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의 미학
기다림의 미학
  • 국토일보
  • 승인 2009.06.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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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환의 세상만사] (주)삼미 대표이사 / 공학박사 / APEC 공인컨설턴트 / 기계기술사

간단히 정의될 문제는 아니지만 언제 부터인지 나는 인생(人生)이라는 단어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름대로 인생이란 이런것이 아닐까? 하는 답을 정리해보았다.


“인생은 긴 기다림이다. 그 기다림은 희로애락(喜怒哀樂)을 통해서 발전하고 완성되어진다. 그리고 기다림은 기대이기도 하고 희망이기도 하다.” 


내 나름대로의 생각이기 때문에 사람에 따라 견해가 다르겠지만 구체적으로 설명해보면 우리는 태어 날 때부터 부모님께 기대와 희망을 드리기 시작한다. 그 이후로 죽기 전 까지 사회생활을 하면서 기쁨과 성냄, 슬픔과 즐거움의 반복으로 평생을 보낸다.


학교, 직장, 결혼 등 모든 생활에서 네 가지 과정을 반드시 거치게 된다. 그리고 신체적인 변화 즉, 생노병사(生老病死)의 단계를 거쳐 한 세대를 마감하게 된다. 그리고 자손을 통해 기다림은 반복되는 것이다.


얼마 전 유선방송을 통하여 톰 행크스 주연의 ‘Terminal’ 이라는 영화를 감명깊게 보았다. 이 영화는 내전으로 인해 오갈 데 없는 크로코지아라는 나라의 여행객이 공항을 벗어날 수 없는 처지가 되어 공항 내 생활을 하면서 긴기다림 끝에 목적을 달성하고 조국으로 돌아가기까지 겪는 내용이다. 기다림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지난달 23일 전 대통령 노무현께서 자살이라는 방법을 통하여 서거하신 사건이 있었다. 희로애락(喜怒哀樂)을 통해 마무리 지어야할 인생을 중도에 하차하신 것이다.

 

부모님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의 기다림에 역행한 것이기에 이는 잘못이라고 조심스럽게 지적하고 싶다. 아마 마무리 못진 부분은 업(業)이라는 숙제로 남게되지 않을까? 하는것이 내 생각이다.


기다림은 희망이기도 하고 기대이기도 하여 희로애락(喜怒哀樂)을 극복하면 반드시 목적을 이룬다는 사실도 매우 중요하다. 마치 드넓은 하구언에 도달한 물방울처럼 기대와 희망을 완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노력을 통하여 우리는 물방을처럼 넓은 바다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즉 기다림을 완성하는 것이다.


나의 이런 생각은 2000년에 돌아가신 미당 서 정주 선생님의 시세계를 통하여 동질감을 느낀다.

 

‘춘향유문'이라는 시를 읽어보자.

 

천 길 땅 밑을 검은 물로 흐르거나 도솔천의 하늘을 구름으로 날더라도
그건 결국 도련님 곁 아니예요?
더구나 그 구름이 소나기 되어 퍼부울 때
춘향은 틀림없이 거기 서 있을 거예요.

 

또 다른 미완성의 슬픈 기다림을 ‘신부(新婦)’라는 시를 통해서 느껴보자.

 

신부는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로 겨우 귀밑머리만 풀리운 채
신랑하고 첫날밤을 아직 앉아 있었는데,
신랑이 그만 오줌이 급해져서 냉큼 일어나 달려가는 바람에
옷자락이 문돌쩌귀에 걸렸습니다.
그것을 신랑은 생각이 또 급해서
제 신부가 음탕해서 그 새를 못 참아서 뒤에서 손으로 잡아당기는 거라고,
그렇게만 알고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가 버렸습니다.
문 돌쩌귀에 걸린 옷자락이 찢어진 채로 오줌 누곤
못 쓰겠다며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리고 나서 40년인가 50년이 지나간 뒤에 뜻밖에 딴 볼일이 생겨
이 신부네 집 옆을 지나가다가
그래도 잠시 궁금해서 신부방 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신부는 귀밑머리만 풀린 첫날밤 모양 그대로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로
아직도 고스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 그 어깨를 가서 어루만지니
그 때서야 매운재가 되어 폭삭 내려앉아 버렸습니다.
초록 재와 다홍재로 내려앉아 버렸습니다.

 

두 시는 슬픈 기다림의 시이다. 두 시를 통하여 기다림은 세월을 초월한 것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우리의 삶을 통하여 완성해야만 하는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