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그린벨트 해제의 양면성
[사설] 그린벨트 해제의 양면성
  • 국토일보
  • 승인 2009.08.24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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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15일 64주년 광복절 기념 축사를 통해 밝힌 ‘획기적인 주택정책’이 새로운 혼란 변수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집 없는 서민들이 집을 가질 수 있는 획기적인 주택 정책을 강구하고 있다.”고 천명, 국민적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서민을 위한 획기적인 주택정책’에 대한 관심은 곧이어 보금자리주택 용지의 공급 확대로 이어지면서 그린벨트 추가 해제의 관측을 낳고, 수도권 일대의 그린벨트 가격이 들먹이는 혼란을 촉발했다.

심지어 투기꾼들 사이에서는 청와대를 출처의 근원지로 하여 “서울 근교의 개발제한 구역(그린벨트)을 대부분 풀어 보금자리주택을 짓는 것이 획기적인 주택정책의 핵심”이라는 그럴듯한 소문까지 번져 나갔다. 이를테면 보전가치가 낮은 비닐하우스나 창고 밀집지역의 그린벨트를 우선 풀어 보금자리주택을 짓겠다는 해석까지 따를 정도다.

 그렇다보니 자연스럽게 그린벨트 추가 해제지가 어딜지에 관심이 쏠리면서 부동산 중개업계가 술렁거렸고, 수도권에서 그린벨트 비중이 높은 경기 과천과 하남, 남양주, 의왕, 고양, 성남, 시흥, 구리 등이 대상지역으로 거론되는 등의 파장과 혼란을 키워갔다.

 오죽하면 국토해양부가 나서 “획기적인 주택정책에 관해 현재로는 전혀 확정된 바 없다”는 해명자료까지 내기에 이르렀겠는가. 청와대도 “기존의 그린벨트 해제 및 보금자리주택 건설 계획을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는 뜻이며 현재로선 추가적으로 그린벨트를 해제하거나 보금자리주택 건설호수를 확대하는 계획이 없다”는 해명으로 파장을 줄이기에 안간힘을 쏟았다.

 그러나 여전히 시장에서는 소문과 혼란이 진정되지 않는 분위기다. 기존의 계획을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는 것이 결코 ‘획기적인 주택정책’으로 받아들여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기존 계획의 차질 없는 추진’이 진정 획기적인 정책의 실체라면 정부 정책의 신뢰성에도 적지 않은 상처를 입힐 수 있기에 더욱 그렇다.

 정부는 지난해 9월 보금자리주택 150만채 가운데 수도권 그린벨트 78.8㎢를 풀어 30만채를 짓는 등 오는 2018년까지 수도권에서 100만채를 건설하기로 한 바 있다. 이를 위해 지난 5월 1차로 서울 강남 세곡, 서초 우면과 경기 하남 미사, 고양 등 네 곳을 그린벨트에서 해제해 보금자리주택 시범단지로 지정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최근 강남에서 시작된 부동산 가격 급등이 서울의 다른 지역과 수도권 전체로 옮겨 붙을 조짐을 보이고 민간 부문의 주택공급 부족으로 전세난까지 겹치면서 주택공급 확대의 필요성은 더욱 커졌다.

그린벨트 추가 해제 카드가 나올 것이라는 관측도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그린벨트는 우선 땅값이 싸기 때문에 주택을 싸게 공급할 수 있고 주택공사가 직접 시공하기에 분양가도 15% 이상 낮출 수 있는 장점을 지녔기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그린벨트는 여전히 그 이용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는 특성을 지닌 탓에 해제 얘기가 나올 때마다 개발과 보전을 놓고 논란이 끊이질 않는다. ‘그린벨트에 그린이 없다’는 비아냥이 말해주듯 비닐하우스와 창고시설이 등이 가득 차 그린벨트라고 부르기에 민망한 곳이 즐비한 게 현실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차라리 그린벨트를 풀어 활용도를 높이는 게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서 서민 주택공급으로 활용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기도 하다.

 그러나 문제는 그린벨트는 한번 풀리면 복구가 어렵다는 점이다. 수도권 집중을 억제하기 위해 1971년 도입된 그린벨트는 세계적으로 평가 받고 있는 소중한 국가자산이다. 대도시의 허파라는 상징성을 지닐 정도다. 그린벨트가 난개발될 경우 국토가 다시 황폐해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한번 풀면 더 이상 수도권 녹지는 기대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린벨트가 지닌 보존의 가치와 개발의 가치라는 양면성을 고려, 해제에 급급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활용하는 것이 국가적으로 편익을 높이고 비용을 최소화할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국민적 합의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는 판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