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관행적 비리의 파행
[사설] 관행적 비리의 파행
  • 국토일보
  • 승인 2009.08.10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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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업계의 비리가 또 불거졌다. 일시적이고 지엽적인 비리가 아니라 고질적이고 관행적인 비리의 노출이라는 점에서 충격이 크다. 건설 산업 60여년의 역정(歷程)에 그야말로 오물을 끼얹는 파행적 치부일 수밖에 없다.

 더욱 민망스러운 것은 이번에 불거진 비리가 건설업계의 공공연한 치부로 꼽혀온 ‘입찰로비’였을 뿐만 아니라 마땅히 뿌리 뽑혔어야할 건설업계의 숙명적 과제였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제는 이를 근절시키기 위한 보다 강력한 법적 제재장치는 물론 입찰 환경의 개선내지 보완 등의 시스템적 대응이 절실하다.

 사건의 발단은 최근 한 용기 있는 대학 교수가 공공기관에서 발주한 공사의 입찰을 둘러싼 비리를 폭로하고 나서면서 촉발됐다. 그는 지난달 경기도 파주시가 발주한 교하신도시 복합커뮤니케이션센터 건립공사 입찰 과정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가 낙찰 건설업체로부터 받은 1000만원 어치의 백화점 상품권과 해당업체 직원과 나눈 대화 녹음 파일 등을 공개했다. 건설업계의 건축· 토목분야 교수 대상 로비가 또 한번 검은 꼬리를 드러낸 것이다.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 되다시피 한 심사위원 참여 교수들을 대상으로 한 로비는 건설업계의 고질병으로 등장한지 오래다. 건설업체들이 낙찰 업체 선정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심사위원으로 선발될 수 있는 후보 교수들을 평소부터 집중 관리하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일 정도다.

 관련 교수들이 주최하는 학술대회의 후원사로 참여해 친분을 쌓거나 직원들을 야간 대학원에 등록시켜 수업을 받으며 사제의 인연을 맺도록 하고, 교수 별로 전담 직원을 지정해 골프· 향응 접대 등을 하면서 공고한 인연을 맺기에 혈안이 돼 있는 실정이다.

 이번에 로비를 벌인 K 건설사의 직원이 전혀 안면이 없는데도 해당 교수가 재직한 학교를 나왔다며 도와달라고 한 사례 등이 이런 배경과 무관치 않다. 특히 이런 조직적인 로비 활동은 이번 입찰 공사에서 경합을 벌인 3개 건설사 모두에서 이 교수에게 만나자는 전화를 해 온 사실에서도 업계 전반에 침잠해 있음을 실감시킨다.

 이번에 용기 있게 폭로에 나선 해당 교수가 “우리나라에서는 시공사가 실력이 아니라 로비로 결정된다.”고까지 개탄한 사실은 공공공사의 입찰비리가 더 이상 덮어둘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음을 경고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SH공사가 발주했던 1조원 규모 동남권유통단지의  입찰에 참가한 건설회사들이 심사위원들을 해외 골프여행에 데려가는 등 온갖 로비를 벌이다 적발된 게 얼마 전이었음을 상기하면 그 심각성은 더욱 절실해 진다.

 건설 분야의 부정부패와 비리는 낯선 일이 아닐 정도로 우리 사회에 투영되고 있다. 언론에 보도되는 뇌물수수 사건의 절반 이상이 건설 분야 사건일 정도다. 흔히 비자금 마련의 온상으로 건설업종이 치부되는 오명도 이 때문이다.

 심지어 경제 위기의 여파로 건설업계에 불황의 그늘이 짙고 길게 드리우는 것과 비례해 건설업계의 부정부패와 비리가 더 심각해지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업체 간 생존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공사를 따내려는 심리가 팽배한 탓이다.

 그렇다면 왜 이 같은 입찰 비리가 근절되지 않는 것일까. 근본적으로 검은 거래가 적발되더라도 건설회사는 처벌되지 않는 법의 맹점 탓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다시 말해 건설사 직원이나 심사위원만 처벌될 뿐이다.

 결국 로비를 시도한 회사에 대해서도 영업정지 등 강력한 처벌을 할 수 있도록 건설산업법의 개정이 필수적이라는 지적인 셈이다. 솔직히 입찰 비리가 불거졌는데도 사업권이 회수되지 않는 것은 문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로비 꼬리’만 자르고 공사를 챙기는 모양새가 돼서는 입찰 비리를 근절키 어렵다.

관급공사의 입찰참가 제한기간을 늘려 아예 부정행위를 시도할 엄두를 내지 못하도록 입찰 시스템의 보완 및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귀담아 들을 일이다.

 복마전 건설업계를 정화해 투명한 입찰 문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이번 사건은 그 결정적 계기로 작용해야 한다는 게 우리의 시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