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유의 세상만사]<93> 위대한 국민 여러분?
[안동유의 세상만사]<93> 위대한 국민 여러분?
  • 국토일보
  • 승인 2017.02.20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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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유 / 기계설비건설공제조합

 
안동유의 세상만사

자유기고가이자 시인인 안동유씨(기계설비건설공제조합 前 팀장)의 칼럼을 게재합니다. 안 팀장은 KBS ‘우리말 겨루기’ 126회 우승, ‘생방송 퀴즈가 좋다’ 우승 등 퀴즈 달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MBC 100분 토론에서는 시민논객으로 참여하는 등 지속적인 방송 출연을 통해 또다른 소통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에 本報는 건설산업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안동유 팀장의 ‘안동유의 세상만사’를 통해 작가 특유의 감성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소통의 장을 마련했습니다.


위대한 국민 여러분?

“이대한 국민 예러분!(위대한 국민 여러분!)” 돌아가신 김영삼 대통령을 패러디할 때 잘 쓰였던 말이다. 민주화를 이루기 위해 대통령으로 나를 밀어 주십시오란 읍소다.

IMF사태로 대변되는 정권 말기의 경제실패 때문에 자주 희화화된 그분의 공과가 죽음 뒤에 다시 조망된 것은 다행한 일이고 지나치게 저평가된 면도 좀 있었다. 그런 희화화를 위한 도구로 그의 고향인 경상도의 발음을 이용한 것이다.

어쨌든 그 이후로 정치인들이 연설을 하거나 국회의원 입후보자들이나 대통령 후보들이 유세를 할 때 앞다투어 위대한 국민을 입에 달게 되었다.

그렇다면 그들의 말대로 국민은 진짜로 위대한가? 결론부터 말하면 꽤 부정적이다.

표를 얻어야 할 정치인들의 입장이야 충분히 이해되고 그러기 위해서 대한민국 주권의 주인인 국민에게 잘 보여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표를 쥐고 있는 국민을 기분 나쁘게 할 이유는 없고 오히려 기분좋게 만들어야 하는 선거공학의 필요성은 지극히 현실적 고려사항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 국민전체(all)와 개개의 국민 모두(everybody)를 춤추게 할 수도 있는 충분한 칭찬이다. 하지만 그렇게 ‘위대한 국민’들이 지금까지 해 온 정치적 선택, 결단을 보면 상당히 실망스러운 부분도 많다.

4.19로 분출되기 시작한 우리 국민의 민주화 열망은 현대사의 고비 때마다 강렬한 열망으로 응집되어 변혁의 원동력을 이루어 왔다.

부마사태가 그랬으며 광주 민주항쟁을 거쳐 87년 6월 항쟁은 정점을 찍었다.

의식화 과정이 없어서 4.19세대부터 80년대 민주화의 상징, 386세대(세월의 흐름에 따라 486, 586으로 컴퓨터처럼 업그레이드 됐다.)에게 진지함과 심각성이 없는 철딱서니 세대로 치부되던 X세대, 신세대들의 요즘의 촛불항쟁도 대단한 일이다.

그러나 그런 위대한 일들을 해냈음에도 아쉬움이 상당히 있는 것을 감출 수 없다. 바로 국가 지도자를 뽑는 일에 실패한 것이다.

그렇게 무능하고 부패했다고 비난하고 하야, 탄핵을 촉구하는 박대통령을 뽑은 과정을 보라.

히틀러가 합법적인 과정을 통해 집권을 했듯 박대통령도 합법적인 선거를 통해 대통령이 됐다.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충분한 표를 국민들이 몰아 줬고 훌륭한 지도자로 치켜세웠다.

내용을 들여다 보자. 반대한 사람도 있었지만 다수의 국민이 지지했고 그 중 절대 다수가 맹목적인 지지를 했다. 보수적인 정치 견해를 가져서 합리적으로 자신의 정치철학을 비추어 보고 보수적인 세력의 지도자로 뽑기 위해 투표한 사람은 많지 않다.

절대다수가 대구, 경북이란 지역주의와 누구의 딸이란 이유로 그를 대통령으로 찍었다.

누구…. 바로 박정희다. 보수세력이 훌륭한 지도자로 손꼽는 사람이다. 그가 훌륭한 지도자인지 아닌지는 논란이 많으니 따로 이야기 할 기회가 있으면 논하기로 하자.

백번 양보해 설사 그가 훌륭한 지도자라고 해도 그의 딸이란 이유로 한 나라의 지도자 자리를 맡길 순 없다. 합리성이 전혀 없는 선택이었다. 인격적 덕성이나 자질이 유전된다는 어떤 과학 이론도 들어 본 적이 없다.

기껏해야 같이 생활을 해서 부모의 행실을 보고 배우는 게 있을 정도이다. 그것도 호부(호랑이 아버지)에 견자(강아지)나는 경우도 많아 그리 크게 믿을 바는 못된다.

무릇 한 나라의 지도자는 혹독하고도 정확한 검증을 거쳐 뽑아야 하고 그것은 최종적으로 국민의 역할이다. 아쉽게도 우리 국민은 그러지를 못했다. 그럴 능력이 없는지 의지가 없는지 모르겠다. 그런 비판의식 없는 비합리적 선택이 우리 국민을 고통으로 몰아넣고 있다.

고통은 국민의 몫이고 우리는 지금 그런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것이다.

위대하다고 하기엔 우리 국민의 수준이 아직 많이 부족한 듯하다. 집단 비이성이 판치고 합리적 사고를 못하고 있다. 그것은 진보적 성향을 띤 세력들도 마찬가지다.

촛불 민심은 위대하지만 그 세부적인 실천을 보면 형편없는 유언비어나 억측이 난무한다. 절차를 무시하고 목적만 이루면 된다고 바락바락 발악하듯 악을 쓰면 다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토크빌의 말처럼 어떤 나라든 그 나라 국민의 수준을 넘는 지도자를 가질 수 없다.

그래서 정치적 레토릭에 불과한 말에 만족해서 중우로 전락하면 안 된다. 그러니 정치인들도 이제 정치적 수사는 그만하고 본질로 돌아가자. 국민들도 무책임한 선택을 정확하게 깨닫고 반성해야 한다.

스스로의 수준이 높아지도록 냉철해져야 한다. 그래야 이대한 국민이 위대한 국민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