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否定)의 부정(否定)은 발전(發展)’이라고 하면 ‘부정의 부정은 긍정(肯定)’이면 몰라도 ‘웬 발전(?)’이라 할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곰곰이 따져 들어가 보면 부정의 부정은 커다란 진보와 발전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일단 본래의 존재방식을 부정하여 다른 존재방식으로 변화시키고, 뒤에 다시 이를 부정해 본래의 존재방식으로 되돌리는 것이야말로 곧 발전을 가져오는 원리라는 뜻이다.
우리의 생활에 먼저 이 원리가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 보면 우선 우리들의 음성은 공기의 기계적인 진동(振動)으로 상대방의 귀에 도달한다. 그러나 이러한 직접 전달 방식으로는 서로 얼마간의 거리만 떨어져 있어도 이야기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데 이 직접전달 방식을 부정하여 마이크를 사용하면 기계진동이 전기진동으로 바뀌어 훨씬 멀리까지 들리게 된다.
그리고 이를 다시 부정해 전선(電線)에 연결하면 전화가 돼 수 천 킬로미터까지 서로 대화할 수 있고, 또 이를 전파(電波)로 변화시키면 라디오나 텔레비젼이 되어 지구의 반대쪽까지 소리와 모습을 보낼 수 있게 되는 발전을 가져온다.
여기에도 기계적 진동을 전기적인 진동으로 바꾸고 그것을 다시 기계적인 진동으로 바꾸는 부정의 부정 원리가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부정의 부정은 비단 자연과학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님은 물론이. ‘부정’을 ‘비판(批判)’이라는 개념과 결부시켜 생각해 보면 상급자가 하급자의 비판을, 어느 한 조직이 다른 조직의 비판을 겸허하게 수용한다면 이러한 조직은 부정을 허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조직문화가 자기비판이나 상호토론이 활성화 돼 있다면 그 조직은 스스로 부정할 수 있는 바탕이 되어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조직이 최종적인 의사결정을 내리기 전에 비판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이러한 비판을 수용하여 다시 의사결정자의 입장에서 보완시켜 나간다면 그 조직의 발전은 기대해도 좋을 것입니다.
정치나 행정 또한 마찬가지다. 만약 정치인이나 공무원이 주민의 입장에 서서 생각하지 않고 정부의 입장에서만 판단하고 결정한다면 이는 발전적인 정치/행정과는 거리가 멀게 된다.
반대로 ‘부정의 부정’ 이란 이치(理致)대로 정치가나 공무원이 먼저 자기의 입장을 부정함으로써 주민의 입장에 서서, 주민들의 요구는 무엇인지, 그 요구가 타당한지, 그리고 얼마나 절실한지 등을 파악한 후, 다시 그 입장을 부정해 국민전체를 생각하는 ‘공’(公)의 입장으로 돌아와 조치 할 때 발전이 따르게 된다.
러너(Daniel Lerner)는 이와 같이 자기 자신을 타인의 입장에서 관찰할 수 있는 능력을 감정이입(感情移入: empathy)이라고 부르고 있다.
백완기 교수는 그의 역저(力著) '한국의 행정문화'에서 이 감정이입을 발전적 가치관 중의 하나로 보고 감정이입 능력이 강한 사람은 상대방의 입장에서 자신을 보기 때문에 편협한 사고와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게 될 뿐만 아니라 상대방을 이해하게 되고 현실에 대해 긍정적 자세를 취하게 돼 발전하게 된다고 했다. 감정이입을 통한 부정의 부정은 정치나 행정에 발전을 가져오는 원리임을 깨쳐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한가지 주의를 요하는 것은 ‘부정의 부정’이지 부정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 양자 간에는 꽤나 큰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정치가나 행정인이 자기 입장을 부정하여 주민의 입장에서만 문제를 보고 이에 따라 처리해간다면 이는 중우정치(衆愚政治)의 과오를 범할 우려가 크다.
왜냐하면 ‘보통사람들’의 경우 이웃이나 사회전체를 고려하여 자신의 이익을 자제(自制)하기 보다는, 자기의 이익을 우선 고려하여 반영하려 드는 것이 더 보편적이자 정상적인 행동양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치가나 행정인은 자신을 부정하여 서비스의 대상인 주민의 입장에서 문제를 보고, 이를 재차 부정해 공익(公益)을 생각하는 입장으로 돌아와서 처리하는 ‘부정의 부정’ 자세를 견지해야 하는 것이 긴요한 법이다.
즉 ‘정치/행정→시민’이나 ‘시민→정치/행정’의 일방적(一方的) 관계가 아니라 ‘정치/행정 →시민→정치/행정’의 환류적(還流的)관계에 서야 한다. 부정의 부정은 긍정이라는 말도 맞지만, 부정의 부정은 발전이라는 말도 타당함을 새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