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유의 세상만사]<92>쓰레기에서 장미꽃이 필 때까지…
[안동유의 세상만사]<92>쓰레기에서 장미꽃이 필 때까지…
  • 국토일보
  • 승인 2017.02.06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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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유 / 기계설비건설공제조합

 
안동유의 세상만사

자유기고가이자 시인인 안동유씨(기계설비건설공제조합 前 팀장)의 칼럼을 게재합니다. 안 팀장은 KBS ‘우리말 겨루기’ 126회 우승, ‘생방송 퀴즈가 좋다’ 우승 등 퀴즈 달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MBC 100분 토론에서는 시민논객으로 참여하는 등 지속적인 방송 출연을 통해 또다른 소통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에 本報는 건설산업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안동유 팀장의 ‘안동유의 세상만사’를 통해 작가 특유의 감성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소통의 장을 마련했습니다.

쓰레기에서 장미꽃이 필 때까지…

돌이켜보면 우리 사회가 민주화한지 꽤 오래 됐다. 해방 직후 우리의 혼란상을 보고 어느 영국 기자는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꽃피우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고 하며 우리의 정치 수준을 비하했다.

정말 치욕적이었지만 마땅히 반박하지 못할 정도로 한국의 현대사는 질곡의 터널을 달려왔다.

이승만 독재부터 잠시의 4.19 혁명 체제를 거쳐 바로 군사독재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겨우 군사독재를 이기고 민간정권이 들어섰지만 그다지 큰 민주화는 이루지 못했다.

이후 진보적인 정권을 통해 많은 자유가 확보되고 명실공히 정치적 민주화를 이루게 되었다.

이제 그 기자에게 한국의 눈부신 민주화 과정을 보라고 통쾌하게 한방 날리고 싶다. 대견하게 자라온 한국의 민주주의를 보면 스스로 뿌듯하기 짝이없다.

하지만 민주화의 수준과 내용을 들여다 보자. 과연 그렇게 떳떳하고 자랑스러운가?

우리의 외형적인 민주주의는 정말 눈부시게 발전했다. 표현의 자유와 의사결정의 자유가 제한되고 인간의 존엄성이 마구 짓밟히던 시절에서 누구도 다른 사람의 자유를 제한하지 못하는 정치적 민주화를 이루었다.

제도에선 많은 민주화를 이루었다고 보인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질은 문화에서 결정되는 것이다.

우리의 생활문화 가운데 과연 그렇게 자랑스럽고 떳떳하게 민주적 생활 방식이 자리 잡았는지 스스로에게 되물어 보면 참 부끄럽기 짝이없다.

미국 초기 개척자들은 종교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으로 온 사람들이 많다. Pilgrim Fathers라 불리는 초기 개척자들이 그런 청교도들이었고 이후로도 여러 종파의 종교집단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으로 이주했다.

그런 그들이 자신들을 종교적으로 박해한 영국의 기존 종교에 대하여 종교적 자유를 외쳤지만 정작 다른 종교에 대하여 관대하지 않았다. 그들이 말한 종교적 자유는 그들만의 종교적 자유였던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그런 것 같다. 남의 의견이나 의사는 완전히 무시하고 나와 다르면 죽여야 할 공적으로 규정하고 핍박한다. 제도적으로 민주화를 보장해도 실질적으로 그런 민주화를 실천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권위주의 정권하에선 독재정권의 인권침해나 언론자유 탄압이 문제가 되었는데 이제는 정부나 제도가 아닌 사회집단이나 정치세력에 의한 보이지 않는 민주주의 침해가 자행되고 있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법에 의한 지배(rule of law)이다. 그것은 적법절차(due process)를 핵심으로 한다. 사사로운 개인 또는 개인의 집단이 자의적으로 힘을 행사하면 그것이 목적이 정당하더라도 부당한 일이 된다.

법관은 판결로 말한다. 법률과 양심에 따라…. 법관의 자유심증주의를 훼손하면 안 된다. 개인적으론 비판이 가능하나 세력을 만들어 단체행동을 하며 법관을 압박하는 건 잘못된 것이다. 수준 낮은 억지가 되기 때문이다.

나와 생각이 달라도 그 생각은 존중돼야 한다.
다른 것이 꼭 틀린 건 아닐 터…. 잘못이 있다면 조목조목 논리적으로 다투어 잘못을 밝혀야 한다. 악의적인 감정으로 비난의 목소릴 높이다 못해 있지도 않은 사실을 날조해서 짓이기는 건 유신 파쇼와 다를 바가 없다.

볼테르는 말했다.
“나는 당신의 말에 반대한다.
하지만 당신이 그 말을 할 자유는 목숨을 걸고 지키겠다.”

최근 이재용의 구속영장 신청을 기각한 판사에 대해 신상털기와 악의적 비난이 쇄도했다. 있지도 않은 판사의 아들을 상상으로 만들어 삼성에 근무한다니….

민주의 이름이면 그리고 정의의 이름이면 무엇이든 가능하단 말인가? 대체 이성과 논리는 어디 두고 떼짓으로 자기 주장을 이루려 하는지….


이 땅이 헬조선인 것은 박근혜 같은 위정자 때문이 아니다. 그런 사람들을 지도자로 뽑은 수준이 결코 높지 않은 국민들 때문이다.

아직 우리의 민주화 수준은 질적으로 많이 떨어지는 듯하다. 정말 그 영국 기자에게 한방 먹일 날이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