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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유의 세상만사]<82> 아! 데지마.안동유 팀장 / 기계설비건설공제조합 기획전략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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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0.31  08:2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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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유의 세상만사

자유기고가이자 시인인 안동유씨(기계설비건설공제조합 기획전략팀장)의 칼럼을 게재합니다. 안 팀장은 KBS ‘우리말 겨루기’ 126회 우승, ‘생방송 퀴즈가 좋다’ 우승 등 퀴즈 달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MBC 100분 토론에서는 시민논객으로 참여하는 등 지속적인 방송 출연을 통해 또다른 소통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에 本報는 건설산업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안동유 팀장의 ‘안동유의 세상만사’를 통해 작가 특유의 감성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소통의 장을 마련했습니다.

  아! 데지마.

지도를 보면 참 희한한 게 한국과 일본, 중국이 이웃해 있으면서 같은 듯 다른 역사발전 과정을 겪어오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당연해 보이지만 이 세나라가 한 자리에 오래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참 신기하고 세계사적으로 드문 일이다.

중국이 많은 민족이 섞여 들었지만 주류인 한족을 중심으로 한 자리에 오래 자리잡고 있음은 변함없다. 유럽을 비롯한 많은 대륙이 수많은 민족의 이합집산과 많은 왕조의 흥망성쇠가 이어졌다.

아프리카는 민족과 나라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의 많은 부족이 자연스레 흩어져 살았고 백인이 오기전의 아메리카나, 오세아니아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런 세나라 중 중국은 차치하고 일본과 우리는 한자 문화권이란 영향도 있었고 이웃의 대국인 중국의 영향을 받았음이 비슷하다. 그럼에도 우리와 일본이 근대에 와서 다른 길을 걷게 된 것은 참 아이러니 같다.

이웃해 있는 일본과 우리가 극명하게 운명이 갈린 건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대개 메이지유신 이후 세계 곧 서구를 받아들이고 사회를 개혁한한 것과 그러지 못한 것이 일본과 우리의 운명(식민지배)을 갈라놓았다고들 한다.

하지만 그런 메이지유신의 배경에는 그런 개혁을 추진한 저력과 원동력이 있을 것이다.

일찌기 일본은 포르투갈의 상인으로부터 조총을 구입하고 무기로 편입하는 발빠른 모습을 보였다. 그것이 임진왜란의 한 동력이 되었음은 더 말할나위가 없다.

포르투갈의 크리스트교 포교를 두려워하면서도 그들의 문화를 빨리 받아들인 것이 일본의 행태다.

우리가 아는 카스테라라는 빵과 뎀뿌라라는 일본 음식이 그때 들어온 것이다.

임진왜란의 혼란을 겪고 평온을 되찾은 도꾸가와 막부는 쇄국정책을 쓰면서도 나가사키에 데지마란 인공섬을 제한적으로 열어 외국인 곧 포르투갈인을 받아들여 무역을 하는 동시에 세계를 보는 바늘구멍을 유지했다.

그리하여 포르투갈인을 통해 세계를 제한적이나마 들여다 보게 되었고 나중엔 포교에 큰 관심이 없는 네덜란드에 그 주도권을 넘겨 주었다.

그리고 박연 - 벨테브레, 하멜 등이 표류해 올 정도로 자주 아시아를 드나들던 네덜란드가 조선의 정체를 알게 되어 조선과 교역을 시도하려는데 막부는 교역을 끊겠다고 협박해서 이를 막는다.

세계와 접촉할 절호의 기회를 잃었다. 도꾸가와막부 시대 일본선 난학(홀랜드란 국호에서 온 화란이 네덜란드의 이름이 되어서)이 발달해 네덜란드 사람들에게 미, 적분이나 의학, 과학 등을 배웠다고 한다.

이런 일본의 태도는 페리 제독에 의해 개항한 이후 재빨리 서양 문물을 대폭적으로 받아들인 결과로 이어졌다.

우리가 그렇게 미워하는 이토오 히로부미는 일본에선 영웅이고 그 시절 영국 옥스포드 유학을 다녀온 사람이다.

우리가 사라진 명나라를 흠모하고 이기지도 못하는 청나라를 속으로 경멸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이며 우물 안에 있을 때 일본은 많은 나라에 유학생을 보내고 지식인들이 밀항을 해서 문물을 배워와서 열강으로 발돋움했다.

메이지유신 때 막부파와 개혁파가 대립했지만 우리가 상상하는 것과 달리 개혁파뿐만 아니라 막부파도 서양에 유학한 사람이 많았다.

조선이 감히 고개도 못들 때 일본은 명과 인도까지 지배할 야욕을 품고 임진왜란을 일으켰다. 대한제국이 열강에게 도움을 구걸하다가 식민지로 떨어질 때 중국을 반식민지로 만들고 미국의 콧잔등을 갈겼다.

중일전쟁을 일으키고 하와이 진주만을 공습해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것이다.

세상이 바뀌어 우리도 세계를 잘 알고 유학도 많이 한다고 생각한다.
아니다. 아직도 부족하다. 몸은 국제무대를 활보해도 세계를 보는 눈이 많이 뒤떨어져 있다.

우리 마음에 데지마 같은 섬을 만들지 않으면 국제 무대의 세련된 생각을 배울 수 없다.

일본은 더 큰 데지마를 만들고 세계를 호흡한다. 그래서 노벨상도 많이 받는 것이다. 부러워만 하지 말고 세계를 보는 눈을 크게 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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