)을 구완에 기르고
추란(秋蘭)을 꿰어서 노리개 만들려고
꽃과 잎이 무성해지기를 기다렸으나
꽃향기 잡초에 덮여져 슬퍼라.”
했고,
 
이 시의 2구를 보고 충신 성삼문은
“대부(굴원)는 난초 수(繡)놓인 띠를 차고 있네.
난초 하나가 열 가지 향기와 맘먹으니
그래서 다시보고 사랑하리라.”
했으며
 
이백(二伯)은
“꽃이 되려거든 난초가 되고,
나무가 되려거든 솔이 되려무나
난초는 그윽하여 향풍(香風)이 멀리가고,
솔은 추워도 그 모습 아니 바꾸네.”
라 했다.
 
이식은 사우정집에,
“인간 세속에 물드는 걸 부끄럽게 여겨
바위 골짜기 물가에서 살고 있네
교태와 아양 떨 줄 모르지만
그윽한 향기 지녀 덕인을 닮았네.”
라고 했고, 

근대의 가람 이병기(李秉岐, 1891 -1968)선생은
“빼어난 가는 잎은 굳은 듯 보드랍고
자주 빛 굵은 대공 하얀 꽃 매달고
이슬은 구슬이 되어 마디마다 달렸네
본디 그 마음은 깨끗함을 즐겨하고
깨끗한 모래 틈에 뿌리를 서려
미진도 가까이 않고 우로(雨露)받아 사네.”
라는 난초(蘭草)시를 쓰고, ‘고서 몇 권과 술 한 병, 그리고 난초 두서너 분이면 삼공이 부럽지 않다.’고 했으니 가히 난을 아는 선비의 마음이라 하겠다.
 
공자가어(孔子家語)에서는 “지초와 난초는 깊은 산속에 자라며 사람이 찾아오지 않는다고 향기를 풍기지 않는 일이 없고, 군자는 도를 닦고 덕을 세우는데 곤궁함을 이유로 절개나 지조를 바꾸는 일이 없다.”고 하여 군자나 선비에 비유하고 있다.
 
난초는 매화, 국화, 대나무와 함께 사군자로 칭해지는데 우리나라에서의 사군자그림은 조선 후기에 남종문인화가 유행하면서 본격적으로 그려져 선조의 묵란, 이징의 묵란, 조희용의 석란도, 이하응의 묵란, 민영익의 묵란 등 주옥 같은 작품이 많다. 그들의 그림들을 유심히 보면 시대적 배경 이나 개인의 성품까지 잘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추사체와 세한도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추사 김정희는 묵란을 잘 그렸는데, 그는 ‘부작난도(不作蘭圖)’라는 그림을 그린 후 스스로 신품(神品)이라고 평하고,

“난초를 안 그린 지 스무 해
우연히 그려진 건 천성 때문인가
문을 닫고 깊이깊이 찾아 갔더니
여기가 바로 유마의 불이선일세.”
라는 제화시를 적어 두었다.
 
원래 더운 지방에서 사는 식물이라서인지 강세황은 우리나라에 본래 난초가 없었 으니 일찍이 그린 이가 없다고 하였는데, 자연 상태에서의 난초 서식처를 생각해 보면 우리의 서해바다와 가까운 중국의 동쪽인 저장성 주변에서 씨가 바람에 날려 우리나라의 남서해안과 일본에 전해된 것으로 보인다.
 
난초는 ‘난초지초’의 우정으로도 표현되듯 중국에서는 아주 친한 친구나 의형제를 맺게 되면 표지에 금색의 난초그림과 금난보(金蘭譜)라는 글씨가 쓰인 수첩 (장부)에 자신의 이름, 가계도, 생년월일, 출신지 등을 적어 ‘대해가 마를지라도 우리의 우정은 변치 않는다.’는 맹세와 함께 교환하는 것인데, 여기서의 금난(金蘭)이란 말은 역경(易經)에 ‘두 사람이 마음이 같으면 쇠도 끊을 수 있고, 같은 마음을 갖은 사람의 말은 그 향기가 난초와 같다.(同心之言 其取如蘭)’하여 평생 변하지 않는 두터운 우정을 뜻한다.
 
승진이나 영전을 했을 때 난초를 선물하는 이유는 ‘벽사진경(사악함을 물리고 경사 스러움을 불러들임)’과 절개, 고고함을 뜻하여 새로 승진한 자리에 혹시 찾아올지 모르는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고 고고함을 지키며 주위에까지 덕화(德化)시키기 바란다는 뜻이란다.
 
무릇 난초의 향기가 천리를 간다고 하지만, 오히려 인성이 깊어 따뜻한 마음을 갖은 사람의 향기는 만리를 간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