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유의 세상만사]<62>만석꾼의 경영학!
[안동유의 세상만사]<62>만석꾼의 경영학!
  • 국토일보
  • 승인 2016.04.18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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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유 팀장 / 기계설비건설공제조합 정보지원팀

 
안동유의 세상만사

자유기고가이자 시인인 안동유씨(기계설비건설공제조합 정보지원팀장)의 칼럼을 게재합니다. 안 팀장은 KBS ‘우리말 겨루기’ 126회 우승, ‘생방송 퀴즈가 좋다’ 우승 등 퀴즈 달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MBC 100분 토론에서는 시민논객으로 참여하는 등 지속적인 방송 출연을 통해 또다른 소통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에 本報는 건설산업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안동유 팀장의 ‘안동유의 세상만사’를 통해 작가 특유의 감성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소통의 장을 마련했습니다.

만석꾼의 경영학!

예전 티비에 전래 동화(라고 하기 보단 이야기라고 해야 옳을)를 모티브로 한 짧은 극이 방영된 적이 있다. 만석꾼인 어떤 부자가 자기 집안에 합당한 며느리를 보기 위해 후보자를 테스트하는 이야기가 줄거리였다.

요즘도 그렇지만 옛날에도 먹고사는 문제가 인간 생존의 기본이라 만석꾼의 며느리는 선망의 대상인 자리였다.(만석이면 단순한 천석지기 졸부완 다른 오늘날의 재벌에 해당하니 재벌가에 권세가의 딸이나 아나운서나 탤런트 같이 한다하는 처자들이 며느리로 들어가려 애쓰는 것과 견주어 볼만하다.)

권세깨나 있고 좀 산다하는 집안의 처자들이 후보로 나섰지만 테스트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며느리가 되는 조건은 만석꾼으로부터 얼마 안되는 양식을 받아 본가의 도움 없이 한 달을 견디는 것이었다.

나중에 며느리를 낙점한 뒤에 자기의 부자된 내력을 알려 주는데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아버지, 할아버지들이 손놓고 가난만 한탄하고 있는 것을 보고 어린 자신이 나서 집안의 규칙을 정한다. 밖에 나갔다 들어오면 무조건 돌멩이 하나라도 들고 들어오도록 하고 씨돈이 모일 때까지 죽자하고 아껴서 그 돈을 굴리고 굴려 돈을 벌게 된 것이다. 물론 온 가족이 열심히 일한 건 당연한 얘기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며느리 후보들에게 집안 관리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살림 솜씨를 테스트한 것이다.

모두 부족한 양식을 아껴서 먹다가 못 견디고 포기하거나 본가에서 몰래 양식을 갖다 먹다가 들켜서 탈락하게 된다.

하지만 별로 보잘것 없는 가난한 집안의 딸이 이 소식을 듣고 나서게 되는데 처음부터 양식을 다 털어서 떡을 만들어 이웃에 돌리고 바느질감을 받아 일을 해서 한 달을 거뜬히 견딘다. 만석꾼이 흡족해서 며느리로 낙점하고는 기뻐서 자기의 살아온 내력을 들려 준 건 앞에서 얘기한대로다.

천 석, 이천 석의 졸부들은 부지런하고 어쩌다 운이 좋아 된 것이다. 하지만 만석꾼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니다.

명심보감에 ‘소부(小富)는 재근(在勤)이고 대부(大富)는 재천(在天)이다.’라는 말이 있다.

기업이 망하는 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매출이 급격히 늘고 조직이 커질 때 잘 망한다. 조직이 크면 더 잘되어야 할텐데 왜 망할까?

천석꾼의 생각과 만석꾼의 생각은 다르다. 천석꾼은 쌀 한 섬이라도 더 소출을 늘리려고 직접 논을 돌아 보고 소작인들과 머슴들을 닦달한다.

하지만 만석꾼은 혼자 다 관리할 수가 없다. 그런 일은 마름을 두고 자기는 더 큰 일에 마음을 쏟는다.

중앙의 정치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부터 쌀을 비롯한 농산물 및 다른 산업, 자본의 판도 뿐만 아니라 유통과 머슴이나 소작인으로 칭해지는 일반 백성의 목소리까지 신경을 쓴다. 나아가 때때로 소리꾼들을 데려다 머슴과 소작인들을 위로하는 데까지….

제일 멍청한 농사꾼이 남의 품을 사서 일을 시키며 자기 하나라도 더 노동력을 보태려고 부지런히 일을 하는 사람이다. 품값 한 푼 아끼려는 것이다. 다른 일꾼들의 일이 엉망이 되고 전체 일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이 더 큰 손실인 걸 모르는 어리석음 때문이다.

주인이 직접 일하는 것보다 일꾼들의 사기를 북돋우고 격려하며 전체 일의 짜임새를 관리하는 것이 결국 더 이익이 된다.

조그만 가족기업으로 출발해서 열심히 일하고 죽을 듯이 아껴쓰면 돈은 모인다. 그 정도만 유지하고 가족끼리 넉넉히 먹고 살고자 하면 계속 그렇게 하면 된다. 적당히 조직도 관리할 수 있고 일도 감당할 만하고 해서 현상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기업이 중견 기업으로 커 가고 나아가 대기업으로 발돋움을 할 땐 시스템이 달라져야 한다. 필요없는 비용이라고 생각되는 업무 대리(행)인의 급여가 필수적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돈냥이나 있는 사람들이 사업을 할 때 지배인이나 전문경영인을 두는 이유가 그것이다. 단지 배에 기름이 끼어 일이 귀찮아지고 게을러서가 아니다.
요즘은 사업깨나 하고 돈이나 좀 있으면 누구나 회장 소릴 듣고 싶어 한다. 무늬만 회장 흉내를 낼 것이 아니라 그들의 생각과 행동을 본받아야 한다.

만석꾼은 머슴 밥그릇 줄이는 데서 이익을 남기려 하지 않는다. 머슴 밥을 배불리 먹이고 사당패라도 불러서 단오나 추석 같은 명절도 즐겁고 기분좋게 지내게 해 주고 더 많은 이익을 내라고 한다.

어렵다고 조직을 축소해 살아 남으려는 다운 사이징은 일시 이익을 남기는 듯 보이지만 결국 기업이 망하는 길로 가는 것이다. 훌륭한 기업은 위기에 오히려 투자를 늘린다.

단지 안 쓰고 아끼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적절히 필요한 비용을 쓰고 그 이상으로 수익을 내는 지혜로운 사람으로 며느리를 삼는 만석꾼의 안목이 필요하다.

만석꾼이 되려면 만석꾼처럼 생각을 해야 하고 재벌이 되려면 재벌처럼 생각을 해야 한다. 누구나 재벌이 되고 싶은 마음에 회장이라고 직함을 고쳐 부르는 것은 자유지만 회장이면 회장다운 경영 안목을 가져야 한다,

그 본 뜻도 모르는 채 사서삼경이나 들고 팔자걸음이나 걷는다고 양반이 되는 것이 아니다.