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 한잔의 여유] 빨리 빨리
[茶 한잔의 여유] 빨리 빨리
  • 국토일보
  • 승인 2017.02.20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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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연 태 (주)모두그룹 대표이사 / 前 한국건설감리협회 회장

빨리 빨리

 
우리나라 사람들의 빨리빨리 정신은 아주 유별나다. ‘더 높이, 더 멀리, 더 빠르게’를 목표로 하는 스포츠에서 기록을 세우기 위해 급히 서두르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의 조급함이 생활전체를 좌우하고 있다.
 
늘 그렇지만 시간은 빨리빨리 서둘러야 될 때가 있고 기다려야 할 때가 있다. 한 여름, 10여 년을 기다리다 세상에 나와 불과 1주일을 살다가 죽는다는 매미나, 모를 내기 위해 논에 물을 대면 땅속에서 기다리던 개구리들이 일제히 밖에 나와 짝을 찾기 위해 아귀악신 같은 목소리로 짝을 부른다. 죽기 전에, 물이 마르기 전에 알을 낳아 부화시켜야 새끼가 태어나기 때문이다.
 
식물의 세계도 마찬가지라 한여름만 빼고는 연중 눈에 덮이어 있는 백두산 천지 주변에도 날씨가 풀리기를 바라며 땅 속에서 기다리다 조건이 맞으면 온갖 식물이 동시에 꽃을 피워내 종족번식을 한다. 그들은 분명 빨리빨리 서둘러야 할 것이다.
 
종족번식을 떠나 당장 자신의 목숨이 달린 상황에서 빨리빨리가 요구되기도 한다. 아프리카 가젤은 사자보다 늦게 달리면 잡아먹히고, 사자는 가젤보다 빨리 달리지 못하면 굶어죽는다. 가젤이건 사자건 아침에 눈을 뜨면서 전력 질주를 해야 한다. 엘지전자 최고경영자를 지낸 김쌍수 전 한전 사장이 평소 즐겨 쓰는 ‘가젤과 사자론’ 이다.
 
가만 보면 우리 민족은 전통적으로 ‘빨리빨리’를 기본으로 얇은 양은냄비처럼 확 데워졌다가 바로 식는 ‘냄비근성’을 지니고 있다. 당연히 나 또한 지금껏 살아오면서 급한 마음에 앞만 보고 돌격하는 마음으로 살아 왔다. 항상 시간에 쫓기어 차마 뒤를 돌아볼 엄두마저 갖지 못했다. 식사를 하면서도 음식의 맛을 느끼며 여유 있게 먹지 못하고 대충 씹어 삼키고 음료수도 맛을 느끼며 천천히 마시지 못하고 그냥 입에 대면 단숨에 들이키고 말았다.
 
얼마나 급하면 택시를 기다리면서 인도에서 기다리지 못하고 차도로 내려서서 손을 흔들며, 자판기 커피를 뽑으면서도 커피가 나올 때 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손을 넣고 기다린다. 또한 전화를 걸어 상대방이 통화 중일 때는 전화를 끊고 기다리면 통화가 끝나고 상대가 전화를 걸어 올 텐데 뭐가 그리 급한지 거푸 전화를 걸어댄다.
 
물론 이런 빨리 빨리 정신이 우리에게 경제적 고도성장을 안겨 주었고, 세계를 휩쓰는 최첨단의 스마트폰시장도 석권했을 것이다. 그러나 오직 빠른 경제성장에만 치중하는 사이 정신적 동반상승은 하지 못해 오늘날 많은 문제를 들어내고 있고, S-7스마트폰 또한 급하게 출시하다 보니 배터리 폭발사고를 일으켜 삼성전자는 천문학적인 손해를 입고 세계시장에서 명성을 잃게 됐다.
 
가만 보면  ‘빨리 빨리’ 란 말은 이상하게도 많은 나라의 말이 두 음절로 돼 있다.

일    본    어  :  라이 라이(來來)  
중    국    어  :  콰이 콰이(快快) 또는 콰일러 콰일러(快了 快了)  
방글라데시 어  :   딸라 딸라
아    랍    어  :  얄라 얄라  
말레이시아  어 :   추파 추파(공용어를 쓰는 인도네시아 쪽에선  치피 치피)  
프  랑  스  어  :  비뜨 비뜨  
필  리  핀  어  :  달리 달리  
한    국    어  : 표준말 - 빨리 빨리
                        충청도 - 얼른 얼른, 후딱 후딱
                        전라도 - 싸게 싸게 
                        경상도 - 퍼뜩 퍼뜩
                        이  북 - 날래 날래

늘 그렇지만 시간은 빨리빨리 서둘러야 할 때와 기다려야 될 때가 있다. 마라톤에서도 각자가 지켜야하는 정해진 속도와 페이스가 있다. 오버페이스를 하면 완주할 수가 없는 것이다. 오랜 경험을 통해 “양반은 비가와도 뛰지 않는다. 급히 먹는 밥이 체한다.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다. 급하다고 실을 바늘허리에 매어 쓸 수는 없다.”라고 우리의 선인들은 말했다.
 
‘지나치게 빨리 서둘러서 어설프고 서투른 것’을 사전은 ‘졸속’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졸속협상, 졸속처리, 졸속발굴, 졸속추진, 졸속가동, 졸속마련, 졸속방역망에 근래엔 졸속탄핵에 졸속심리라는 말이 크게 회자되면서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하고 있다.
 
백만의 민심이라며 국회를 압박해 며칠 만에 탄핵안을 발의하게 하고 임기가 불과 1년 남은 대통령을 지금 즉시 퇴진하라며 촛불시위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정치인들이야 그들의 요구를 거절하면 자신의 표에 영향을 미칠까 두려워하여 순간의 시류에 편승해 탄핵안을 통과시켰겠지만, 국회에서 제출한 탄핵의 옳고 그름에 대해 심사를 하고 있는 법을 다루는 헌재의 법관들에게 까지도 탄핵을 빨리빨리 통과시키라고 촛불을 흔들고 있다.
 
전쟁을 빼고는 우리나라 역사상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었을 것이고, 이번 경우가 차기 집권자에게도 똑 같은 적용이 될 선례가 될게 분명한데 조금 늦으면 어때서, 좀 늦는 게 뭐가 그리 무섭고 두려워서 저리 서둘러 대는지….
 
“4일 촛불집회 참가자들이 헌법재판소 길목인 안국역 네거리까지 행진하며 2월 탄핵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17. 2. 4 뉴스1 © News1 오대일 기자”
 
더 큰 문제는 헌법재판관까지 나서서 빨리빨리 진행을 하겠다고 한다. 심지어 3월 13일까지는 결정을 해야 한다고 날짜까지 박아놓는 재판관이 있던데, 분명한건 ‘빨리빨리’라고 할 것이 아니고 주어진 기한을 충분히 활용해 신중하면서도 정확하게 진행을 하겠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헌법재판소’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