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건산법 개정안에 왜 반발하는가
[사설] 건산법 개정안에 왜 반발하는가
  • 국토일보
  • 승인 2009.06.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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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부가 입법예고한 건설산업기본법 개정안을 둘러싸고 전문건설업계의 반발이 전례 없이 팽배해, 오히려 건설시장의 분위기만 경직되게 하고 있다.

 

반발을 불러일으킨 핵심 내용은 예고된 건산법 개정안이 그렇지 않아도 중층적인 하도급 단계를 더 늘어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고질적인 하도급 비리를 더욱 악화시키는 꼴이 되었다는 것이다.


 예컨대 개정안의 결정적 비중을 지닌 종합건설업과 전문건설업 간의 업무영역 폐지는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사항이지만 하도급 부문에서 그동안 하청공사를 주로 해온 전문건설업체에는 재하도급을 불허하면서 종합건설업체에는 통제장치 없이 하도급을 허용, 심지어 종합건설업체 간에도 하도급이 가능하도록 한데서 빚어지고 있다.


 이미 알려진 것처럼 다단계 하도급을 비롯해 부풀려진 공사비용, 업체끼리 나눠먹기, 부실시공, 비자금 등은 건설업계를 부정부패가 판치는 곳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결정적 요소로 작용해 왔다.

 

그래서 건설업계는 이런 부정적 요소의 청산을 오랜 숙제로 삼아 왔고 이런 후진적 건설산업 구조를 혁신하지 못하면 건설산업의 미래는 없다는 절박감마저 팽배해진 상황이다.


 그런데 정부가 내놓은 건산법 개정안은 이러한 건설업계의 열망에 찬물을 끼얹은 격이 된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하도급 단계의 증가는 원청업체가 하청업체를 대상으로 자행하는 고질적 하도급 부조리가 발생할 수 있는 단계가 하나 더 추가된다는 점을 뜻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판단하기에도 하도급 단계의 증가는 이미 한계선상에 있는 하청업체를 벼랑으로 내 몰 악재로 작용할 공산이 짙다.

 

다단계 하도급 구조에서는 단계마다 건설업체의 이윤과 관리비용이 발생하므로 전체 공사비는 늘어나는 반면, 마지막에 실질적 시공을 맡은 하청업체는 계획보다 줄어든 비용으로 공사를 하게 됨으로서 품질 저하는 물론 안전관리도 소홀하기 마련이다.


 정부가 얼마 전에 일부 공공공사에 ‘주계약자 공동도급제’를 도입한 이유도 기존 ‘발주자-원청업자-하청업자’의 3단계인 건설생산구조를 ‘발주자-시공자’의 2단계로 축소해 이런 부조리를 해소하기 위한 것이었다.


 발주자가 원청업체의 하도급을 통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없앤 점도 이번 개정안의 큰 문제점이다. 현행 법규는 다단계 하도급의 여러 문제점을 예방하기 위해 종합건설업체 간의 하도급을 금지하고, 전문건설업체에 하도급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토해양부가 기존의 다단계 하도급 구조를 더 확대하는 개정안을 내놓은 의도를 우리는 이해하기 어렵다. 최소한 종합건설업체 간의 하도급을 발주자가 통제할 수 있는 장치라도 둬야 마땅할 것이다.


 전문건설업체들이 이번 개정안에 대해 “전문과 종합 간의 상호 문턱을 없앤다고 하면서 종합건설만 살 수 있는 여건을 만들려 한다”고 반발하는 것도 이런 합리성과 균형 감각의 결여 탓이라고 우리는 본다.


 이는 건설업체 간의 시장경쟁을 활성화하겠다는 취지와도 어긋난다. 종합건설업체와 전문건설업체를  같은 시장에서 경기하도록 해 놓고 종합건설업체의 하도급은 사실상 제한 없이 허용하고 전문건설업체의 하도급은 원칙적으로 막아 놓았기 때문이다.


 규모가 큰 종합건설업체와 규모가 작은 전문건설업체를 차별하는 방안은 곧 불평등한 경기 규칙을 제안한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시장의 문을 여는 정책도 중요하지만 공정한 경쟁이 이뤄지도록 하는 일은 더 중차대한 정부의 직무일 것이다.


 개정안을 그대로 확정한다면 건설 산업의 혁신은 그야말로 기대난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오히려 현재의 모순을 더 심화시키고 건설업계 내부의 이해관계 다툼에도 기름을 붓는 격이 될 것으로 우려된다.


 다행히도 문제점을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는 아직 있다고 본다. 정책당국 나름의 어려움이 있겠지만 균형감각을 회복해서 합리적인 조정자로서 자리 잡기를 그래서 권해 마지않는다. 건설산업의 선진화에도 적기(敵機)가 있는 법이다. 실기(失機)하지 않는 지혜가 절실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