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유의 세상만사]<65>갑과 을, 그리고 병
[안동유의 세상만사]<65>갑과 을, 그리고 병
  • 국토일보
  • 승인 2016.05.16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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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유 팀장 / 기계설비건설공제조합 정보지원팀

 
안동유의 세상만사

자유기고가이자 시인인 안동유씨(기계설비건설공제조합 정보지원팀장)의 칼럼을 게재합니다. 안 팀장은 KBS ‘우리말 겨루기’ 126회 우승, ‘생방송 퀴즈가 좋다’ 우승 등 퀴즈 달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MBC 100분 토론에서는 시민논객으로 참여하는 등 지속적인 방송 출연을 통해 또다른 소통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에 本報는 건설산업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안동유 팀장의 ‘안동유의 세상만사’를 통해 작가 특유의 감성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소통의 장을 마련했습니다.

갑과 을, 그리고 병

대학 새내기 시절 쉬는 여유 시간에 친구들과 잡담을 나누는데 법대생인 만큼 법적인 용어를 써가며 이야기하는 게 법적 사고를 키우는데 좋다고 나름대로 치기어린 의욕을 보였다.

재치있는 친구 한 명이 “그럼 갑군이 먼저 말해 보게!”라고 해서 와하고 웃었던 일이 기억난다.

미국 물을 먹은 교수들이 많았던 다른 과에서는 예를 들 때 주로 A와 B는이라고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반해 유독 한자를 많이 쓰던 법대에선 甲과 乙이라고 예를 들었다.

원래 갑을병정하고 나가는 십간은 천간지지의 하나로 순서를 나타내는 말이었다.

자축인묘로 대변되는 12지(생년의 띠가 그것이다.)와 결합해 60갑자를 나타내는 말이 되는 것이다.

그런 것이 보수적인(사실 구태의연한) 법학계에선 여러사람을 구별해 이야기할 때 순서대로 갑, 을, 병, 정이라고 이야기하게 됐다.

ㄱ과 ㄴ은이라고 예를 들어도 별 문제가 없을텐데 이상하리만치 한자에 집착하는 것이 법대와 법학계의 문화였다.

처음 서전과 서서를 책에서 보고 한참을 고민했다.

불란서와 영국, 미국, 서반아 정도는 익히 들은 바라 알겠는데 여긴 어느 나라인지 고민하다가 실소를 터뜨렸다. 스웨덴과 스위스였다.

여튼 일반적인 사람을 홍길동이라고 드는 우리 예와는 달리 갑과 을이라는 대명사 아닌 대명사로 통칭하는 게 법률문화의 일부였다.

그러다보니 일반적인 서식의 당사자를 갑과 을이라고 나타냈고 그것은 대명사 수준을 넘어 이젠 고유명사의 자리를 넘보게 됐다.

계약서 서식에 첫번째 당사자를 갑, 그 상대자를 을이라고 하다보니 힘이 센 당사자가 보통 갑의 자리에 이름을 써넣고 을의 자리엔 경제적 약자가 이름을 써넣게 된 것이다.

요즈음엔 갑과 을이라고 하면 일반적인 계약의 당사자나 사례의 일반인이 아니라 고유한 지위를 나타내는 말이 됐다.

‘누가 갑이냐?’는 ‘누가 힘센 당사자냐? 누가 주도권을 쥐고 있냐?’란 말이 됐다.

따지고 보면 이 땅의 많은 ‘갑’들이 수퍼파워를 휘둘러 ‘을’들을 억압해 왔다. 어떤 이는 몽둥이를 휘둘러 사람을 패고는 매값이라고 돈을 던져 줬다고 한다.

매품 팔러가는 흥부도 아니고 호구지책으로 대기업에 납품하거나 노동력을 제공하려 계약을 맺었는데 맘에 안들면 개를 풀어 위협하고 엎드리게 해 몽둥이를 휘두르다니….

그게 갑인 자기 맘대로 책정한 몇 푼의 돈으로 배상이 되나? 맞아서 아픈 건 당연하지만 더 아픈 건 마음의 상처요 인격적 손상이며 나아가 인간 존엄성의 훼손이다.

수업 시간에 거창하게 천부인권이니 불가양(다른 사람에게 넘겨 줄 수 없는), 불가침의 권리이니 해도 침해가 가능하고 버젓이 침해되는 우리나라다.

선진국에선 인격권의 침해는 거의 파산으로 이어진다.(염전 노예가 거의 보상을 못 받는 것은 야만국가 대한민국의 법률문화 후진성을 여실히 보여 주는 일이다.)

인종차별이나 남녀차별은 그런 인격권의 침해 중 하나로 취급된다. 인격권 침해는 거의 경제적으로 계산할 수 없을 만큼 큰 법익의 침해다.

자기가 부리는 기사에게 자동차 옆거울을 접고 운전하라거나 칼자루를 쥐었다고 하청업체 사장이나 직원들을 종처럼 부리는 일이 없어져야 하지만 정작 핍박받던 이들은 또다시 돌아서서 다음 순서의 병, 정에게 사정없이 갑질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제로 대두됐다.

주인마님이 화가 나서 안방마님과 싸우면 안방마님은 머슴들에게 화풀이를 하고 힘없는 머슴은 마누라한테, 그 마누라는 부억 강아지의 배때기를 걷어차는 것과 같다.
(그래서 남녀문제는 권력의 문제로 비치기도 한다.)

병, 정으로 불리는 이 땅의 많은 민초들은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모순을 가장 밑바닥에서 받아내야 하는 질곡의 삶을 살아야 한다. 마치 부엌 강아지처럼…. 하지만 그 강아지도 물 때가 있다.

이번 선거에서 그런 병, 정들이 뭉쳐서 어떤 결과를 내는지 보지 않았는가? 총칼을 든 병정보다 무서운 것이 병, 정과 같은 민초들이다.

‘내가 남의 노예가 되고 싶지 않아서 남을 노예로 부리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는 링컨의 말처럼 부디 남의 갑질이 싫으면 남에게 갑질을 하지 말라.

이제 을군이 말해 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